24 어떤 그리스도인의 꿈

Landmark 에서 발췌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 속에 생명의 길로 들어 섰다.

300년 전, 베드포드 감옥에서 쓰여진 존 번연의 역작, “천로역정” 에는 인생 여정에 나타나는 온갖 경험과 슬픔, 낙담, 좌절, 불신, 회의와 같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영감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생애의 빛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을 묘사한 또 하나의 천로역정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정직한 양심을 가지고 진리의 좁은 길을 따라가기를 소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그리스도인의 꿈”에 담겨져 있는 영감적인 교훈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생애의 빛 편집실
              

어느 그리스도인의 꿈

“꿈 속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행장을 갖추고 먼 여행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가족도 마차에 짐을 가득 실고서, 그들과 함께 여행길을 떠났다. 한참 가다 보니, 길이 점점 가파라졌다. 길의 한 쪽은 깍아지른듯한 낭떠러지였으며, 다른 쪽은 매우 미끄럽고 높은 바위벽이었다. 여행을 계속할수록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더 가파르게 되었다. 어떤 지점에 이르자, 그 곳은 길이 너무 좁아서 더 이상 마차를 끌고서 갈 수 없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차에 실린 짐을 말등으로 옮겨 실은 다음, 마차를 뒤에 남겨둔채 말을 타고 여행을 계속하였다.

“가면 갈수록 길은 계속 좁아졌다.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서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바위벽에 바싹 붙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말 등에 실은 짐보따리가 벽에 닿아서 절벽쪽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짐보따리를 말등에서 내려 절벽 아래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말을 타고서 계속해서 전진하였다. 길은 더욱 좁아져 갔으며, 우리는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매우 조심하였다. 어려운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한 손이 우리가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굳게 잡아서 인도하여 주는듯 하였다.

“길이 너무나 좁어져서,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을 버려둔채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가야만 하였다. 이 때, 작은 밧줄이 위로부터 우리 앞으로 드리워졌다. 우리는 매우 좁아진 길에서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밧줄을 꼭붙잡고 전진하였다. 우리가 앞으로 전진함에 따라, 밧줄도 앞으로 움직이면서 우리를 인도하였다.

“여행길의 종점이 가까워질수록, 길이 너무나 좁고 험해지자, 우리는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까지 벗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의 마지막 지점에 거의 당도하였을 때에는, 우리와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여행을 포기하였다. 길이 좁아지면서 상태가 달라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뒤로 쳐지기 시작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시련과 고난을 통과할 때마다 더욱 더 분발하여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진지한 모습으로 전진하였다.

“우리가 길에서 떨어질 위험은 더욱 증가해 갔다. 우리는 바위벽에 바싹 붙어 갔지만, 길이 워낙 좁았기 때문에, 우리의 발은 안전하게 디딜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거의 모든 체중을 밧줄에 걸어야만 하였다. 우리의 발이 땅에 닿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몸 전체가 위에서 내려온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여행자들도 마찬가지 형편이었다.

“저 절벽 아래로부터 떠들썩한 환락의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를 모욕하는 조롱 소리가 들려 왔으며, 저속하고 세속적인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슬픔과 좌절과 허무함을 토로하는 소리가 방탕한 웃음소리와 섞여서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 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절벽 아래의 어두움이 짙어지고, 들려오는 소리들이 심해지면 질수록 더욱 더 조심스럽게 좁고 험한 길을 걸어 갔다. 우리들 각자가 매달려 있던 밧줄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굵어졌다.

“나는 바위벽의 이곳 저곳에 얼룩져 있는 피자국을 보았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도 우리와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이 좁은 길을 걸었다면, 우리도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아픈 발에서 흘러내린 피자국을 보면서, 우리는 낙망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깊은 골짜기에 다다랐으며, 거기서 길은 끝났다. 이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점점 굵어져서 마침내 우리의 몸만큼이나 굵어진 밧줄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당황하여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이 밧줄은 정말 믿을만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밧줄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내 앞에 서있는 남편의 입에선 괴로운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으며, 나의 얼굴에서도 진한 땀이 흘러 내렸다. 무서운 믿음의 투쟁이 우리 앞에 있었다. 이 마지막 순간에서 실패한다면, 지난 여행 동안에 우리가 참았던 모든 고난과 고통들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골짜기의 저편에는 푸른 풀밭의 아름다운 평원이 있었다. 하늘 궁전에서 퍼져 나오는 영광의 빛은 이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이 골짜기를 건너갈 수 있을까? 만일 밧줄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죽고 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이 이 밧줄을 붙들고 있을까?’ 라는 염려의 말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밧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뿐이다. 좁은 험로를 걸어오는 동안 그것은 줄곧 우리의 유일한 의지가 되었으며, 유일한 안전이 되었다.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낙담케 한적이 없었다.’ 바로 그 때, 어디선가 이러한 말이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잡고 있는 밧줄을 붙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신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는 그 말에 동의하였다.

“나의 남편이 먼저 줄을 잡고 골짜기 저편의 아름다운 땅으로 건너 뛰었다. 나도 곧 뒤따랐다. 아, 평안한 안도감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정신이 우리의 온 마음을 가득 채웠다. 골짜기를 건너 온 모든 여행객들은 하나님의 찬양하는 승리의 함성을 크게 외쳤다. 그들의 음성에는 완전한 행복이 담겨져 있었다.”
                 

꿈의 의미

진리는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여행객들을 두무리로 나눈다. 진리를 진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진리로 인하여 더욱 힘을 얻고 분발하여 전진하며, 진리가 요구하는 시련과 희생이 두려워서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서 어둠 가운데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사람들은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끝까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여행객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진리가 주는 고난에 참가할 뿐 아니라, 그러한 경험을 통과하면서 인내와 겸손의 교훈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애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회오리 바람과 폭풍우와 홍수 속에서도 당신의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더 큰 위험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재난을 허용하신다. 당신의 백성들이 어려움과 고난이 없는 길을 걸어갈 때, 그들의 믿음이 사라지고, 기도하는 음성에 진지함이 사라질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허용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시련들은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더럽고 추한 기질과 이기심들을 버리도록 인도한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온유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생애와 성품을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되신다.
                     

여행자의 단계적 경험

첫번째 시험 : 길이 좁아져서 마차를 절벽 아래로 버려야만 했을 때, 마차에 실려 있는 짐과 마차가 주는 안락함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이제 올라올 만큼 올라왔으니까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여기서 쉬자” 라고 말하면서, 마차에 걸터 앉아 쉬기로 결정하였다.
두번째 시험 : 첫번째 시험을 견디었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두번째 시험에서 실패하였다. 길이 좁아져서 말등에 실려 있던 짐보따리들을 내려서 절벽 아래로 던져야 했어야만 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향하여 아래로 내려갔다.
세번째 시험 : 길이 점점 좁어지고 험해져서, 신발과 양발까지 벗어야만 하였을 때, 첫번째와 두번째 시험에 견디었던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바닥이 아프다고 불평하면서 되돌아 내려갔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매일 계속되는 시험과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하늘을 향하여 전진하는 여행길이다. 진리가 희생과 고난을 요구할 때, 그것에 순종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와 부족한 성품 때문에 고통을 당할 때, 그러한 것들에 의해서 깍이고 다듬어질 수 있도록 조용히 인내하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

왜 하나님께서는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말과 마차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조금 올라가다가 짐을 버려야 하며, 결국에는 신발과 양말까지도 벗어 버려야 한단다” 라고 미리 알려 주시지 않으셨을까? 왜 주님께서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을 한꺼번에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을까?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자비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뜻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의 모습을 동정과 자비의 눈으로 내려다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위대한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한번에 한계단씩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시험과 고난을 단계적으로 허락하심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불필요한 짐보따리들을 버리도록 인도하신다.

여행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혼돈되고 당혹케 하는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어두움을 뚫고서, 진리의 빛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 주신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좁은 길이 아무리 험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어떤 길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 말라. 좁은 길은 진리의 길을 의미한다. 좁은 길은 진리가 어떤 것을 요구할 때, 그 요구가 자신의 이기적 본성과 상충될지라도 그것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순종하며 전진하는 길을 의미한다. 혹시, 그대는 여행길이 점차로 좁아질 때마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면서 서성거리지 있지는 않는가?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할 때일지라도, 그대는 계속해서 전진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진리를 수호하는 하나님의 군사이다. 군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목적과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분의 군사들은 불편함, 어려움, 희생, 고난과 같은 힘겨운 의무들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을 고르고 선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용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 골몰해서는 안된다. 사단은 모든 힘과 전략을 다하여 우리를 지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자아(self)를 통하여 우리를 제압한다. 그러므로 자아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죽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진리만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 하나님의 군대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메고, 대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밧줄을 잡고 가는 그리스도인들

여행길이 너무나 좁아졌을 때,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온 밧줄에 자신의 온 체중을 실고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발은 땅을 밟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이 땅을 여행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밧줄에 온 몸을 의지하고 전진하는 여행자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소리가 절벽 아래의 어둠 속으로부터 들려왔지만, 밧줄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흩트릴 수는 없었다. 바위벽과 좁은 길 위에는 중간 중간 핏자국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보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순교자들의 혈흔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이 걸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들이 겪지 않고 극복하지 않았던 것들을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셨던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분의 발걸음이 이미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져 놓았기 때문에, 비록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서도 걸을 수 있다.

길이 좁아지고 가파라질수록, 밧줄에 대한 의존도는 증가되었으며, 밧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밧줄은 점점 굵어졌다. 그런데, 밧줄은 믿을 만한 것인가? 무엇이 밧줄을 붙들고 있는가? 세상 끝이 다가 올수록 사단은 온갖 기만과 계략을 다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한다. 그러므로 종말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하늘이 인정하는 진리의 말씀에 우리의 온 생애를 맡겨야 한다. 진리를 붙잡은 우리의 믿음에 더욱 많은 힘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밧줄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붙잡고 있는 밧줄은 정말 믿을만한 것인가? 그것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인가?

또한 밧줄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전진하는 믿음을 상징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여 나아가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진리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고난을 자초해서는 않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피하지 말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요구하는 그대로의 진리의 길이어야 한다. 그대가 진리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대가 아무리 열심히 그 길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그 길의 끝에는 멸망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길인 좁은 길에는 고난과 아픔이 있으며, 진리에 순종하기 때문에 받게 되는 희생과 외로움이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 길을 피하여 돌아가거나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면, 바로 그것이 넓은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육체의 욕망과 본능을 만족시키는 넓고 평탄한 길을 선택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

구세주께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진리 때문에 예수께서 받으셨던 반대와 미움을, 좁은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 여행자들도 견디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온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린다면, 그분께서는 즉시로 우리의 마음을 받으셔서 당신의 뜻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된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의 여행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진리를 어떠한 태도로 대하는가? 진리가 그대의 생애의 방향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그대 자신이 좋아하는 진리만을 골라서 받아들이는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에 따라서 생애하는 사람이다. 진리가 그대에게 마차를 버리라고 요구하면 마차를 버려야 하고, 진리가 그대에게 말을 버리라고 요구하면 말을 버려야 한다. 진리가 인도하는 길이 좁아져서 등에 짊어진 짐보따리를 버리라고 요구하면, 주저없이 그것을 버려야 하며, 좁은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신발과 양말을 벗으라고 요구하면, 모든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진리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이 커다란 희생이나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희생이나 손해가 아니라 그대의 구원에 지장이 되고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구원을 위해서 항상 최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라.

그대가 잡고 있는 밧줄은 진리이어야 한다. 진리인 굵은 밧줄이 그대의 인생을 인도해야 한다. 사단은 그대의 주위에 여러가지 비슷한 밧줄을 느려뜨려 놓음으로써, 그대를 멸망으로 끌어 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조심하라. 윗 방향에서 내려온 밧줄이라고 해서 아무 것이나 붙잡아서는 안된다. 사단이 내려준 밧줄을 붙잡고 있는 그대의 믿음이 아무리 진지하다고 할지라도, 진리에 기초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대는 먼저 진리의 밧줄을 찾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그 밧줄에 온 몸을 실고서 따라가야 한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굳건한 믿음이다. 진리의 밧줄이 인도하는대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손으로 밧줄을 굳게 붙잡아야만 한다. 절벽 저쪽에 있는 하늘 본향으로 건너 뛰기 위해서는 오직 밧줄만을 의지해야 한다. 그대의 믿음 전체를 밧줄에 실고서 힘껏 뛰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나타나는 유혹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만 붙들고 나아가는 믿음을 소유하자!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진리의 밧줄에 의지하여 좁은 길을 걷는 것, 바로 이것이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