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하나님의 광야 학교

하나님의 광야 학교


우리 모두 상상의 날개를 펴서 구약시대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한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먼지나는 광야를 걸어가고 있다.

양떼들 사이에 서서 초라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사람은 한 때 애굽 왕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사람이었다. 이 목자는 누구일까? 그 사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모세”이다. 그런데 모세가 왜 미디안 광야에서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를 광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앞서, 먼저 모세를 구원하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모세의 구원과 훈련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을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

성경은 미디안 광야의 목자로 서있는 모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에 능하였더라” 행 7:22. 그 당시 애굽은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다. 애굽의 학술과 과학은 뛰어났는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이수한 왕의 후계자였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대제국의 후계자였으며, 미래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야 할 모세가 왜 사막에서 양을 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앞 날에는 역사가요, 시인이요, 철학자요, 통치자요, 한 민족의 구원자로서 수행해야 할 놀라운 경험과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말 안듣는 양들과 씨름하면서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광야에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짧은 시간이 아닌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말이다.

가끔씩 모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광야까지 모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모세여, 도데체 어찌된 일이요. 당신처럼 재능있고 똑똑한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소.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요. 당신은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랍니다. 그 분께서 나를 위해 세워 놓으신 계획은 가장 효과적일 뿐 아니라 가장 완전한 것이랍니다.”
                               

사람의 생각

사도행전 7:20은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그 때”인가? 왜냐하면 그 때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구원자가 태어날 때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특별한 섭리 하에 애굽 왕의 아들로 입적될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을 경건한 어머니 요게벳의 교육 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모세의 마음 속에는 이스라엘의 “씨”가 심어질 수 있었다. 12살이 되었을 때, 모세는 어머니를 떠나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애굽 왕이 주는 높은 교육과 엄청난 권력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소유할 수 있었으며, 장차 애굽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그의 주변에는 애굽의 사제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에 대한 신앙을 모세에게 주입시키려고 서성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으며, 천사들에 의해서 계시된 자신의 거룩한 사명 즉,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왕이 될 운명을 박차고 히브리 노예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거듭 거듭 하였다.

이러한 모세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분명 모세는 준비되었다. 그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높은 비젼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신앙인이다. 그는 교육과 훈련과 영향력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다.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사업에 투신할 준비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도와서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킬 준비가 되었다.” 모세에게서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를 광야로 보내서 40년 동안 재교육을 받도록 인도하셨다.
                     

드러난 부족함

이스라엘 노예들에 대하여 항상 연민의 정을 느끼던 모세에게 한번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는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무언가 하고 싶었다. 어느날 한 애굽인이 이스라엘 노예를 구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었다(출 2:12). 하나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처럼 보였던 모세가 살인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자 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애굽 학교에서 배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약속하신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모세의 생각처럼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해방됨으로써,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의 정신을 드러냈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동정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을 드러내었다. 비록 그가 가장 높은 세상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교육은 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훈련시키기에는 부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은 세상 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 겸비한 마음, 자신을 부인하는 정신 등은 그리스도의 학교 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교육이다. 양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동정심이 이스라엘의 목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에 대하여 깊은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꾀와 무력함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하였다.
                             

하나님의 처방

모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앞서 먼저 애굽의 군관 학교에서 배웠던 무력 원칙을 버려야만 하였다. 하나님과 천연계로 더불어 나누는 교제를 통하여 그의 품성에 새로운 하늘의 법칙이 새겨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과 인내로 지도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였다.

하늘의 지혜자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는 일에 종사하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바로 그것이 모세를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교육이었다. 그는 다스리기 전에 먼저 순종하는 법을 훈련받아야만 하였다. 모세는 목자로서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양들을 보살피며, 병든 양을 돌보고, 길 잃은 양을 인내로 찾아다니며, 제멋대로 뛰는 양에 대하여 오래 참고, 젊은 양들이 원하는 것과 늙은 양들의 필요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채워주는 법을 배워야 하였다.

모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나님의 처방을 겸손히 따랐다. 장차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갖추어야 할 진정한 준비를 위하여 그는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
                        

하나님의 광야 학교

모세의 광야 학교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무엇이든지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있는 양들에게 무엇이든지 신속하게 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명령을 전달해 줄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하였을 것이다. 말 안듣고 고집센 양들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이 양들은 도무지 순종할 줄 모르는군.” 그러나 문제는 양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어떻게 명령을 내릴지 모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이것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지를 모르면서도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음에 대해서 불평하곤 한다. 모세의 경우, 어떻게 명령하는지를 배우기까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였다.

물론, 모세는 명령을 내리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애굽에 있을 때, 그는 다스리는 일에 종사하였고, 모두들 그가 잘 다스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 사업과 하나님의 사업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세상 사업은 명령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업은 보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양떼를 가지고 한번 실습해 보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왜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을까? 왜냐하면 그는 애굽에서의 교육과 부와 권력의 영향에 너무나 오래 동안 노출되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학교에서 버려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애굽에서 배운 철학과 사상이었다. 그에게는 앞뒤를 계산해 본 다음,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믿고 실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해방 사업에 투입시키기 전에 그의 이러한 점을 변화시키셔야만 하셨다. 모세는 자신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옳게 보이든지 옳지 않게 보이든지를 불문하고 항상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을 배워야 했다.

바로 이러한 훈련만이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었다. 광야에서 백만명 이상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광야 학교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과 양떼들이 주리고 목말랐을 때, 물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바짝 말라 있는 반석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광야에서 배운 믿음 때문이었다. 그 결과,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 대신에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것은 믿음이었다. 믿음이란, 모든 위기의 순간에 손을 뻗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보호와 지배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시끄러운 논쟁이나 풍부한 자금이나 방대한 시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전능하신 팔을 의지함으로 전진된다.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고 그분의 섭리를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40년간의 광야 학교를 졸업하던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하셨을 때, 모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이 인정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나타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드디어,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준비를 갖추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광야 학교에서 배운 교훈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임종 설교에서 조차 백발이 성성한 노인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던 것이다. 신명기 전체를 통하여, 순종의 뒤를 따라오는 축복과 불순종의 뒤를 따라오는 저주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모세의 마음을 이해하는가?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이며 사랑이 부족한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만일 사단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잘못은 법을 만드신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다. 사단의 시도는 모든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무시하는 불순종의 생애를 살므로서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잃어버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와 광야 학교

모세는 자신이 배웠던 것을 잊어버리는데 40년을 소요하였다. 우리 역시 우리가 배운 잘못된 것들을 잊어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처럼 온유와 동정을 배울 때까지 비천한 일에 종사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목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재간과 설교와 지식을 뽐내는 일없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봉사할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의 광야 학교에 입학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조용한 시골로 가라.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면서 천연계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 마지막 시대에는 그대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이 광야 학교일 수 있다. 그대와 자녀들을 위하여 광야에 펼쳐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5:3에서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인 십사만 사천명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그들이 부를 경험의 노래를 가리켜서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라고 표현했다. 모세가 불렀던 경험의 노래는 무엇인가?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노래가 아닐까? 그가 광야 학교에서 배웠던 교훈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출해낸 승리의 경험이 아닐까? 세속과 방탕과 탐욕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그물에 걸린 꽁치처럼 몰려 사는 것보다, 차라리 조용하고 한적한 천연계가 펼쳐져 있는 시골에서 온 가족이 “모세의 노래”를 배워 보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세의 광야 학교, 침례 요한의 광야 학교, 사도 바울의 아라비안 광야 학교의 경험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