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소돔을 겨우 빠져나온 롯의 간증

소돔을 겨우 빠져나온 롯의 간증


살아남는 이들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성경은 나의 이름을 롯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나의 친척인 아브라함과는 달리 나의 이름은 겨우 구원 받은 사람 또는 우유부단한 그리스도인을 설명할 때에나 거론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 롯을 책망하면서 “나같으면 절대 롯처럼 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나의 사정과 형편을 아신다면, 나를 지금보다는 더 많이 이해하고 동정하시게 될 것입니다.


나의 불행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조용한 시골에서 살기로 선택하지 않았던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나는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네(롯)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아브라함)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보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창세기 13:9~13. 그 당시 내가 소돔을 가족들의 거처로 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소돔은 요단 계곡의 모든 도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도 도시가 주는 안락과 편리, 그리고 밤거리를 빛내주는 화려한 네온싸인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것들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좋은 학교가 있고, 큰 병원이 있으며, 도서실과 공원, 그리고 목욕탕과 수세식 변소가 있는 소돔이라는 도시는 우리 가족이 살기에 거의 완전한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소돔이라 불리우는 도시를 선택했을 때, 아브라함은 시골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선택은 너무나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소돔을 채우고 있던 이기심과 물욕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힘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돔을 선택했던 것은 소돔을 우아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롯은 세속에 대한 욕심 때문에 소돔에서 살기로 선택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소돔의 죄악이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던 편리한 문명과 세련되어 보이는 매너였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그러한 것들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과 진리를 조롱하는 정신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나의 아내와 자녀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소돔의 도시인들의 삶을 채우고 있던 이기심과 경쟁하는 정신은 우리 가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소돔 속에서 보았던 것을 보지 못한 것이 나의 결정적인 잘못이었습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고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에스겔 16:49,50.


처음에는 소돔의 죄에 저항하는 삶을 얼마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가족은 소돔의 죄악과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 자신이 직접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돔인들이 즐기는 악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소돔에 있던 환락과 주연과 연회와 술취함이 점점 더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나의 딸들은 점차적으로 소돔에서 유행하는 화장과 옷 차림새로 바뀌어 갔습니다. 소돔 주민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 가족은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신앙의 원칙들을 하나씩 둘씩 잃어 버렸습니다. 소돔으로 이사올 당시에 가졌던 믿음은 점차적으로 퇴색되어 그 분명한 색깔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들이 소돔에서 하루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는 놀라운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소돔성을 불로 심판하신다는 결정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기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가족들의 영적 감수성이 이미 너무나 둔해져 있었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해가 뜨고 졌으며, 소돔의 모든 일상 생활들이 아무런 변화없이 평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 성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말은 소돔 성 안에 사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아침의 밝은 태양빛에 빛나는 도시는 영원한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는듯 보였습니다. 거리마다 넘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소돔이야말로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는 경고의 기별을 전했지만, 소돔의 성직자들은 “안심하라. 심판이 내릴만한 이유가 없다. 광신과 극단을 조심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매우 혼돈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롯은 너무나 우유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그 당시의 소돔의 모습과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쨋든 나는 천사가 전한 멸망의 기별을 가지고 결혼한 자녀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을 떠나라”는 천사의 말을 전했지만, 그들은 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미신적 공포심”을 재미있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나의 아들과 딸들도 소돔의 남편과 아내와 함께 사는 동안 소돔의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소돔에 깊이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이 세상이 불로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마지막 심판의 기별을 조롱하며 웃는 것처럼, 나의 자녀들과 사위들과 며누리들도 곧 소돔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기별을 듣고 조롱하며 웃었습니다. 심판의 기별을 전하는 순간, 나는 자녀들에게 망령이 든 노인 취급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브라함을 따라 시골에서 신앙과 순결함을 지키지 않고, 도시가 주는 매혹과 편리함에 이끌려 소돔으로 이사하기로 한 나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정말로 무거웠습니다. 천사들은 나의 아내와 아직 출가하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라고 하였지만, 나는 지체하였습니다. 자녀들을 곧 멸망당할 곳에 버려두고 떠나야만 하는 슬픔, 그리고 평생을 모아온 재산과 집문서와 저금 통장과 새로 산 마차를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은 나를 지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집과 가구, 그리고 전 재산을 버리고 빈털털이의 방랑자로 소돔성을 그렇게 갑자기 떠난다는 것은 나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록 내가 소돔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악한 죄들을 보면서 근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 죄악의 무서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심판하심으로써 죄악의 물결을 저지해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처럼 지체하고 우유부단하게 되는 것같습니다. 그날 밤에 하늘의 사자들이 나와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소돔 밖으로 끌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의 가족은 그 곳을 떠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심판의 밤, 천사는 우리 가족 중 누구든지 저주받은 소돔성을 바라보든지, 그처럼 아름다운 집을 떠나기 싫어서 한 순간이라도 머뭇거리면서 뒤돌아 보면, 그 사람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그 동안 우리를 묶어온 소돔에 대한 모든 애착심의 끈을 끊어 버려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그 끈을 확실하게 끈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만 아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다보고 말았습니다. 몸은 소돔을 빠져나와 들에 있었지만, 마음은 소돔에 달라붙어 있었으므로 그것과 함께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그녀는 소금으로 만든 심판의 기념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내가 주저하지 않고, 지체하지 않고, 우유부단하지 않고, 천사가 전한 심판의 기별을 듣고 이유를 달거나 항의하는 말을 하지 않고, 곧 바로 순종하여 부지런히 산으로 도망하였더라면, 아내는 그녀를 소금 기둥으로 만든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후회와 양심의 가책이 아직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제사장인 나의 머뭇거림과 지체함이 아내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고를 경시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소돔의 멸망은 죄가 그 한계선이 이르고, 악이 그 잔을 채우고 넘칠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끝남과 함께 심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남겨주었습니다.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면서 자기의 길을 끝까지 고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는 선언을 내리실 것입니다(호 4:17). 소돔의 멸망을 직접 지켜 보았던 내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도 세상의 죄악과 향락을 택하여 돌아선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소돔성의 주민들보다도 훨씬 견디기 어려운 형벌이 내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지난 날의 나와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집을 선택함에 있어서 자신과 가족들을 둘러싸고 있는 도덕적, 신앙적 감화보다는 그들이 얻을 이익과 헤택에 촛점을 맞추는 모습을 봅니다. 시골의 아름답고 조용하며 단순한 생활보다는 도시의 번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번영과 부를 바라보고 도시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악마는 돈을 던져주고 그대신 그들의 시간과 건강을 빼앗아 갑니다. 마귀가 뿌려놓은 돈을 주우면서 바쁘게 사는 동안, 그들은 그들에게 오직 한번 주어진 인생이라는 구원의 기회를 낭비해 버립니다.


아브라함과 나는 한 때 같은 장막에 거하면서 한 제단에서 예배드리며 살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한 동네에 살면서 같은 교회에 다닌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나 아브라함이 조용한 시골에 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기로 선택했을 때, 나는 도시가 주는 이익과 혜택을 위하여 소돔을 선택하였습니다. 나의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인하여, 나의 자녀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날마다 교제를 나누게 되었고, 그들의 풍습과 정신을 따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내가 심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날마다 귀에 들리는 소돔의 죗된 대화와 도무지 저지할 수 없는 죄악의 물결로 인하여 번민하여 살았지만, 나는 불에서 꺼낸 나무처럼 겨우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말년에 재산은 모두 없어지고, 아내와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야수처럼 산속의 동굴에 살면서 노년의 생애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나의 후손들은 소돔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우상 숭배자들이 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성경에 모압과 암몬 족속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두 족속으로 성경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때, 아브라함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척이었지만, 이제 우리 두 가족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명하지 못한 발걸음 하나를 잘못 내딛은 결과로 인하여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지를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나는 지체함과 우유부단함으로 인하여 겨우 구원받은 대표적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와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부디 여러분들 각자가 자신에게 알맞는 교훈들을 개인적으로 얻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자신과 가족을 진리와 의의 길로 끝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소돔에서 겨우 구원받은 롯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