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두 여행객

두 여행객


사람들은 잘 볼 수 없지만, 천사인 인생길을 여행하고 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잘 볼 수 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누가복음 13:24.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두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취향과 이기심을 만족시켜주는 넓을 길을 선택하게 된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그 길의 방향과 끝이 전혀 다르다. 한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른 한 길은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 두 길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그 두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전혀 다르다. 두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품성과 대화와 관심과 옷차림이 서로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내가 본 좁고 험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좁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과 고난으로 인하여 종종 슬픔과 고뇌의 빛이 나타났지만, 그 때마다 진리와 진실을 선택하면서 전진하였다. 그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일한 모본과 해결책으로 삼았다. “슬픔에 처한 자요 질고를 아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먼저 여셨고, 친히 그 길을 걸어가셨으므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앞서가신 그분의 발자취를 보면서 위로와 안위를 얻었다. 비록 좁고 가파른 길이지만, 그분께서는 안전하게 그 길의 여행을 마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 역시 안전하게 좁은 길의 여행을 끝마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넓고 평탄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 도중에 나타나는 쾌락과 유행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인생의 최종 목적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지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몰두하고 있으며, 넓은 길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과 쾌락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허리띠를 풀러놓고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쾌락에 몰두하는 반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끝에 있는 분명한 멸망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였다. 넓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매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고 있었지만, “희생과 자아부인”이라는 댓가가 두려워서 진리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의 발길을 비추어 주던 빛은 사라져 버렸고, 그들은 점점 더 깊은 암흑과 멸망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넓은 길을 걷고 있는 여행자들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나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외관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과 비슷하였지만, 그들의 대화는 경박하며 세속적 농담으로 얼룩져 있었고, 마음은 이기적인 탐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의 외관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좁은 길의 여행자들로 생각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넓은 길을 걷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공언이 그들의 실생활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고,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넓은 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시련과 고난을 당할 경우, 너무나 쉽게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자존심과 속이 상해서 사단이 쳐놓은 원망과 불평의 덫에 쉽게 걸려드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좁은 길을 선택하여 걷다가 얼마 안가서 길이 좁아지고 가파르게 되자, 자신들이 지고 가던 자아희생과 극기의 십자가를 버리고 넓은 길로 떠나갔다. 그들을 인도하던 하나님의 손은 거두어 졌고 사단의 천사들이 신이나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건강이 상하기까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생애를 바쳤지만, 넓은 길의 여행자들은 친구들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당했던 고난의 침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넓은 길의 여행객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항상 연약한 태도를 나타냈으며, 안일함과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도모하였다. 넓은 길을 걷던 여행자들은 결국에는 암흑의 계곡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좁은 길을 걷던 여행자들 중에서도 길이 점점 더 가파르게 되고 좁아질 때마다 여행객들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애 전체를 바치는 적은 무리들만이 남아서 전진하게 되었다. 그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렸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조용하고 확신에 찬 미소가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은 자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보하기에는 너무나 좁으며, 이기심과 탐욕이라는 커다란 보따리를 가지고 오르기에는 너무나 비탈지고 험한 길이었다. 고난, 인내, 자아희생, 비난, 오해, 궁핍 고된 노동 등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감당하셨던 몫일진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몫도 그러한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걷고 있는 길 위에는 앞서 그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발자국과 영혼을 소생시켜주는 샘들이 여행길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는 항상 쾌락과 즐거움과 만족만이 있는 줄로 착각하지만, 그 길에도 고통과 실망과 허무함이 있으며, 양심의 가책과 슬픔이 있어서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 한번쯤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져 있다. 종종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이 나타나서 더 이상 그 길을 걷지 말라는 회개와 경고의 기별을 전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넓은 길을 걷고 있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그러한 기별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두 종류의 여행객들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그들의 종착지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내는 넓은 길의 여행자들이며, 오직 소수의 무리들만이 그 길의 끝에 있는 영광과 소망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태도로 걷고 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내가 본 두 여행객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