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예수님의 선물-성령

성령을 받는 길

   
     삼 년 이상이나 의지하고 믿고 따르던 예수께서 이제 하늘로 떠나가실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열두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폭탄보다 더한 충격적인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생애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그분께 있었다. 그분 때문에 그들은 모든 집과 농토와 배와 그물들과 생업들을 버렸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의 비난과 조소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훌쩍 떠나 버리시고 나면 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쿠오바 디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대답은 그들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게 하였다.

    이렇게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마치 다정한 아버지처럼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씀을 꺼내시기 시작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께서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 자신이 그들에게 보혜사였었기 때문에 이제 떠나가시는 마당에 다른 보혜사를 그들을 위하여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었다. Comforter(보혜사) 라는 영어 단어가 내포하고 있듯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라는 뜻으로서 “항상 곁에 있어서 위로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성령의 임재는 그들에게 마치 예수께서 항상 그들 곁에 계셔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해야 할 일을 알게 하시고 갈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와 꼭같은 역할을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아직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셨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7-20). 예수께서는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셨다.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직분이라는 말씀이다. 같은 장 26절에서 주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도 성령의 직분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셨던 그 똑같은 일을 그들을 위하여 해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생명의 진리의 길로 늘 가르치시고 인도해 오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아처럼 내버려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령은 영이시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도 영이시다(요 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시간에 모든 곳에 존재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는 육체로 이 땅에 오시었다. 우리 죄인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치시고 보여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사람의 육신을 취하신 채 이 땅에 임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사업을 다 이루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시점에서, 불쌍한 제자들을 위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한가지 선물을 약속해 주시고 계신 것이었다. 육신을 쓰시고 임하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항상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이 계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어 주심으로써,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신 것이었다. 이 약속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약속이었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가운데서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이었다. 이제 예수께서 하늘로 다시 돌아가시는 입장이셨으나 그들은 홀로 버려진 바 되지 않을 것이었을 뿐더러, 그들은 더욱 더 놀라운 영적 체험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요 16:7).

    성령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회 역사에 있어서 항상 토론과 이견의 주제가 되어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마치 능력을 주고 기적을 베풀게 하며 환희의 경험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로서만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게 하시는 분으로 설명하셨다. 요한 복음 7:37~3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명절 끝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기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는 의미는 아직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하시는 당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승천하시기 전까지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보내신 약 40일간의 황금같은 시간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이 주님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즉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고 설명하여준 성경 말씀들을 찾아서 설명하여 주시는 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셨다. 누가복음 24:25-27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러므로 제자들이 메시야의 사명과 사역에 대한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을 받으시고 직접 체험하셨던 예수께서 성령을 이해하시는 것처럼 성령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한복음 7:39은 저희에게 아직 성령이 계시지 아니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해 오셨다. 십자가 이전에도 성령께서 계셨었다. 창세기 1:1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올바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들을 통하여 능력을 행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시었다. 그 말은 과거에 지은 죄들과 현재에 의롭게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리고 미래에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양심에 자각을 주는 일을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떠나서 의롭게 살아가도록 촉구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개혁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감화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을 받고자 원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먼 길을 마다하고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달라고 정성껏 기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들에게 문제가 하나 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성경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성령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막연히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굴복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성령의 능력과 현시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지 않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교회나 그 당사자에게 있어서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성령이란 인간 편의 욕심에 따라서 주어지는 장식품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죄를 깨닫고 의롭게 살도록 양심을 일깨우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사도행전 1:8참조).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그리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시기에 따라서 행하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성령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은 어떠한 능력이나 기적을 행하는 정도에 따라서 성령을 받은 증거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표로 삼으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 때문에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누구에게 성령을 주시나?

1. 구하는 자에게(눅 11:13)
2. 믿는 자에게(요 7:39)
3. 순종하는 자에게(행 5:32)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사도행전 5:32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고, 같은 장 23절에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가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한가지 점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기운이나 힘, 내지는 능력 같은 비 인격적인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령을 하나의 인격체이신 분으로 소개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그가”, 또는 “저가”라고 호칭하시며 당신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개체로 말씀하셨다. 고린도 후서 3:17에서 사도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여 주의 영, 곧 성령을 한 인격체로 말씀하신 사실도 보게 된다. 또한 베드로도 “네가 성령을 속이고..”(행 5:3)라고 말씀하여 성령님을 인격체로 언급한 사실을 알게 된다. 히브리서 9:14은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호칭하고 있는가 하면, 시편 139:7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령께서는 신성의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 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셨고, 예수께서는 요단 강 물에 서 계셨으며,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양으로 주님 위에 임하셨던 사실로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삼위 일체 가운데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믿는 자들을 얻게 될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성령님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할지에 있어서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성령님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인격적인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고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령님께 쓰인 바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많이 명상하여야 된다. 성령께서는 순종하는 자들 속에 임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