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엇"과 "어떻게"의 투쟁

"무엇"과 "어떻게"의 투쟁


사람은 “무엇”을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를 살피신다.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하는가를 판단하신다.

사람은 사장이 되기 원하고 국회의원이 되기 원하며 대통령이 되기 원하고 목사가 되기 원하며 장로가 되기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는가를 살피신다. 그가 어떤 마음을 갖고 그 일을 하는가를 바라보신다. 사람은 목적을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목적을 이룰 때 사용하는 방법과 과정을 살피신다.

사람은 구원받기 위하여 태어난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사장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며 목사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사람에게서 구원이 이루어질 때 그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모든 목적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구원에 집중하는 대신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사장은 사업의 성장에 집중하고 목사는 교회의 성장에 집중하며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에 집중한다. 사람은 “무엇”에 집중한다. 무엇이 되기 위하여 밥을 먹고, 무엇이 되기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 “무엇”에 집중하는 사람의 영혼에는 평화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 되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다. 사업을 확장시키지 못한 사장과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한 목사와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지 못한 대통령의 마음에는 늘 불안과 불만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에 집중한다. 그는 “무엇”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크기와 인기와 평판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무엇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불만족이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청의 9급 공무원일지라도,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늙은 집사일지라도,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조그만 시골 교회의 목사일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잔잔한 평화가 존재한다. 그는 오직 자신이 하는 작고 평범한 일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온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일은 언제나 진리와 일치하며 정직하고 순결하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의 영혼 속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 간다. 구원은 우리가 무엇이 되었고 무엇을 이루었으며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과 방법을 가지고 삶을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무엇”이 되고자 애쓰는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우선적인 공격 목표가 된다. 마귀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을 쓰러뜨릴까? 그리고 그는 왜 마귀의 시험에 미혹되어 쓰러지게 될까? 마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말들을 속삭임으로써 그의 신앙과 양심을 흔들어 놓는데, 이 속삭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그는 쓰러지기도 하고 더 높은 신앙으로 올라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 이제부터 그의 깊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투쟁의 장면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귀의 속삭임 : 이 바보야, 방법과 수단이 성공의 비결임을 모르니? 신앙과 마음의 순결함만으로는 안돼!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살펴보렴. 크리스챤 학교를 세워서 수만 명의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의롭지 못한 부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아부의 웃음을 웃어주어야 하며, 그들의 불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는 표시를 해주어야 해. “섭리는 언제나 강한 군대와 함께 한다”라고 말한 나폴레옹의 말은 지금 네가 받아들여야 할 교훈이란다. 아무개 목사도 설교 단상에서는 항상 믿음과 진실에 대해서 설교하고, 아무개 장로도 언제나 진리와 원칙에 대해서 말하지만, 교회를 건축할 때나 어떤 거룩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과 수단을 따르고 있잖니? 진실과 순결함은 천사들의 나라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이 땅에서는 어느 정도의 술책이 섞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어.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성숙하고 지혜 있는 어른처럼 사업을 하기 바란다.

너무 진리나 거룩함을 강조하지마.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외형과 숫자에 시선이 집중되지. 그들은 어떤 것이 진리이며, 누가 진리를 가르치는 가에는 무관심하지. 그들의 눈과 귀는 어느 교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며, 누가 더 재치 있고 재미있게 교회를 운영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어. 자네가 지금처럼 진리에만 매달리면 결과는 항상 실패일 뿐이야. 죄 없는 네 부모와 처자까지 너의 무모함 때문에 슬픔과 비애 속에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걸 생각해 보렴. 비록 네가 아무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일한다고 할지라도, 네 방법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 거야.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불쌍한 부모님과 처자식을 위하여 왜 너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나님은 네게 불가능하거나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단다. 적당한 수단과 방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야. 너의 실수를 올바로 잡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 수단을 부리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야! 알겠니?

▶▷▶그리스도인의 영적 투쟁 : 아! 누가 마귀의 이 교묘한 논리에 맞설 수 있겠는가? 결론은 확실하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 더욱 확실해진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방법과 수단을 부리지 않는 한, 실패는 정한 이치이다. 다음과 같은 의혹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혹시 조금 전에 귀에 들린 음성은 마귀의 음성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이 아니었을까? 그 음성이 더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 아닌가?” 바로 이때에 또 하나의 음성이 양심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들려 왔다. “의는 의고, 불의는 불의다. 진실은 진실이고, 부정직은 부정직이다.” 아, 누가 이 음성에 항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넘어져서 코가 깨어지더라도 그리고 돌이키지 못할 만큼 실패할지라도 의와 진리는 지켜져야만 한다. 이 순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의는 성공보다 중요합니다. 조그만 일에 정직을 지키는 일이 위대한 사업을 일으키는 것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사는 생활의 한 방편에 불과하며 선교 사업은 의에 이르는 길에 불과할 뿐입니다. 의가 성공의 시녀로 전락될 수는 없습니다. 장사도 교회도 학교도 선교도, 모두 의를 배우고 거기에 이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사업의 목적은 사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하여 인내, 믿음, 극기와 같은 신앙을 배우는 데에 있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고 교인들이 모두 교회를 등지고 떠날지라도, 학생이 학교를 떠나 교실이 텅 비게 될지라도, 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겠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사업보다는 정신과 방법을 존중하신다. 왜냐하면 정신과 신앙은 영원까지 들고 갈 수 있지만 사업은 내가 이 땅을 떠날 때에 모두 두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나의 목적과 간증이 아무리 고상하다고 할지라도, 방법과 수단이 거룩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자 집중하는 사람들은 결국 넓은 길을 걷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국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짧은 인생 동안 우리 모두가 배우게 되는 교훈이다. 좁은 길은 길이 협착하고 좁아서 찾는 이들이 적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평안과 구원이 약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