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계십니까?


한 살인자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형 집행 날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법 아래 있는 것이며, 죄책감 속에서, 정죄함 아래서, 사형 선고하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하루 전에, 대통령이 이 죄수의 형편을 재검토하고 난 후, 용서해 주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대통령이 그 정상을 참작하여 자기의 권한을 이용해서 그 죄수를 완전 석방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법은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는 법률의 고소에 대하여 완전히 죄 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자유로이 걸어나갈 수 있으며 어느 경찰이라도 그를 체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은혜 아래 있고 더는 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해서 마음대로 법률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은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법률을 더 잘 순종할 의무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대통령께 대한 감사화 충성의 마음으로 국가의 법을 더욱더 조심스럽게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와 율법에 대한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여기에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있습니다. 이 성결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고 해서 율법을 더는 소용없는 것으로 폐할 수 있는가?”라고 우리에게 질문하면서 스스로 대답하기를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생애에서는 율법이 세워지고 재강조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혜, 법 그리고 믿음이 구원에 미치는 관계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해서 재차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율법에 순종하기를 피하려고 교묘히 이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 더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게 붙들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법을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러분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경찰이 법규위반 보고서를 쓰고 있는 동안, 아마 여러분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매우 급한 사정 때문에 속도 위반을 하게 되었다고 경찰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경찰관은 자신이 쓰고 있던 보고서 용지를 천천히 접더니 찢어 버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좋습니다. 이번만큼은 용서해 드리지요. 그러나...” 경찰이 말한 “그러나...”라는 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을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나 다시는 속도 위반하면 안됩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요. 경찰의 이러한 용서(은혜)가 여러분에게 법을 불순종해도 좋다는 길을 열어 줍니까? 아니면 그와 반대로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마음을 변화시켜 줍니까? 물론, 그 경찰관의 자비로운 용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회개의 정신을 깊이 새겨 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마련된 은혜 때문에 죄를 용서 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는 은혜 아래 있으니 더 이상 십계명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

오래 전에 미국 뉴올린즈 노예 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은혜와 율법의 관계에 대한 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두 명의 목화밭 주인들이 반항적인 음성으로 소리지르고 있는 어떤 쓸모없는 흑인 노예를 노예 시장에서 경매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 농장 주인이 경매에 이겨서 그 노예를 마차에 태우고 농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그 흑인 노예는 반항적인 말투로 새 주인을 위하여 일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농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 주인은 새로 산 노예의 손에서 사슬을 풀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요. 당신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당신을 사 온 것이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흑인 노예는 농장 주인의 발 밑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인님! 나는 당신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영원토록 섬기기 원합니다.”

그 흑인 노예와 같이, 인류도 죄의 속박과 정죄와 죽음 가운데 노예로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희망 없는 노예 상태로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껫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속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나를 위하여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부터 내 평생 동안 당신만을 충성스럽게 섬기겠습니다.”

인류가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 즉시로 율법은 죄의 대가로서 인간에게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선고된 죄이 대가를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삵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6:23).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폐하여 질 수 있는 성질의 법이었다면, 율법이 죄의 대가로서 요구하는 형벌도 없애버릴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리라” 로마서 4:15. 율법의 권위는 영원 불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폐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를 죽음으로 내어 주시면서까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도 폐하실 수 없는 율법을 폐지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엄숙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를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예화가 됩니다. 아버지는 판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법을 범한 죄수로서 판사인 아버지 앞에 끌려왔습니다. 나타난 모든 증거들을 볼 때, 자기 아들은 분명히 유죄였습니다. 법정 안에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판사가 이러한 경우에도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을 할 수 있을까? 판사는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엄숙하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는 법에 따라서 최고의 벌금형을 부과했을 때에 법정 안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즉시로 내려와서 아들을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너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나 너에게는 그렇게 많은 벌금을 낼 만한 돈이 없지?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모든 벌금을 갚아 줄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죄인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법률이 요구하는 형벌을 면제받지는 못했습니다. 판사인 아버지는 벌금을 대신 갚아줌으로써, 버을 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법의 권위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그 판사는 법을 범한 죄인은 어떤 사람도 법률이 요구하는 형벌을 결코 면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율법을 폐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법은 높여져야만 했고, 최고형이 선고되었으며, 형벌에 대한 값은 지불되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당신의 공의만큼이나 완전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죄이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써, 율법이 요구하는 형벌을 만족시키심으로써 모든 인류들 앞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폐하여질 수 없는 십계명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하셨던 하나님의 엄숙한 결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온 우주 앞에서 율법의 권위와 존엄성을 옹호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확신 있고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을 제시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잘못 오도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도 존중하시는 율법을 격하시키고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사랑의 성품을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한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며, 그분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진실로, 여러분의 신앙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 여러분의 생확과 양심을 반사시켜 보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의 완전한 표준대로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를 간절히 필요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러분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돌려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혜)를 달라고 간청하십시오. 그리고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초청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심으로써,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