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믿음과 감정을 구별할 수 있나요?

믿음과 감정을 구별할 수 있나요?


6가지 진지한 질문

믿음과 감정을 혼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느끼는 감정을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 상태를 판단하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납하시는 증거를 자신의 감정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을 실망시키는 외에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본성적으로 인간의 성정은 사단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아무런 보호벽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단은 사람의 정신을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방법으로 오류와 거짓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고 그분의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인간의 느낌과 감정은 상황에 따라서 항상 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의해서 신앙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진지한 질문으로 자신의 영적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1.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2. 나는 복음과 진리를 위하여 어떤 희생을 치루고 있는가?
3. 나는 승리하고 있는가? 패배하고 있는가?
4. 나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무를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5.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하여 이기적인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6. 나는 정욕을 억제하고 매사에 절제하며 그리스도의 뜻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판가름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충동적인 경건이나 감정적인 신앙으로 우리의 양심을 스스로 기만해서는 안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정의 고조를 높이 평가하거나 의존한다면, 그는 사단이 찾고 있는 가장 적절한 먹이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원칙에 의거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의 육체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의해서 지배받지 않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라. 이러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대의 믿음은 향상될 것이며, 의지력은 증진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보람과 만족은 부흥회 때의 짜릿한 감정이나 은사를 체험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된 평안과 행복은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행복함을 맛볼 때에 얻어진다.
                      

감정과 자기기만

사단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감정과 믿음을 섞어 놓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정이 고조되어야 믿음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전략에 기만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다. 사단은 죗되고 이기적인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종 기적과 거짓 은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적 고조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정하신다는 거짓 확신을 갖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변화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이전과 마찬가지이며, 생애에는 선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들은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적 고조를 얻기 위하여 크게 소리내어 기도하고, 오랫동안 금식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이끌어 가는 원칙은 변화되지 않으며, 새롭게 거듭난 생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절망하여 깊은 낙담에 빠진다. 그들은 사단에게 속았으며, 또한 스스로의 감정에게 속았다.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 경험은 감정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환란과 시련이 몰아닥치면, 자신의 믿음의 기초가 모래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신앙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된 마음이며, 자아와 교만이 죽은 생애이다. 감정적 신앙을 가졌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분명한 하나님의 말슴과 진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밝히신 뜻과는 달리 그와 반대되는 길로 갈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억지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야말로 원칙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하는 신앙인이다.

대개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경우에도 “성령께서 내게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그대로 가겠다.”라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단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이 원하는 감정과 느낌을 줌으로써,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단의 농간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허락한 놀라운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라 요구하는 바를 저버리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생애 함으로써 결국에는 사단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체험은 항상 거룩한 성경 말씀과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최후의 대쟁투

느낌은 믿음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인 믿음을 활용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믿음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전진하였을 때, 영광스러운 감격과 감사의 정신을 축복으로 받게 된다. 믿음은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느낌은 믿음을 활용한 결과로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활용 없이 느낌을 추구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신앙태도이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허락하시는 감정과 느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고 느껴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우리가 축복을 깨닫기 이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대한 감사의 정신을 소유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최선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약속된 축복을 느끼고 그것을 즐기게 될 때에 이미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느낌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자신에게 많이 부어질 때에는 큰 믿음을 얻게 되며, 자신이 성령의 큰 능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믿음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야말로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이다. 두텁고 검은 구름이 마음을 덮을 때야말로 산 믿음을 활용하여 흑암을 꿰뚫고 구름을 흩어버림으로써 유쾌한 정신을 받아야 할 때이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약속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인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는 축복을 주장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최후의 심판과 재앙이 지구에 임하기 직전에, 이 지구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부흥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부흥이고, 다른 하나는 사단이 인도하는 거짓 부흥 운동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부흥 운동은 진리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역사로서, 이 부흥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 속에 분명한 성령의 열매가 맺힘으로서 복음 전파에 있어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증인들로서 나서게 된다. 이와 반면에 사단이 인도하는 거짓 부흥 운동은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변화의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단이 놀라운 이적과 거짓 성령은사의 능력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깊이 미혹하는 운동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두가지 부흥 운동 사이에게 혼돈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지금 어떤 운동에 참여해 있는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성경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