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부:영혼불멸 사상의 위험과 참된 부활의 신앙

영혼 불멸설의 위험과 참된 부활 신앙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은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필요한 질문이다. 비록 성경이 죽은 자들은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사실을 수십번씩 반복 선언하고 있을지라도, 오늘날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의 이교 사상을 좇아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이상한 일인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신조들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여러가지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반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놀라게 된다. 이러한 모든 거짓말은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서부터 유래된 것이다.

모든 거짓말에는 목적이 있다. 사단은 왜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였을까? 그 이유는, 사람의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않는다는 거짓말을 퍼뜨린 후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로 가장하여 나타나서 사람들을 속이고 오류와 미신으로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귀신과 접신한다는 이 강신술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며, 마귀는 이러한 속임수를 통하여 무당굿을 하는 무속신앙으로부터 시작해서 현대인들이 신봉하는 심령과학(죽은 영혼들과 교통한다는 강신술)에 이르기까지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인간들에게 접근하여 기만하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사단이 바로 이러한 강신술을 이용하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사울 왕을 속이는데 성공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후,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실이 사무엘상 28:6~14에 나오는데, 그 때 사울왕이 만났던 영혼은 죽은 사무엘 선지자가 아니라 사무엘의 혼백으로 위장한 악령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강신술사나 무당들을 근절시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출 22:18; 레19:31; 신18:10). 그러므로 영혼 불멸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앞세우고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딤전 4:1)도록 유도하는 사단의 온갖 속임수에 아무런 방비없이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에 버지니아 주에 두 자녀를 가진 해링턴 부인에게 희안한 일이 생겼었다. 해링턴 부인의 남편인 브라이언이 육군으로 월남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미 육군성으로부터 남편이 전사했다는 비보가 날아오게 된 것이다. 큰 슬픔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있는 해링턴 부인에게 하루는 이웃에 살던 친구가 찾아왔다. 찾아와서는 대뜸 “해링턴 부인! 남편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없소?”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해링턴 부인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글쎄, 남편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구요?” “아니, 이상도 하시네. 죽은 내 남편을 어떻게 만나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원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만.”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가 강신술을 하는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강신술사에게 부탁하면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어 대면하여 이야기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 해링턴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요?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부활의 아침까지 잠자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무슨 그런 엉뚱한 장난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완강하게 부인하는 해링턴 부인의 반응을 보면서, 그 친구는 포기한 듯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서 남편이 너무나 보고 싶어진 해링턴 부인은 남편의 혼을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말에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어떤 날 오후, 해링턴 부인이 남편을 보고 싶은 마음에 견딜 수 없어서 강신술을 하는 교회에 가 보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초청해 오는 능력이 있다는 강신술사와 만나서 부인은 남편에 대한 인상착의와 형편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 강신술사는 기도 비슷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월남전에서 전사한 남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벽에서부터 하얀 연기같은 것이 스며 나오는 것같더니, 해링턴 부인 앞에 그렇게도 그리워 하던 남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놀란 해링턴 부인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 하였으나 남편을 만났다는 기쁨에서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로 이 부인은 남편을 보고 싶을 때마다 강신술사를 찾아가서 죽은 남편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두 서너달이 지난 후에 하루는 해링턴 부인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돌아 왔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부인은 기절할뻔 하였다. 남편이 바로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보! 당신 이제 이렇게 돌아다닐 수가 있게 됐어요? 내일 내가 강신술 교회에서 당신을 만나러 갈 참이었는데...” 그때 그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가 돌아왔소! 당신의 남편, 브라이언이 살아서 돌아 왔단 말이요! 사실은, 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실종 되었는데, 국방성에서는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사망 처리를 한 것이요. 여보, 나는 지금 막 월남에서 돌아오는 참이오!” 두 자녀를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남편을 보고 해링턴 부인은 아연실색하였다. 그리고 부인으로부터 지난 얼마동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들은 남편도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그 부인이 강신술 교회에 가서 계속 만나 보았던 남편의 영혼은 과연 누구였겠는가? 물론 그것은 인류를 속여서 멸망에 빠뜨리기 위한 마귀가 그 남편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나타났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여러분 앞에 돌아가신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가족중 누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자. 그리고 그분들이 하늘에서부터 여러분에게 전해줄 기별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하늘에서 왔다는 그 영혼들이 성경의 말씀과 배치되는 거짓된 것을 말하면서, 하늘에 가 보았더니 이러 저러한 것들이 세상에서 믿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더라고 말하면서 이것들을 알려 주려 왔다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나님의 권위있는 성경 말씀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영혼같은 존재가 말하는 말을 믿을 것인가? 우리가 영혼은 죽지 않고 어디엔가에 존재 한다고 믿고 있으면 사실상 커다란 기만을 향하여 문을 크게 열어놓고 살고 있는 셈이 된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영혼이 우리를 지금 내려다 보고 있고 또한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고”. 자, 생각해 보자.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들이 다치고 사고나고 병나고 슬픈 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항상 보면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과연 하늘은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앞에서 공부한 것처럼, 성경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자기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지금 편히 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성경에도 없는 이교의 가르침을 가지고, 이미 고인이 된 우리의 부모들과 가족들을 이상한 귀신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부활을 가르치고 있다. 만일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지옥 또는 천국에 이미 가있다면, 도대체 그들을 또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일단 죽으면, 각기 자신에게 운명지어진 생명 또는 심판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땅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과 모든 천연계가 다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다 망하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부활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몸과 혼이 함께 일어나는 부활의 그 아침을 말이다. 우리는 과연 성경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철학과 가르침을 믿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