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죽는 순간에 무엇이 하나님께로돌아가나요?

영혼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까요?


앞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두 가지 재료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잠시 설명하였지만, 영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너무나 깊이 사람들의 마음에 박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위대한 과학을 좀더 자세하게 공부해 보자.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과학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영혼은 언제, 어떻게 없어집니까?”라는 질문에도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을 만드실 때에 사용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공식이 성경의 어디에 나와 있는가? 그것은 창세기 2장 7절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 : “주 여호와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life of breath)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이 되었더라.” 창 2:7
개역 한글판 성경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그러므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공식은, 흙(몸)+생명의 호흡 또는 생기(생명력)=살아있는 혼 또는 생령(사람) 이다. 물론, 여기서 생명의 호흡(생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호흡하는 공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가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은, 생명이 끊어지는 죽음의 순간을 호흡이 끊어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라” 시편 146:4.

A) 창조 공식에 대한 오해

다시 한번 창세기 2:7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모습을 상상해 보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빚으셨는데, 그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관들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 죽은 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몸에는 아직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심장은 있지만 뛰지 않으며, 피는 있으나 흐르지 않고, 두뇌는 있으나 생각하지 않는 죽은 몸이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그 몸에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추가하셨다. 그분께서 사람의“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이 되었”다(창 2:7). 이 말씀이 가진 중요성을 결코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잘못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몸 안에 영혼을 집어 넣으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오직 한가지 즉, 생명의 호흡(생기)을 불어 넣으셨다. 몸과 호흡이 합침으로써 사람은 살아 있는 영혼(생령)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공식은, 몸+영혼=사람이 아니라, 흙(몸)+생명의 호흡(생명력)=살아있는 영혼(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몸 안에 연기같은 영혼을 집어 넣으셨다는 미신적인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회나 학교에서 그러한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몸 안에“영혼”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러한 미신적 가르침이 그리스도 교회에도 깊이 들어와 있다. 성경에 나오는 몇가지 시적 혹은 비유적인 표현들을 제외하고는, 영혼이 육체의 안과 밖으로 드나든다고 말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으며,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 공식을, 몸+영혼=사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B) 예증으로 알아보는 하나님의 창조 공식

전구+전류=빛 : 위에서 공부한 것처럼, 영혼은 사망 직후에 연기처럼 빠져 나가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신 몸에 생명의 호흡을 첨가하신 결과로 존재하게 된 의식이 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이 진리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의 몸을 전구라고 가정하고, 그 속에 흐르는 전류는 하나님께서 몸 속에 불어넣으신 생명의 호흡으로 생각하면, 전구에서 비쳐나오는 빛은 몸과 호흡이 합쳐졌을 때에 사람이 된 영혼으로 볼 수 있다. 즉, 전구(몸)+전류(생명의 호흡)=빛(영혼 또는 사람)의 공식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가 반짝거리는 빛을 볼 때에, 우리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를 연상케 하는 매우 좋은 표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스위치를 내려서 빛이 꺼졌다고 하자.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에 빛은 어디로 갔는가? 갑자기 빛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더이상 전류가 전구에 흐르지 않기 때문에, 스위치를 내림과 동시에 빛이 즉시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 이제 이러한 전구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몸에서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빛)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면서,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올림으로써 인간의 몸에 다시 생명의 호흡(전류)을 회복시켜 주실 때까지 영혼(빛)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6:51~53.

위에서 언급한 전구의 예증이 바로, 사람이 죽는 순간에 육체와 생명의 호흡이 어떻게 전에 있던 대로 “돌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육체(전구)는 부패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생명의 호흡(전류)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감으로써 중단되면, 영혼(빛)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에, 아담은 흙덩어리인 육체에 불과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에 생명의 호흡(생명력)을 불어넣으시기 전에는 아무런 개성이나 감정도 없었다. 그런데 몸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을 주시자, 즉시로 사람은“살아 있는 영혼(생령)”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영혼(생령)이 육체와 생명의 호흡(생명력)과의 연합의 결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라면, 그 영혼이 사라지는 때는 언제이겠는가? 물론, 그것은 전구에 흐르던 전류가 중단되는 것과 같이 그 연합 상태가 파괴될 때이다.

판자+못=상자 : 우리들의 손에 판자와 못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두 가지 즉, 판자와 못이 있지만, 망치를 사용해서 판자에 못을 박음으로써 상자를 만들면, 이제 우리는 두 가지가 아닌 세 가지를 가지게 된다(판자와 못과 상자). 얼마 있다가, 조심스럽게 상자에서 못을 빼어 옆에 놓으면, 우리는 다시 판자와 못, 두 가지 만을 갖게 된다. 판자로부터 못을 빼었을 경우, 상자는 어디로 갔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자는 못과 판자가 서로 연합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즉, 몸과 생명의 호흡을 가지고 창조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둘을 연합시키셨을 때, 인간은 영혼이라고 불리워 지는 상태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하기를, 죽을 때에 영(호흡, 루아흐)은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다. (참조 : 이미 앞에서 배웠던 것처럼, “루아흐”나 “프뉴마”는 그것을 번역하는 사람이 영혼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와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호흡이 끊어지는 죽음의 장면을 “영, 신, 영혼” 등이 몸을 떠나는 것으로 번역하였지만, 원래의 의미는 생명의 호흡이 원래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의미함) 성경의 어떤 곳에서도 영혼이 몸 없이 떠돌아 다닌다거나, 몸 없이 계속 존재한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몸과 생명의 호흡의 결합관계가 깨어질 때, 영혼(생명체)은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영혼(생명)은 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생명력)이 없이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생명의 호흡(생명력)이 인간의 몸에서 제거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죽은 사람의 몸도 호흡이 몸과 결합되기 전의 상태인 흙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자 이제, 독자들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시간이 되었다. “영혼은 언제, 어떻게 없어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