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부:영혼 불며 사상의 뿌리를 파헤쳐 보셨나요?

영혼 불멸 사상의 뿌리를 파헤쳐 보셨나요?


종교의 차원을 넘어 동서고금의 절대다수의 신앙이 되어 온 영혼불멸 사상의 근원은 어디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수되어온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가?

이방 종교는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 희랍정교,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심령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강신술, 그리고 무당까지도 공유하고 있는 이 뿌리깊고 가지많은 영혼불멸 신앙의 근본은 어디인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전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혼불멸 신앙의 뿌리를 캐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히 9:27). 영혼 불멸 사상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파헤친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54호참조하세요.

 
영혼불멸 사상의 뿌리

인간의 귀에 들려진 첫번째 거짓말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사단의 속삭임이었다(창 3:4). 그러나 이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창 2:16).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죄의 결과로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은 인간이 스스로 판단해야만 했던 첫번째 운명적 퀴즈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와는 거짓말을 믿기로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그의 이성은 죽음을 부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죽어도 우리 몸 안에 있는 어떤 존재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같은 느낌에 속아서 영원불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영원불멸의 착각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어 왔다. 힌두교, 불교, 자연신교, 무속신앙 등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불멸과 환생이라는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속삭였던 거짓이 진리를 이기고 보편화 되었다.

 
기원전 : 영혼불멸 사상의 기초를 놓은 헬라 문화

사단이 시작한 영혼불멸 사상은 헬라 문화와 접목되면서부터 새로운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과 윤회와 환생의 사상이 만연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6세기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영혼불멸 사상에 기초하여 윤회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이렇게 철학이라는 옷을 입은 영혼불멸사상은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서는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는데, 그는 죽음을 통하여 영혼이 해방되어 감옥과 같은 육신에서 벗어나서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영원한 “이데아”(idea)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가르쳤으며, 자신의 그러한 믿음을 실증하기 위해서 여러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소크라테스의 인상적인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열렬한 주창자가 되었으며, 그의 논집인 파에돈(Paedon)은 영혼불멸 사상의 교과서로 자리 잡게 되어서 중세기까지 서방 정신문화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영혼불멸 사상은 고대 헬라의 신비주의에 기초를 둔 이교 사상이라는 사실을 “유대 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영혼불멸의 신앙은 헬라 사상, 특별히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상을 이상하게 혼합한 신비 종교를 받아들인 플라톤의 철학과 접촉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유입되었다.”

 
3세기 : 영혼불멸 사상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

로마제국의 헬라 문화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당대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신학교가 있었는데, 3세기 초에 그 신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오리겐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영혼불멸 사상을 그리스도 교회로 끌어 들였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다”라고 선언하고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플라톤주의자”라고 자처하였다. 오리겐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북아프리카 칼다고 출신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도 플라톤의 영혼불멸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복락을 누림과 같이 악인의 영혼도 지옥불에서 영원히 탄다는 영원지옥설을 최초로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데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하여 죄의 결과인 “사망”을 “영원한 불행과 고통”으로 바꾸어 놓았다.

 
5세기 : 연옥 신앙의 문을 연 어거스틴

터툴리안과 같은 라틴 교부이며, 북아프리카의 히포 출신인 당대 최고의 신학 교부인 어거스틴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세웠다. 그는 33세 때에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는데, 그 전까지 마니교의 신자였으며, 플라톤주의를 열렬히 신봉하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한 이후에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리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는 “개개인의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됨과 동시에 내세에는 정결케 하는 고통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연옥의 개념을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 왔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연옥의 개념은 “플라톤의 그치지 않는 고통의 처소의 개념”을 따른 것이다.

그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의 연옥에 관한 교리의 기초가 놓였으며,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서 서기 582년에 교리로 인정되어, 기상천외한 연옥에 관한 신앙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영혼불멸의 주창자들, 즉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등이 모두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의 본거지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지방의 교부들임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3세기~16세기 : 이단이 된 정통, 정통이 된 이단

영혼불멸 사상과 그것에 기초해서 생긴 연옥 신앙은 13세기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확고한 신학으로 집대성되었으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단테에 의해서 그 유명한 신곡이라는 소설이 쓰여져서 영혼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이 민속신앙으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상인 영혼불멸 사상이 그리스도 교회 안에 넓게 퍼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를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이 영혼의 속성은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거룩한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영혼은 ... 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의 교시에 따라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며 그와같은 그릇된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 이 때부터 이교적이요 비성서적인 영혼불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식적으로 이단이 된 것이며,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종교개혁운동 이후 : 칼빈을 통해서 로마 천주교회로부터 개신교회로 되돌아 온 영혼불멸 신앙

프랑스에서 젊은 카톨릭 신자였던 칼빈은 개신교회로 개종한지 2년째가 되던 해인 1534년(25세)에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으로 가르친 그리스도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초의 신학논문인 “혼수론”을 씀으로써, 오늘날 일반 개신교회들이 영혼불멸 신앙을 따르도록 만드는 불행한 계기가 되었다. “혼수론”이 개신교회로 개종한지 불과 2년만에 나온 논문이고, 그것을 저술한 때의 칼빈의 나이가 25세라는 어린 나이였음을 생각할 때, 그가 저지른 신학적 과오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결과와 영향은 참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상처가 크고 깊다.

칼빈에 앞서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하였던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인 위클립과 틴데일, 그리고 독일의 마틴 루터 등이 중세 카톨릭 교회의 영혼불멸설 교리가 이교적인 사상임을 공공연하게 지적하고 나선 이 후에 “혼수론”이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종교개혁의 주역인 칼빈이 취한 이교적이요 비성서적인 입장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칼빈이 받아들인 영혼불멸 신앙은 도데체 어디에 기초를 둔 것인가? 칼빈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교도 철학자들로부터 영혼의 정의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라고 바르게 정의하였다.” 칼빈이 저술한 “그리스도교 강요” 제1권 15장 6항의 “영혼과 그 기능” 장에는 자신의 가르침이 플라톤의 사상에 근거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칼빈과 플라톤은 영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매우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에 관한 칼빈의 정의 : “사람의 신(sprit) 혹은 영혼(soul)은 몸과 구분되는 본질이다 ... 몸이 죽은 후 영혼은 감각과 지성을 갖춘 채 살아있다. 여기에서 나는 영혼의 불멸 이외에 어떤 다른 사상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단언하는 바이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8, 1246. Mead, 86,87.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모든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 Thomsen, 40,41.

영혼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 : “죽음이란 몸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고,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우리가 몸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토록 큰 악에 의해서 더럽혀져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 도달해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몸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Paedo, Mead 197,202.

그리하여 어떤 학자들은 칼빈의 “혼수론”에 대해서 “기록은 칼빈의 손으로 했지만, 목소리는 플라톤의 목소리이다”라고 개탄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영혼불멸과 연옥 신앙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중세기 카톨릭 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던 개혁자들의 성서적 주장을 무시하고,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은 천주교회의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전수한 칼빈으로 인하여 영혼불멸 사상은 오늘날 개신교회의 전반에 걸쳐서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다. 만약 칼빈만 종교개혁자들과 협력하였더라면, 영혼불멸 사상, 연옥 사상, 영혼이 죽은 순간에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간다는 사상은 종교개혁운동에 밀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자, 이제 독자들에게 질문하고자 한다. “영혼불멸 사상의 뿌리를 파헤쳐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