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2~23

성경은 “방언”을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실제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마 28:19)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명령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나 또는 두가지 정도의 언어밖에 모르는 제자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비록 제자들이 총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교육받지 못한 문맹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사가 필요되었다. 이것이 바로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를 말하게 하는 초인간적이고 신비스러운 언어의 은사인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7. 이 성경절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방언” 또는 “언어”는 하나의 “표적”으로서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전에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로 유창한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에는 방언을 말한 예가 3번 나온다 (사도행전 2, 10, 19). 이 성경절의 예를 잘 살펴보면 방언의 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불”은 능력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언의 은사를 불의 임함처럼 보여주심으로써, 애굽의 바로 왕 앞에 나아갈 때에 모세가 받았던 그 능력에 (출 4:10~12) 상당하는 능력과, 이사야의 혀에 닿았던 하늘에서 온 숯처럼(사 6:6,7), 그들의 연약한 혀에 하늘의 능력이 내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 오순절까지 기다리신 이유 

왜 하나님께서는 방언의 은사를 내리기 위해서 오순절까지 기다리셔야만 하셨을까? 사도행전 2장 5~11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리비아인 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명절로서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로마 제국의 곳곳에 퍼져있는 모든 진실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택하셔서 방언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내리심으로써, 그 곳을 방문중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이 성경 말씀에 따르면 적어도 15개 이상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자들에게 내려진 방언의 은사로 인하여, 타지에서 살다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개심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오순절을 보낸 후 그들은 제자들이 전한 새로운 복음을 가지고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이 말씀은, 방언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하여 내리는 은사임을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 날에 있었던 기적이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이었다고 오해하고 있다. 이 은사는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은사가 아니었고,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은사였다. 이것은 언어의 은사였지, 들음의 은사가 아니었다.

성경에 나타난 방언의 3가지 기능 

1. 첫 번째 예증 :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하늘의 언어”로서 오직 하나님과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과 듣는 사람들이 모두 그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11절).

2. 두 번째 예증 :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도한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4~46. 사도행전 10장 1절에 보면 고넬료는 이태리 사람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역사에 의하면 로마의 시종들은 여러 나라에서부터 잡혀온 사람들이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을 때,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장벽이 있었음이 확실하며, 베드로는 아마 통역관을 세워서 통역을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이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에게 내려졌다. 그 결과, 그 곳에 있던 유대인들과 베드로는 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유대인들이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하나님을 높임”의 음성을 들었다고 적고 있다(행 10:46). 후에 베드로는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오순절날)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행 11:15) 하였다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하여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오순절날 받았던 동일한 방언의 은사를 받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이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다른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세 번째 예증 : 방언에 관한 마지막 예로는 바울이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전도한 일이다. 사도행전 19:6절에 말하기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도였으며, 가장 많이 선교 여행을 하였던 사람이다(고전 14:18). 성령이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임하였을 때에 바울은 그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로마 제국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를 말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야 전도하는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이 성경말씀들을 통하여 방언의 은사는 여러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려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4장에는 2장에 나오는 오순절과 유사한 장면이 나타나 있지만,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모였던 장소가 흔들렸으며 사람들은 성령으로 감동되어졌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다. 사도행전 4:31절에 말씀하시기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늘로부터 성령의 침례가 내려지는 이유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전도하기 위한 능력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하신 것이다.

Q & A

문: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방언을 하게 됩니까?

답: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몸의 지체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 몸이 팔, 다리, 눈, 코… 등 같이 기능이 다른 부분이 합쳐져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8~10)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기 다른 은사가 내려진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그 결과로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신자들은 방언을 거짓으로 만들어 내고, 어떤 이들은 실망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9-31절부터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히 증언하고 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바울은 다 사도일 수 없고, 다 선지자 일 수 없고, 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을 수 없고, 다 방언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