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


내 안에 도사리는 반역을 뿌리 뽑는다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모든 죄들의 뿌리에는 반역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반역의 자아’를 죽여야 한다.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도덕적 판단력과 양심을 부여받은 피조물이 “내가 높아지겠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최초의 죄는 ‘타락한 천사’, 곧 사단의 죄이다. 그것은 ‘창조된’ 자아가 ‘창조되지 않은’ 자아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은 피조물이 창조주께 반역하는 것이다.

1. 죄의 증상과 모양

죄는 여러가지 증상과 모양으로 나타난다. 마음의 죄, 의지의 죄, 감정의 죄, 육체의 죄 등 여러가지 죄들이 있지만, 이것은 모두 ‘자아’라는 뿌리에서 흘러나온다. 완고함, 이기심, 자기를 믿는 교만 등이 모두 ‘자아’에서 나온다. 본래 자아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아를 주셨지만, 우리는 그 자아를 잘못 사용하여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갔다”(사 53:6).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위해 죽으셨지만,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가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한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다.

2. ‘구세주’와 ‘주’를 분리하지 말라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Savior)로 영접하지만, 그분을 우리의 주(Lord)로 영접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구세주 되심’과 ‘주 되심’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종종 집회에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는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트기를 타고 천국으로 고속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영접하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이 복음을 믿으십시오!”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황하고 혼란에 빠지며, 결국 복음이 진정 무엇인지룰 모른 채 전도 집회의 장소를 떠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분이 아니시고 한 분이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직무들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된다. 만일 그분이 나의 주인(주님)이 되어 나를 통제하실 수 없다면, 그분은 구세주로서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이 나를 자아로부터 건져내실 수 없다면, 그분은 나를 멸망에서도 건져내실 수 없을 것이다.

3. 이기적 즐거움 VS 무욕의 즐거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현재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당신의 야망이나 큰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의 큰 꿈을 이루어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것은 마음의 만족을 주지 못하고 결국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고 우리 존재의 이유이다. 몇 세대 전 살았던 독일의 신앙의 용사 하인리히 수사(Heinrich Sousa)는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기쁨을 앗아가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무한한 기쁨을 주려고 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무한한 기쁨이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적 즐거움’에서 구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무욕(無慾)의 즐거움’을 주시기 원하신다. 우리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먹이고 사랑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 주여! 저를 자신에게서 건져내어 주님의 품에 안으소서!”(휘딩턴의 찬송시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시라’의 후렴구)라고 외치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무욕의 마음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4. 자아의 죽음

당신의 문제는 바로 ‘자기의 의지를 굽히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내게 “토저 목사님, 문제는 내 성격입니다. 나는 나쁜 성격 때문에 자꾸 넘어집니다”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밝혀두건대, 문제는 성격이 아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분과 함께 죽어야 한다. 자아를 지키는 자는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것을 잃어버리는 자는 오히려 영생에 이를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는 바울의 교훈은 영원불변의 지혜이다.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때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봉사를 열심히 하면 무언가 신앙으로 산 것 같다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집안 식구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는 중에 독창을 맡아 목청을 높이고,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피아노 반주를 하면 무언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신앙적 활동을 하고도 정작 본질적인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당신은 십자가가 마치 칼처럼 당신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반역적 자아’를 죽이는 체험을 했는가? 당신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것”(히 12:1)이 무엇인지 아는가?

만일, 이런 깨달음이 없다면 당신의 외형적 활동들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눅 9:23)는 주님의 말씀뿐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국을 떠나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간다거나, 좋은 직업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현상적인 것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자아’라는 것이 있다. 이 자아가 죽지 않으면 자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영 안에 도사리고 있는 반역자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쟁이요, 당신을 짓밟고 죽이려는 못된 존재이다. 당신은 이런 자아로부터 건짐을 받고 싶은가? 훈련은 그것을 당신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다. 교육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교육은 당신을 세련되게 만들지는 몰라도 자아를 죽이는 데는 무력하다. 자아를 죽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당신 속에 있는 원수를 죽일 수 있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