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부: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1). 기간: 19세기 중엽 이후~ 예수 재림까지(마지막 교회, 현대 기독교회)

2). 이름의 의미

라오디게아의 뜻은 “백성을 심판하심”이다. 이 교회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교회를 말한다. 그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시대의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3). 칭찬의 말씀

두려운 사실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칭찬의 말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세속적인 자기 만족의 정신에 빠져 있으며, 영적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당신의 책망을 표현하셨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15절.

4). 책망의 말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7절. 이 마지막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 자신은 너무나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뜨뜻미지근한데, 그 상태는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믿는 것도 아니고 불신하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는 교회의 시대, 곧 마지막 시대인 현재 교회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이다. 가장 비참한 형편인 것이다. 제일 무서운 영적인 형편은 자기 자신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 곧 가장 잘못되어 있으면서, 가장 올바르다고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이 교회는 자기의 영적인 참 모습과 상태를 모르는 교회로서, 자기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고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교회는 자신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멀어 있으며, 신앙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인 현대 기독교회의 신앙을 보시면서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고 계신다(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가장 뜨거워야 할 이 마지막 교회가 가장 미지근한 상태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인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과 필요를 느껴야 구조의 도움을 요청할텐데, 거의 완전한 자기 만족과 자기 기만 속에서 종교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비극이 있을까?

5). 권면의 말씀

마지막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이러한 치명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처방을 내려 주셨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8절.

1. 불로 연단한 금: 용광로에서 연단되어 나온 금은 시련을 통하여 연단된 순결한 믿음을 의미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베드로전서 1:7.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2. 흰 옷: 성도들의 의를 나타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요한계시록 19:8.
3. 안약: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진리를 식별하고 깨닫게 하는 성령을 의미한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8~19.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요한복음 16:13.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는 뜻은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진리를 식별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먼저 볼 수 있게 되어야 고침을 받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족한 상태에서 깨어나서 우리의 참된 영적 형편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의의 옷이 없이 벌거벗은 형편을 보아야 한다.

결국, 이 세 가지 처방을 종합하여 보면, 순결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옷입어서 성품이 변화되고, 의로운 생활을 살며,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 눈을 뜨며, 양심이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치료의 말씀인데,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예수께서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이 문에 서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마음 문밖에 세워두고 있는 교회,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관계를 말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강요하지 않으신다. 구원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주님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남이 나를 대신해서 먹어 줄 수가 없다. 독자의 마음에는 예수께서 살아 계시는가?

6). 약속의 말씀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구원은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시대에도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특권이 주어진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1~22절.

7).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시는 기별을 유의해서 연구하여야 한다. 이 기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신적으로 평안한 형편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은 곤고하고 헐벗은 상태에 있지만, 영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믿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자신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 데도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지는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비참한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기만을 알고 있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형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탄할 만한 상태인 것을 알지 못한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높은 영적 수준에 처해 있다고 자부하고, 아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을때, 참된 증인의 기별은 그들이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다는 무서운 책망으로 그들의 안전과 거짓 구원의 확신을 깨뜨린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는 것, 곧 자기의 질병의 성격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그들은 중립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 여기서 뜨뜻미지근한 자들에게 사라고 권고하신 순수한 금, 곧 믿음과 사랑은 참된 부(富)이다. 우리가 지상의 보화에 있어서 아무리 부요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재물을 가지고 소위 미지근한 영적 질병을 치유할 귀중한 치료제를 살 수 없다. 지력과 지상의 부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결점을 제거하거나 그들의 비참한 형편을 치유하기에 무력하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지만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일깨우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스스로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움의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회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자아 기만의 힘이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므로 은혜로 모든 것을 덮어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기만 속에 너무 깊이 빠져서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눈이 멀어 있는가를 보라고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라고 주님께서는 권고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좌정해 계시지 않는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들은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들여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경험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재해 계실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고, 그분과 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순수하고 산 믿음인 금을 소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사람들, 성령의 내재로 깨어서 늘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볼 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죄를 승리하고 마침내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 될 것이다. 당신은 라오디게아 교회 형편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문밖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고 그분과 항상 함께 사는 사람들이 되자!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