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

1). 기간 : A.D. 538~16세기 초

종교 암흑시대의 교회, 광야로 피신한 교회; A.D. 538년, 유럽의 국왕들을 지배할 만큼 강력하게 교황권의 세력이 확립됨에 따라, 교황권은 교회가 제시하고 가르치던 교리와 지시를 거절하고 바꾸었으며,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고수하기로 선택한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핍박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사 중에서 이 시기에 성경 진리가 가장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16세기 초에 종교 개혁운동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교회를 말하는데,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여 진리를 고수하였다.

2). 이름의 의미

두아디라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통탄스러운 희생”인데, 이것은 이 시기를 대표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의미이다. 교황권의 통치로 인해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온 배도 때문에 믿음의 단순성은 희생되고, 그것은 외적인 행함과 고행으로 대치되어 버렸다. 교회 역사의 4번째 시기인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와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단순한 복음을 떠나서 복잡한 종교 의식과 인간 중보자와 인간 제사장 제도를 만들었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깊은 상처를 가져온 시기였다. 교회는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의 신앙을 저버리고 죽은 행위과 의식을 신앙의 기초로 만들어 나갔다.

3). 칭찬의 말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을 말씀하신 분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었다(18절).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곳은 바로 여기뿐이다.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한 중보자의 위치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빼앗기셨다. 마리아라는 인간 중보자가 등장함으로써,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직접 나가는 대신에 마리아라는 여인을 바라보도록 가르침 받기 시작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약 천 년에 이르는 가장 긴 기간의 교회의 역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가들은 그 기간을 종교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종교 개혁운동에 의해서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그 종말을 고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고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광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시면서, 특히 그들의 “나중 행위”를 칭찬하셨다. “내가 ...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19절. 두아디라 교회 시대가 끝나갈 무렵, 위대한 개혁자들 즉, 루터, 낙스, 칼빈, 쯔윙글리 등과 같은 성직자들이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나서 개혁운동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4). 책망의 말씀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일곱 교회에 보내는 7개의 서신 가운데 가장 길고 강력한 책망의 말씀이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졌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20절. 세속화되고 변질된 교회를 표상하기 위해서 이세벨 만큼 적절한 표상은 없을 것이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여제사장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바알신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문을 열어 놓았다. 이세벨은 결국 국권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전체가 우상 숭배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 앞에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배도를 책망하면서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대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아합왕과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엘리야의 개혁의 호소를 듣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이세벨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배도에 빠지게 되었던 것처럼, 우상 숭배와 이교 사상을 받아들인 두아디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중세기 동안 교회에게 주어졌던 엄청난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우상숭배와 잘못된 교리를 백성들에게 강요하였다. A.D. 538년, 저스티니안 로마 황제는 로마 교회의 주교를 “이단자들을 교정하는 자”로 세웠는데, 교회는 이단을 박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교황권의 교회의 지시와 가르침을 거절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고 사형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정치의 권력과 손잡고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종교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천 년 동안 교회는 영적인 대기근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산과 계곡의 토굴 속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셔서 보호하셨으며, 그들을 통하여 진리를 보존하고 개혁의 기별을 전파하시면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끝내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치 아니하는도다” 21절. 오히려 교회는 개혁운동에 참여한 개신교도들에 대항하여 반 개신교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보지 못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우고 말았다.

5). 권면의 말씀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5절. 이 말씀은 계시록에 나오는 첫 번째 재림에 대한 약속이다.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핍박과 고문을 당하던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 주님께서는 너희의 믿음과 진리를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였다.

이 시기 동안,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은 성경의 위대한 진리인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크게 왜곡시켰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죽었던 몸이 실제적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죽은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부활하는 것으로 왜곡하여 가르쳤다. 주님께서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라고 하시며 그들에게 재림을 강조하셨다.

6). 약속의 말씀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6~28).

이기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약속하셨다(26절).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린 많은 순교자들과 핍박과 고문을 견디면서 성경의 진리를 고수한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가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며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을 것이다.

“또 내가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8절. 교회가 엄청난 배도로 인하여 가장 길고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에,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개혁자들을 일으키셨다. 위클립, 허스 등과 같은 개혁자들은 종교 개혁의 아침을 불러온 새벽별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새벽별들이 나타나 종교 개혁운동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기독교가 진리로 회복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종교 개혁운동은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성경의 진리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7).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졌던 이세벨을 용납하고 행음했다는 책망의 말씀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고 있다. 영적인 우상 숭배에는 진리의 타협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 중세기 영적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진리 대신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오류의 가르침들은 현시대의 기독교에 아직도 스며들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와 올바른 가르침과 인간의 유전을 따라 만들어진 오류를 구별하여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영적인 경험이 잘못되어 기만 속에 빠지게 되며 영생을 위해 준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오류들은 지금 기독교에 깊이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거짓 구원의 기만 속에 빠뜨리고 있다. 구원을 위해 준비하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짓된 가르침의 일환으로 연옥설이 존재하고,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론의 일환으로 미사와 성찬식을 만들어내었고, 인간이 태어나는 자체가 죄라는 것을 강조하고 죄에 대한 정의를 변조하여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승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신신학과 또 반쪽만의 복음인, 은혜로 구원받았으므로 순종과 의지의 굴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변질된 복음들이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50, 90, 93호 등을 참조하십시오)

이런 때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진리를 연구하고 그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이기는 자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즉 하늘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라는 귀한 약속을 주셨다. 복음에 굳게 서서 끝까지 충성하는 우리가 되자!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