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사데 교회

사데 교회

 

1). 기간: 16세기 초~18세기 말엽

종교 개혁과 분열의 교회; 종교 개혁운동과 함께 진리와 단순한 믿음이 되살아 나는 듯했지만, 개혁의 정신이 사라지면서 개혁자들의 후예들은 각기 다른 교파를 만들어서 안주함으로써 개신교 운동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2). 이름의 의미

“사데”라는 이름은 “남아 있는 것들”, 또는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천 년이라는 길고 긴 배도와 박해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리스도 교회는 참된 신앙을 거의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자, 광야에 피신하였던 소수의 남은 무리(참 백성)와 개혁자들은 개신교회의 아침을 열었다.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표현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당신의 개혁자들을 통하여 무너졌던 진리를 회복할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1절).

3). 칭찬의 말씀

사데 교회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데 교회는 과거에 개혁자들이 이루어 놓은 영광에만 의존하여 존속하였다. 몇몇 살아있는 것들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외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죽어가고 있었다. 종교 개혁 이후, 여러 개신교회들이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회복하는 듯이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4). 책망의 말씀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사데 교회는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 덕분에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다시 거의 죽게 된 상태에 이르렀다. 한때 그들이 개혁자들에게 들었고 받았던 신앙이 잊혀져 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종교 개혁자들이 미쳐 다하지 못한 개혁운동을 더 밀고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진리로 회복되고 그들의 신앙과 진리가 더 완전한 빛으로 나아갔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들의 선조 개혁자들이 해 놓은 개혁 운동에 안주하고 마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5) 권면의 말씀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2~3).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에게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권면하신다. 진리를 고수하고 성경과 맞지 않는 복음을 타파하고 개혁하려고 혼신을 다했던 개혁자들의 헌신과 희생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개혁자들이 일구어 놓은 진리의 보화들을 더 캐내고 연구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것들을 택하여 교리와 종파를 만들고 그 종파에 스스로 안주하여 버렸으며, 그리하여 폭넓게 온전한 복음을 수용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교리를 주장하고 종파의 장벽을 쌓아 올렸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회개하라고 촉구하신다.

6) 약속의 말씀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 3:4).

그러나 그러한 사데 교회 안에도 몇몇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패되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였으며, 의의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이 내리막 길을 달릴 때에도, 모라비안 교도(개혁자 허쓰의 후예)와 퀘이커 교도(영국의 죠지 폭스의 후예)와 청교도들은 개혁의 정신을 유지해 나갔다.

사데 교회는 한때 진리의 빛과 약속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곧 신학과 교리 분쟁에 골몰함으로써,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개혁 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믿음을 통하여 마음과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성경의 대진리가 신학적 분쟁과 논쟁에 의해서 깊이 파묻히고 말았다. 우리가 아무리 루터와 칼빈과 웨슬러의 후예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정통이라고 인정해 줄지라도,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해 있지 않으면 그러한 인정과 역사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종교 개혁자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천주교회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과 교단을 만들어서 안주하기 시작하였다. 루터와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위대한 개혁 사업이 이제는 사람들의 돈에 의해서 운영되는 공공단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만심이 영혼을 병들어 가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데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에서 청교도들을 일으키셔서 신대륙인 미국에서 완전한 종교 자유를 가지고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다.

7).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우리의 영적인 생애에 있어서도 사데 교회에 주어진 책망과 권면의 말씀은 아주 유익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점에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 즉, 다 이루었다는 지점, 다 깨달아 알았다는 지점이 있으면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했으며, 또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고 간증하였다.

우리의 영적인 경험인 거듭남도 이와 같다. 어제의 거듭남이 오늘의 거듭남이 될 수 없고, 어제의 깨달음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더 깊은 거듭남과 진리에의 깨달음과 경험으로 전진해야 한다. 영적인 전진에 있어서 정지란 없다. 그것은 곧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관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늘 가지된 우리가 나무인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경험, 즉,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는 매일의 산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데 교회에 시작되었던 종교 개혁운동은 마지막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광명에 이를 때까지 더 밝은 진리의 빛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선조 개혁자들이 미쳐 회복해 놓지 못한 성경의 총체적인 진리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파와 종파를 만들어 놓고 서로 높은 장벽을 쌓은 채 자신들의 교리만 옳다고 주장하며 거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받아들여 고칠 것은 고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과감한 개혁과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런 종교 개혁운동에 참여하는 일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의 특징이 될 것이다.

사데 교회에 주어진 약속의 말씀처럼, 믿음의 의의 경험을 올바르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사람은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흰 옷을 입고 영원히 살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경험과 생애가 늘 전진하며 발전하고 자라나는 것이 되도록, 또 계속되는 영적인 종교 개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자신을 살피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면서 살아가자!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