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

 

1). 기간: A.D. 313~538년

타협의 시대;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한 이후, 그리스도 교회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갑자기 수많은 이교도들이 콘스탄틴 황제를 따라서 개종하게 되었다. 교회는 새로 개종한 이교도들과 국가의 요구에 따라서 진리를 타협하게 되었다.

2). 이름의 의미

버가모라는 이름의 뜻은 “성채,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핍박의 시대 동안에도 굳건하게 지켜지던 믿음의 순결함은, 정치와 종교가 서로 손을 마주 잡음으로 핍박이 중단되고 세속과 권력이 교회 안에 들어오자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믿음의 성채는 무너지게 되었다.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를 국교로 선포한 이래 교회는 세속과 타협의 길을 걸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내셨다. 12절.

버가모 도시는 사단이 지배하는 종교의 본거지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seat: 보좌)가 있는 데라”13절.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페르시아는 바벨론에 속해 있던 버가모 도시의 시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도 바벨론의 종교는 계속되었으며, 바벨론 신전의 제사장들도 그들의 신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바벨론의 종교는 버가모를 통하여 나중에는 로마에까지 전달되었다. 버가모는 고대 바벨론과 로마제국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 역할을 하였다.

3). 칭찬의 말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비록 버가모 도시가 사단이 주도하는 바벨론 종교의 중심지이긴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을 가지고 계셨다. 안디바(Antipas)는 버가모에서 순교 당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 교회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을 얻고 권력자들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서 타협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때에 안디바라고 불리우던 소수의 그리스도인 그룹은 교회의 지도층 즉, 교황권에 대해서 저항하였던 것이다. 타협과 세속의 길을 걷던 버가모 교회에 있어서, 안디바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참 백성)을 대표하였다.

4). 책망의 말씀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15).

버가모 교회에 대한 책망의 말씀은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우상을 숭배하고 행음한 것에 대한 책망이 주어졌다. 요한계시록 16장, 17장에서는 음녀와 행음하는 상징적인 묘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순결하던 교회가 교황권, 즉 바벨론과 타협하고 그리스도교의 순수하던 진리가 바벨론의 포도주로 더럽혀진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영적인 우상 숭배와 음행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영적인 음행은 버가모 교회 시대에 이루어졌다. 교회에는 오류와 이교의 미신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뒤섞인 이상한 교리들이 판을 치게 되었고, 교회는 영적인 암흑시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때에 책망의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 배도는 참으로 신속하게 발전해 나갔다. 제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 “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되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절.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이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 “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5). 권면의 말씀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하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은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의 검이 마음속의 모든 것을 잘라 드러내실 것이며, 그 드러난 상태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버가모 교회가 하나님의 눈앞에서 안전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이었다.

6). 약속의 말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 “흰 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7).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버가모 교회가 당면했던 문제들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와 있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요즈음 기독교에서 인기리에 가르쳐지고 있는 자유주의 신신학이다. 이것은 반쪽 복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강조하지, 제일 중요한 부분인 진정한 마음의 변화와 온전한 회개, 그리고 의지의 완전한 굴복,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일들에 대하여 강조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믿기만 하고, 믿는다고 말만 하며, 믿는다고 머리로 동의만 하면 다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거짓 복음이다.

또한 버가모 교회가 지적 받았던 우상 숭배와 음행이 현대 기독교인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애정과 경배를 다른 것에 두고 그 대상을 섬기는 것을 영적인 우상 숭배라고 부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첫째가 되어야 할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사랑이 그 자리를 빼앗기고, 그 대신 자신을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과 재물과 쾌락에 대한 사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상 숭배의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짓는 죄였다. 사단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인도하기 전에 먼저 늘 방탕으로 유인하였다. 육체의 정욕의 방종은 지력을 약화시키고 영혼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풍속과 습관과 원칙에 있어서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신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나니”(요일 2:15).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에게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끄는 많은 오락들이 있다. 그 오락들 중에는 사단이 영혼들을 멸망시키는 데 이용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영화를 통해서 사단은 각 시대를 통하여 인간의 정욕을 흥분시키고 악한 습관을 조장하는 일을 해왔다. 교만한 마음을 기르거나 식욕의 방종을 조장하는 것과 하나님을 잊게 하고 영원한 구원에 대한 관심사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오락장에서 사단은 쇠사슬로 영혼들을 속박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애의 순결을 찾으려는 노력이 헛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고상하고 덕있는 품격을 건설하려는 자는 흐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상 숭배의 위험에 빠질까 자신을 늘 살피며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사단의 계책과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한다. 불순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들을 읽거나, 보거나, 듣는 일을 피해야 한다. 사단이 암시하는 모든 문제에 무분별하게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 일에는 열렬한 기도와 끊임없는 경계가 요구된다. 우리는 마음을 향상시키고 마음속에 순결하고 거룩한 사물을 항상 생각나게 하는 거룩한 성령의 끊임없는 감화를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경계하자! 믿기만 하면 된다는 자유주의 신신학을 조심하고, 반쪽 복음대신 온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자!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을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복음의 능력은 인간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로부터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은혜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가자!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