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왜 옛 언약은 계속될 수 없었나?

옛 언약이 계속될 수 없었던 이유


한번은 설교를 마친 후,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입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을 가로 막는 세 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큰소리로 내게 묻기를 “목사님, 오늘 목사님께서는 십계명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시면서 마치 우리가 옛 언약 아래 살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 젊은이는, 십계명은 옛 언약이며, 그것은 십자가에서 폐하여졌으므로 은혜 아래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십계명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상, 그 젊은이가 가졌던 믿음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러한 확신은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무서운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 문제를 성경이라는 저울 위에 달아 보아야 한다. 오늘날, 율법과 언약에 대한 오해야말로 기독교회가 부도덕하고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가의 법이 폐하여 졌거나 불필요하다는 사상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그 국가가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무법한 상태 아래서 온갖 범죄와 부도덕함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경시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교회 안에는 부도덕과 세속이 난무하게 될 것이고, 정치적인 목사들과, 권력을 사랑하는 장노들과 이기적인 집사들의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언약의 정의

언약과 십계명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언약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언약에는 여러 형태와 유형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서로의 약속과 맹세에 기초한 쌍방의 합의를 뜻한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에 기초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는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고, 어떤 경우에는 국가와 언약을 맺으셨다.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언약이 맺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는 조건은 항상 불변하였고 다른 것으로 대치되지도 않았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언약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우리에게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옛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 째것(새 언약)을 요구할 일이 없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 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리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옛 언약)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6~13

이 말씀은 옛 언약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약속”을 가지고 있는 새 언약 이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옛 언약은 낡은 것이 되어서 없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한다는 새 언약이란 어떤 것이며, 낡아져서 사라져 버렸다는 옛 언약은 어떤 것인가?

폐하여진 언약은 십계명이 아니다

옛 언약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 언약이 무엇이 아닌가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폐하여져 버린 언약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폐하여진 그것은 십계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폐하여진 언약에 십계명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3가지 증거가 위에 언급한 성경절에 나와 있다.

첫 번째 증거 :

바울은 “더 좋은 약속이 있는 더 좋은 언약”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옛 언약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만일 십계명이 옛 언약 그 자체라면, 십계명 속에서 어떤 빈약한 약속들을 찾을 수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오히려 히브리서의 저자인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십계명에 기록된 도덕률들이 매우 좋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자녀들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옛 언약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는 십계명에 기록된 도덕률을 빈약하거나 흠이 있는 언약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 권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울의 이러한 설명을 통하여, 히브리서 8장에 기록된 흠이 있는 언약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증거 :

옛 언약에 대한 오해 중에 가장 큰 오해는 “옛 언약에 결함이 있었다”는 말에 대한 의미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8장 7절. 만일 십계명이 옛 언약 그 자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손수 돌비에 기록하신 십계명에서 어떤 결함을 발견해야 한다. 시편을 기록한 저자와 사도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시편 19장7절. “이로 보건대 율법도 선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장12절. 십계명을 가리키는 이러한 성경절들이 무엇인가 빈약하고 결함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완전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완전하다는 말은 어떤 결함도 찾아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증거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8:13).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옛 언약이 폐지되어 없어졌다는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만일 옛 언약이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도덕률인 십계명이 낡아져서 없어져 갔다는 말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를 들어 보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장31절. 이로써 우리는 낡아져서 사라진 옛 언약이 십계명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쪽에서는 낡아져서 사라졌다고 말해 놓고서, 다른 곳에서는 동일한 것에 대해서 결코 폐할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성경은 언제나 일관성 있는 진리가 담겨진 책이다. 바울은 다만 사라져간 것은 옛 언약이고,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없어져 버린 옛 언약이 십계명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옛 언약은 무엇인가?

무엇이 옛 언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무엇이 옛 언약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자, 옛 언약을 맺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시내산으로 가보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셔서 당신과 백성들 사이에 맺을 언약을 제안하셨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 너희가 내 말을 받들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이 말씀 가운데 언약의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언약은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안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출 19:7~8).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다 행하리이다” 라는 대답이 하나님께 올려지는 순간 옛 언약의 기초가 놓여졌다. 그러나 그 언약이 공식적인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 약속을 봉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언약을 인준하는 의식은 백성들 위에 수소의 피를 뿌림으로써 거행되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4~8).

여기서 우리는 이 언약이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세워진 상호간의 약속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도덕률이지, 상호간에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언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맹세한 약속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답례로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언약의 체결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을 하는 백성들 편에서 보인 태도와 그들의 마음 상태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이었다.

언약을 깬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모세가 돌비에 새긴 십계명을 가지고 산을 내려가기도 전에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이제, 옛 언약의 결함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되는가? 문제는 언약을 맹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 있었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에 있지 않았다. 자, 이제 앞에서 살펴본 히브리서 8장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께서 “저희를 허물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8절). 또한 9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다. 분명, 상호간의 언약을 깨뜨린 장본인은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히브리서 8장에서 옛 언약이 “무흠하지” 않다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옛 언약은 백성들에게 속박을 가져왔을 뿐이며, 그들은 그것을 지킬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서 볼 때, 우리는 두 번째 언약 즉, 새 언약을 다시 맺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히브리서 8장에서 왜 새 언약을 “더 좋은 약속”이라고 표현했을까? 왜냐하면 언약의 창안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언약을 맺는 상대방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8장10~12절.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율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하셔서 우리를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놀 라운 약속이 새 언약에 포함되어 있다.

새 언약의 인준

이제, 새 언약이 어떻게 인준되었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옛 언약과 똑같은 방법인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숫소가 피를 흘리는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흘려졌다. “양의 큰 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하사 자기 뜻을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서 13장20절. 시내산에서 했던 인간의 빈약한 약속과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는 인간의 약속 대신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하사 ... 우리 속에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졌다. 우리가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께서 이루시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5절. 그런데 어떻게 새 언약이 봉인되었는가? 동물의 피가 아닌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인쳐졌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이 새로운 언약을 보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보자. 옛 언약은 짐승의 피로 인준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힘으로 지키겠다고 공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약속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출 24:5~8, 히 9:19~20).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기록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기초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준되었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장 10절.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