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새 언약의 경험을 하셨습니까?

경험으로 이해하는 새 언약의 의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에 대해서 질문을 해온다. 사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 조건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들을 지키고 순종하면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세우신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언약을 자기의 생애에서 이루는 자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인데, 사도 바울은 그들을 영적인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음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4-16).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점은 참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개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심령이 준비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고,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로마서 8:7,4).


새 언약을 이루게 하는 거듭남

사람이 거듭날 때의 마음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과도 일치되게 된다. 이 놀라운 변화가 죄인에게 생기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악에서 거룩함으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동기와 새로운 취미와 새로운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개심은 그 사람에게 악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유전적이거나 습관적인 성향들을 변화시키켜 주는 것이다. 옛 본성과 옛 기질들과 죄의 습관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물려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한 개심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깊이 감동할 때에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의 마음을 뜨겁게 녹일 때에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 마음속에 부어 질 때에(로마서 5:5), 계명을 지킬래야 지킬 수 없이 타락하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즐기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창조의 신비인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의 경험을 가지게 될 때에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살기를 즐거워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동기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새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러한 새 언약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마음의 거듭남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옛 언약의 입장에서 사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며,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이 가지고 온 변화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루는 동네 골목 친구들과 제일 즐겨하던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나무를 쪼개어 칼을 만들고 손잡이를 종이로 그럴싸하게 만들어 달았으며 나무를 휘어서 활들을 만들었다. 모래들을 퍼와서 성을 높다랗게 쌓고는 돌들을 주워 모아다가 총알들과 대포알들로 사용하였다. 우리들은 “돌격!” 소리와 함께 일제히 성에서 뛰어나가 칼싸움도 하고, 달려오는 적군들을 향하여 활들을 쏘아대었다. 그리고는 돌들을 서로 던지면서 총알과 대포알이 날아가는 양 신이 났었다.

워낙 정신없이 전쟁놀이를 하다 보면 서로 다치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전쟁놀이는 위험하니 제발 하지 말아라!”하시는 부모님들의 당부를 듣는 것이 우리 동네 아이들의 매일의 일과 중 하나일 정도였다. 필자의 부모님도 예외없이 전쟁놀이에는 참가하지 말라는 부탁의 말씀을 여러번 하신 터였다. 특히 나의 어머님은 돌던지는 전쟁놀이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엄히 당부하셨었다. 그러나 동네 친구들이 신나게 딩굴면서 뛰어다니며 함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군다나 부모님 말씀이 무서워서 뒤로 빼는 친구들은 비겁하고 나약한 배신자로 취급당하기 때문에 그 유혹을 견디기란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날도 여전히 어머님으로부터 전쟁놀이는 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나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돌아와 동네에서 신나게 뛰어 다니며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던 나는 또 다시 약해져서 그만 그 무리들 속에 휩싸여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우리 진지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한 적군을 향하여 차돌로 된 총알을 멋지게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던진 돌이 그만 길을 지나가던 행상 아주머니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린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땅에 주저앉은 여인의 이마에서는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조용해 진것 같았다. 아이들의 들뜬 소리들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공포와 걱정의 분위기가 갑자기 우리들의 마음을 휘감았다. 모든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죄의 대가를 한눈에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몇초 동안 얼마나 후회를 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넘어져 있는 아주머니를 향하여 “아주머니 미안해요! 아주머니 죄송해요!”라는 말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엉겹결에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너무 겁이 났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나는 무조건 뛰었다. 뛰어가 숨는다는 곳이 우리 집 앞 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들 뒤로 달려가 몸을 숨기었다. 어린 내가 가 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몰래 숨어 있으려니까, 갑자기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어머님이 급하게 나가서 문을 여시는 모습이 나뭇잎들 사이로 보였다. 대문 밖에는 동네 친구들로 둘러싸인 다친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그 친구들이 나의 어머니에게 내가 그렇게 했다고 열심히 고자질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어머님은 약품들을 꺼내와 일단 치료를 하고 나서 그 여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셨다. 나는 나무 뒤에 그냥 숨어있었다. 아버지 한테 혼이 날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왔다.

얼마가 지난 후에 어머님이 돌아오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 아주머니는 나 때문에 이마를 다섯 바늘이나 꿰메어야만 하였으며, 어머니는 그 분에게 돈도 얼마 주어서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병원에서 돌아오신 다음에 전혀 나를 찾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태연하게 일들을 하시면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안을 치우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는 더욱더 불안하게 되었다.
얼마인가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해가 서산에 뉘엿 뉘엿 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내가 숨어 있는 작은 나무들 쪽으로 다가 오시더니 이렇게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이 었다. “병국아! 이제 그만 나와서 저녁 먹자!” 어머님은 지금까지 내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무안하고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그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머니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간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상위에 가득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이렇게 못된 망나니 아들을 때려 주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려놓으시다니!

조금 후에 초인종이 울리더니 아버님이 회사에서 돌아오셨다. 나는 속으로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방으로 들어오시면서 물으셨다. “오늘 별일 없었소?”라는 아버님의 질문에 대해서, 어머님은 “예, 별일 없었어요!” 라고 대답하셨다. 그런 후, 부모님과 여동생들과 나는 저녁식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목이 메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복받쳐 치밀어 올라오는 듯한 것이 있었다. 나는 숫가락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훌쩍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아버님이 그 연유를 물으셨다.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운 것은 얼마 후에 아버지 한테 맞을 매가 무서워서 운 것도 아니었다. 창피하여서 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운 것은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안으신 어머니의 큰 은혜에 감동되어 운 것이었다.

그 순간 이후부터 전쟁놀이를 하고 싶은 욕망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이기기 어렵던 유혹이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는 않된다는 생각만이 내 가슴을 채워왔다. 어머니의 용서와 사랑은 나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전쟁놀이에 대한 욕망을 눈 녹듯이 녹여 버렸다. 그 이후로는 나는 더 이상 한 번도 전쟁 놀이에 참가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내 마음과 생각 속에 “다시는 전쟁 놀이를 하지 말아라!” 라는 당신의 율법을 기록해 주었기 때문이다.

새 언약의 경험

그때 나는 변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도 지킬 수 없었던 그 법이 이제는 순종하기에 아주 쉽게 되어 버렸다. 어머님의 말씀을 기꺼이 순종하기를 원하는 소원이 유혹과 시험이 주는 매력을 압도했던 것이다. 순종할래야 할 수도 없었고 순종하고 싶지도 않았었던 그 율법의 요구사항을 드디어 이루게 된 것이다. 전쟁놀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명령을 과거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한 이후에 완전히 상황은 달라져 버렸다.

바로 이러한 것을 새 언약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로 하여금 히브리 10:16에 기록된 새 언약의 의미를 이해하게 도와 준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은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보면서, 거기서 나의 구원을 위하여서 어떤 사랑과 희생이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에 우리는 드디어 새 언약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 드디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당신의 율법을 기록하실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요구대로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판이 두려워서도 아니고 하늘에 들어가고 싶어서만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어 다시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새 마음을 받았으므로 순종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거할 때, 우리는 변화된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게 된다. 구세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불길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독소들을 제거하여 믿는 자들의 뜻과 동기를 순결하고 고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러분은 새 언약관계에 들어와 있는가? 십자가로 나아가자!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새 언약의 관계를 통해서 죄를 이기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에 있게 될 것이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