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침례는 외식이 아니다

침례는 외식이 아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기를 거절하고, 특별히 침례 받기를 꺼리는지에 대한 많은 이유들을 들어왔다. 가장 많이 대답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정말로 그리스도인처럼 살 수 있는지 자신 없으며, 바리세인들처럼 외식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진정으로 믿음과, 회개와, 변화의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 할 수 없음만을 알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침례를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도와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여 우리가 다시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유가 우리를 침례 받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인 언약을 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영을 받을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더 큰 사단의 공격과 시험을 받을 줄 알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의 은혜를 믿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이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도 믿는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영적으로 침례 받기에 준비되지 않은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자라나서 그들의 눈이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침례 받기에 준비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실수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완전한 확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감정은 그들의 준비됨과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역사로 다시 태어난 경험을 한 그 의에 완전히 정착되어져야 한다. 침례를 받고자 하는 모든 신자들은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어떤 잘못된 행실과 실패로 그리스도를 실망시킬까바 두려워 해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러한 비 성서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일은 우리의 힘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물리치고, 시험을 극복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위험한 기만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힘으로 걷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이 시험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그의 영원한 친구로서 초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실패하지 않는 그의 약속의 능력을 주실 것이며 그를 완전히 의지하게 하는 은혜도 주실 것이다.

빌립보의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도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믿음을 깨달았을 때에 비록 한 밤중이었지만 그들의 모든 가족들과 함께 침례 받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비록 그가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지만 이 새로운 신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행하였다. 아나니아도 새롭게 다시 태어난 사울에 관하여 같은 기별을 전하였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사도행전 22:16).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성령의 호소가 울리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당신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심을 깨달았으며, 마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당신의 마음속에 평화와 생활의 확신을 가져왔다면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결정을 내릴 때이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