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왜 꼭 침례를 받아야 하는가?

교회 안에 들어온 혼란

침례(세례)의 참 의미


만약, “구원받기 위하여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사람들은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가 구원받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물 속에 3번 앞쪽으로 완전히 잠기는 것이 참 침례라고 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머리에 물방울을 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물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하고, 또한 어떤 사람들은 뒤로 물 속에 한번 잠기는 것이 참 침례라고 할 것이다.

왠지 모르게, 어떻게 침례를 주고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설들이 교회 안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비록 모든 교회들이 그들의 행하는 방법이 다 성경에 입각한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들이 교회들 안에 있는가? 어떻게 이런 혼란들이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헐리우드에 사는 어떤 사람은 장미꽃잎이 가득 담긴 커다란 물탱크에 물을 담아 그 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 참 침례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벌티모어에 사는 어떤 목사는 침례를 받고 싶어하는 신도에게 물 호수로 물을 뿌리고 침례 받았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어떤 목사는 슈퍼마켓에서 만난 신도에게 코카콜라를 뿌리며 침례를 주었다고 한다.

누가 어떤 주장들을 하건,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들 모두 침례에 관한 성경 말씀에 관하여 너무 무지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구원에 대한 생각은 이교도적이고 비 성서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설들을 조심하여야 한다. 오직 성경이 말씀하는 방법에 따라서 진정한 침례를 행해야 한다.

하늘 가기 위한 2가지 조건


먼저, 예수께서 그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말씀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이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 중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게 침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도 오해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하늘에 가기 위하여 두 가지 조건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 가기 위하여 반드시 이 두 가지 경험을 통과해야 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께서 이 부자 바리세인과 하신 대화의 문맥을 보면 예수께서 어떤 의미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는지 알 수 있다. 3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것은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7,8절에서 이 신비롭고 조용하게 일어나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침례를 받아 물로 거듭나는 경험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자. 물로 거듭나는 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성경에서 많은 경우에 직접 연결된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심은 마음에 일어나는 것이고 침례는 마음에 일어난 변화를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6:16에 예수께서 하신 또 다른 설명을 읽어보자.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구원을 믿는 것은 바로 개심을 의미하며,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구원을 믿는 것과 침례는 직접 연결되어져 있다. 십자가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을 믿는 그 믿음이 바로 침례가 상징하는 신비로운 마음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옆에 있었던 구원받은 강도를 예를 들어서 침례가 구원받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 강도가 침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으며, 실제로 그렇게 할 기회도 없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만약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의 모든 악한 생활을 청산하고 훔친 물건들을 돌려주었을 것이며, 그가 이해한 모든 진리대로 남은 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육체적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옴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순종의 생애가 그 안에 주입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게 될 수 있었다. 만약 가능하였다면 그 강도가 받았어야 했을 침례는 예수께서 받으신 그 침례의 경험으로 대치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침례를 받지 못할 환경에 있다면 그는 그 강도처럼 그리스도의 침례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워짐으로 침례를 받은 것처럼 간주되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어떤 사람이 바로 지금 침례를 받고 싶다고 하여 차를 타고 근처 호숫가로 간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의 마음은 변화되었고 그 변화의 결과로서 침례를 받고자 한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사고가 나서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가 비록 물의 침례는 받지 못하였지만 그는 마음의 침례를 이미 받았으며, 물의 침례를 받은 것처럼 인정받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 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침례 받기가 가능하다면, 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침례를 받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