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기독교에 교파가 많은 이유-1

기독교에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어떤 교회로 나갈 것인지를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충과 혼돈을 겪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 안에 너무나도 많은 교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중 많은 교파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가르침이 가장 성서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아졌을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과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참된 진리만을 가르치고 있는 교파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일까?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파 교회, 순 복음교회, 유니테리안, 몰몬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천주교회,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교회, 사도교회, 기독과학교회, 동방 정교회, 세계 복음교회, 구세군교회 등등.. 이 세상에 기독교 교파들이 약 200여개 이상이 된다. 또 거기에다가 그 교파들 가운데서도 다시 여러 그룹들로 갈라져 있는데, 예를 들자면 침례교회나 장로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그룹 계열들로 갈라져 있다. 미국에 있는 침례교회 안의 다른 계열들만 약 20여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 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교파들이 생겨나서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참된 교회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진 기독교회가 초대 시대와 중세기를 통과 하면서 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 가면서까지 성경의 진리와 교회를 옹호하였다.

서기 306년도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젊고 부자인 빌레아가 로마 총독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 하에 단두대에 올랐다. 부인과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그는 자기의 믿는 믿음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쳤다. “너의 미친 마음의 상태에서 돌이키라”는 말을 듣자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한번도 미쳐 본적이 없고 지금도 정신이 깨끗합니다.” 로마 총독은 소리를 높여 명령하였다. “죄수를 우리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라!” 빌레아는 말했다. “나는 희생을 오로지 한 분이신 성경의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너는 그 하나님에게 어떠한 희생을 드린단 말이냐?” “예, 저는 우리 하나님께 청결한 마음과, 진실된 믿음과, 참된 진리를 희생으로 드립니다.” 그렇다. 수 많은 순교자들이 진리를 고수하고 그 순수함을 보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진리와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을 바쳐 가면까지 지키고 고수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원래 신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순수함으로 되돌리기 위하여서 싸워왔다. 우리는 중세기 시대 동안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종교인들이 다른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수천만 명이나 핍박하고 죽여온 사실을 역사에서 보게 된다. 개혁자와 순교자들의 저항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과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개혁을 시도해야 하는가?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로 인도하는 원칙들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복음서와, 사도 바울과 다른 제자들이 기록한 편지서들을 통하여서 보면 그 원칙들은 꽤 간단하다. 1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납하신 것처럼 서로 용납하라. 2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라. 3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따라 생애 하라는 것이다. 로마의 쥴리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그네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단순하였고, 그들이 믿고 따르던 진리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들은 또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경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지 아니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추측에 불과한 것이요, 그러한 믿음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초한 믿음을 고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두 사도들에게서 물려 받은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진리는 바로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만일 그리스도 교회의 기별이 그렇게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교파들이 생겼느냐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한 곳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왜 이렇게 서로가 멀리 분리된 채 다른 교파들을 형성하여 높은 벽들을 쌓아 놓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한가지 간단한 대답이 있다. 우리가 많은 주제들에 있어서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어떤 교회들은 신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는 점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간단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서로 불필요하게 어떤 주제들을 마치 머리카락을 자르듯이 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교회들이 인간들의 유전인 교회의 전통들 때문에 갈라졌다.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 시대에 많은 선교사들이 러시아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러시아의 교회는 교파의 분리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예배 형식에 대한 의견들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교회의 정통파들은 머리와 가슴에 그리는 십자가를 세 손가락으로 해야 하며 두 손가락으로 하는 것은 불경건한 것이라고 단정 지웠고, 나아가서는 예배시에, 할렐루야를 두 번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였고 교파가 갈라지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서는 성만찬 예식(주의 만찬)이 있다. 성경에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하고 기념하여 기억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만찬 예식을 행하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하느냐 하는 문제와 또한 그 예식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가 그저 상징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교파들이 갈라지는 이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문제가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마는 이 성만찬을 미사(Mass)로서 행하던 중세기 교회는 떡과 포도주를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핍박하여 결국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아 졌는가? 그 큰 이유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며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7,8.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염려하면서 경고한 바 있다. “뱀이 그 간계로 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사도행전은 기록하기를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2:41,42). 초대 교회가 생겼을 때는 복잡한 의식이나 혼돈된 가르침이 없었다. 그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지냈다. 그러할 때 그 교회에 성령께서 같이 하셨고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였다.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 버렸을 때에, 인간의 전통과 가르침으로 그것을 대치하기 시작하였고, 냉랭하여진 교회는 서로 서로 높은 장벽들을 쌓고 자기들만의 교파들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계에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지에 대한 또 다른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조직이 타락하기 시작한 데서 연유된 것이다. 성경은 교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하며 어떻게 타락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미 자세하게 예언하여 두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요한 계시록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이 두 번째의 중요한 이유를 다음의 기사에서 요한 계시록의 예언을 연구해 가면서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