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인치는 복음

 하나님의 인을 받게 하는 참된 복음


요즈음 기독교 안에서 성경적으로 명확한 참된 복음에 대한 가르침이 너무나 적다. 참된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참된 복음과 올바른 가르침은 우리를 참된 신앙과 믿음을 갖게 만들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믿음에 대한 오해가 많이 퍼져 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한 믿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속에는 믿음과 행함이 반드시 균형지게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에는 쓰여있지만, 또 다른 말씀, 곧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도 있다. 사실 하늘 아버지의 뜻(성경 말씀)과 그것에 대한 순종(행함)에 대한 설명없이, “믿으라, 믿으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외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그저 반쪽 믿음일 뿐이다.

우리의 신앙은 믿음과 행함이라는 노를 가지고 저어 나가는 항해와 같다. 만일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배는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면서 맴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 생활이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구원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면들이 올바르고 균형 있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가 부딪치거나 투쟁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항상 순종이라는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낸다. 성경은“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야고보서 2:26).

1. 참된 믿음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행함“과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반쪽 믿음이며, 참된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에게는 순종할 힘이 없는데 어떻게 행함이 따르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까? 믿음, 곧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역사를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그는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밤하늘의 별을 보이시면서 앞으로 네 자손이 이렇게 많아지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보면서 자신에게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 왜냐하면 저 많은 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늙은이에게 자식을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넉넉히 지키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도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다. 그 약속은 곧 우리에게 힘,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복음의 능력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이런 믿음에 관하여 말씀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하나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성경절에 나오는 “능력”이라는 단어는 “다이너마이트” 라는 뜻인데, 헬라어의 “두나미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라는 단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묘사하기 위하여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식어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복음을 소개하며 말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라고 했다.

만약에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을 믿고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놀라운 능력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즉, 율법을 행할 능력을 충만히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로만 입으로만 믿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행동과 행실까지 믿음과 완전히 일치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폭발적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대신에 실망과 패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복음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넘어지게 되며,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진리들을 반쪽만 언급하며 “그냥 믿기만 하라”고 외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순종의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생산해 내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믿음이 없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고 어딘가 잘못된 믿음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로마서 8장 9절에서 말하고 있다.

3.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믿음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공언해도 우리 속에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되, 그것을 자신의 노력과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요약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5:4-6).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게 한다. 우리의 신앙의 동기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일을 지키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도 그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가 동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롬 13:10).
우리에게는 이기적인 사랑은 있으나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계명을 지키는 근본 정신인데, 성령께서 이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셔야만 우리가 드디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성령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의로운 생애를 살 수 있다. 우리의 생애가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 참된 믿음을 갖게 하는 올바른 복음을 알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