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하나님의 인을 받는 다는 의미

 하나님의 인을 어떻게 받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앞 이마에 받는다는 것을 앞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앞이마, 곧 앞 뇌의 전두엽에 있는 의지가 올바른 편을 선택함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지가 올바른 편을 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인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인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양심의 목소리를 듣는 것

어떤 개구장이 어린아이가 정원에서 놀고 있다가,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연못 밖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돌을 들어서 내리 치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한번도 그런 음성을 들었던 적이 없는 그 아이는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내가 거북이를 돌로 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는 커다란 말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이 누구의 음성이죠?”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단다. 네가 그 음성에 순종하면 그 음성은 점점 분명해지게 되고 너를 올바른 의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란다. 그러나 네가 그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점점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너는 어두움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란다. 너의 생애는 너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그 작은 소리를 듣는데 달려 있단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소리이다.

1. 성경이 말하는 양심

성경은 양심을 나타내는 말로 가득차 있다. 물론, 구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양심을 의미하는 말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잠시 그 실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창세기 3장에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서 숨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왜 숨었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언 28장 1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주님 안에서 양심이 정결해진 사람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지만,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불안해서 도망치게 된다. 왜 도망가는가? 바로 양심의 소리 때문에 그렇다. 신약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40번 이상이나 등장한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4, 15.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1. 양심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2. 문제가 생긴 양심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가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의 양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죄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양심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너무나 엉뚱하고 파렴치한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은 동일한 죄에 빠져 있으면서도 양심 속에서 죄에 대한 책망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왜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들을 수 없는가? 양심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경은 질병에 걸린 양심을 “약한 양심”과 “더럽혀진 양심”과 “화인 맞은 양심”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A. 약한 양심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 8:7. 그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대부분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던 제물들이었다. 사도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기를 우상에게 바쳤다고 해서 변질되거나 부패되지는 않는다고 변명하면서 과거의 습관대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을 약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고기를 먹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음으로써 양심을 약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충고였다. 어떤 것이 직접적인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의 교훈을 무시한 채 자신이 원하는대로 결정하고 즐기는 사람은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예민하게 다듬어 질 필요가 있다.

B. 더러워진 양심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디도서 1:15. 똑같은 그림을 보고서, 어떤 사람은 “참 이 그림 정말 아름다운데!”라고 감탄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추한 장면을 연상한다. 죄의 습관들로 더럽혀진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로 양심을 씻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더러워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신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육체의 죗된 욕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워진 양심은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어질 필요가 있다.

C. 화인 맞은 양심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2. 이 말씀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1. 거듭난 양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며,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것이 곧 어떻게 하나님의 인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두뇌 속에 있다. 우리의 두뇌는 치열한 전쟁터이며, 우리의 매일의 생애가 승리하는가 아니면, 실패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우리가 어떻게 치르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이사야 30:21.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목소리를 들려 주신다. 그런데, 마음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뚜렷이 식별하려면 우리의 양심이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육체와 양심을 가지고 이 땅에 살게 된다. 정직한 양심은 본성적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신뢰할 수 있는 음성을 발할 수 있다.

2. 양심의 소리에 굴복하라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마찰을 일으킬 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아의 목소리와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신실하다고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승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자아를 굴복하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능력은 없지만, 그러나 올바른 편을 선택할 힘은 있다.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립될 때, 그리고 사단이 육체의 정욕을 통해 우리에게 강한 유혹으로 다가올 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을 택하고 싶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힘센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리자 마자,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올바른 편을 선택할 힘을 주신다.

 3)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알아 보려면, 매 순간 자신이 자아의 고집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곧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 놓으셨다. 사람이 회개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화로 역사하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치고 거듭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그리고 한번만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마련해 놓으시고 주시기를 원하지만,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하고,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임재 속에서 매일 생활하고, 우리의 마음 속에 펼쳐지는 전쟁에서 늘 하나님의 편을 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들의 생애에서 이룰 것이다. 거룩함이란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전체, 곧 마음과 뜻과 생각을 늘 하나님께 바치고, 자아를 부인하는 일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일이 거의 습관이 된 사람들은 거룩한 품성을 가지게 되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