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심판의 날, 대속죄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이었다. 한 해 동안 범죄한 사람들은 성전에 나와서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대속죄일에는 그들의 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재검토되는데 이 사건을 히브리서 10:3절은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날에, 진실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또 다시 바치는 경험을 하였으며, 그들의 회개를 확고히 하였다.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레위기 16:30. 이 날이 마쳐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너의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되라.” 얼마나 놀라운 확신인가! 이와 같은 약속이 신약에도 나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단지,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정결함도 얻을 수 있다!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마지막 심판의 날에 관하여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2. 대속죄일은 바로 이러한 날이다. 비록 구약 시대의 지상 성소 안에 책이 보관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일년 동안의 피뿌림을 통하여 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드려진 번제의 핏방울을 단 위에 뿌림으로 그들의 범죄의 기록이 남겨졌다. 번제단 뿔과 분향단에도, 죄인들이 용서를 얻기 위하여 가지고 온 희생 제물의 피가 발라짐으로 백성들의 죄의 기록이 남겨졌다.

대속죄일에는 전에 이미 용서를 받은 죄들의 기록들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반면에,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은 영원히 “끊어짐”을 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소는 한 해 동안 쌓여온 죄들의 기록들로부터 정결케 함을 얻었다. 죄들은 더 이상 백성들을 상대로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대속은 완성되었으며, 그들은 더 이상 정죄 아래 있지 아니하였다. 더 이상 죄에 대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대표

대제사장은 모든 백성을 대표하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모든 것들은 제사장 직분 안에 모아지고 응결되어진다. 그가 죄를 지으면, 백성들이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된다. 아담은 인간의 대표였다. 그에 의하여 “죄가 이 땅에 들어왔다.” (로마서 5:12)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 (19절)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고”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17,15절)

그리스도께서도 또한 인간의 대표자이시다. 그는 둘째 아담이시자 마지막 아담이시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47) 둘째 아담은 “하늘에서 나셨으며” 첫째 아담이 범죄를 통하여 이룬 모든 것들을 회복시키셨다. 첫번째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두번째 사람의 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함을 입었다.”(로마서 5:19) 첫번째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심판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쳐 정죄를 이루었다.” 그러나 둘째 사람의 의로 인하여 “은혜의 선물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 (17,18절)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2)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표상이요 국가의 대표였다. 국가의 대표자로서 그는 백성의 죄들과 함께 취급당하였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의 표상으로서, 그는 백성들의 중보자였고 구세주였다. 그는 이 일들을 하나님과 함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였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백성들을 대표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받으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입는 예복의 치마 아래단에는 종이 달려 있다. 백성들은 대속죄일 날 대제사장의 옷에 붙어 있는 종이 소리를 내면서 울리는지의 여부에 온 주의를 집중하며 들었다. 지성소 안에서 대속이 이루어지고 화해가 완성된 후 대제사장이 거동을 시작하면서 들리는 종소리는 하나님께서 대속을 받아주셨다는 증거였다. 그가 밖으로 나와서 종소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더 확실히 들리면 백성들은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안에 있는 그들을 다시 한번 받아주신 것이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때, 그는 백성들의 대표로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고 한 해 동안의 죄를 결말짓게 된다. 그들의 죄에 대한 기록은 번제단과 성소에 뿌려진 피로서 남아있다. 대속제일은 모든 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재검토되는 최후 심판의 날이다. 대제사장은 분향의 연기로 감싸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 해 처음으로 죄가 지성소 하나님 앞으로 옮겨진다.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린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와 권속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제 그는 깨끗해 졌다. 어떠한 죄가 그의 것으로 취급받았던지, 어떠한 죄가 그의 책임 안에 있었던지, 그 모든 죄들은 이제 성소로 옮겨졌다. 그는 이제 깨끗해졌다. 그러나 성소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일을 요약하면 바로 다음과 같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상태로서 하나님과 법 앞에 나아간다. 그는 그의 죄악들을 인정하였으며 피를 뿌렸다. 법은 이렇게 질문을 한다. “죄를 지었는가?” 대제사장은 “예. 저는 죄를 지었고 나의 죄들을 모두 고백하였습니다”고 대답한다. 법은 “죄의 값은 사망이다. 나에게는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대제사장은 이렇게 응답한다: “저는 희생의 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을 대신 받으십시오.”

피가 속죄소위에 뿌려진다. 죄인 대신에 대속제물이 받아들여졌다. 이 대속제물에 죄가 전가되었으며, 이 제물이 죄가 되었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가 범죄의 값을 치루었다. 그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그 제물이 죄로 인한 빚을 갚아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음을 당하신 것뿐만이 아니라 죄 없는 자로서 돌아가셨다. 우리의 죄를 지심으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으셨다. 법이 죽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 그는 죄가 없으셨다. 그러나 죽임을 당하셨다. 죄 없는 자의 죽음은 명확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이다. 죄인의 죽음은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죄 없는 자의 죽음은 죄인들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대제사장은 수송아지를 드린 후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며, 그 다음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아래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 같이” 하라고 말씀하였다. (레위기 16:15,16)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여기서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려 한다. 수송아지의 피는 아론과 그의 권속을 위한 속죄를 이루었다. 염소의 피는 백성들과 성소를 위한 것이었다. (11, 15, 16절) 수송아지의 피가 성소를 위한 속죄나 정결을 이룬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이것은 분명히 염소의 피가 이루는 결과이다. (15, 16절) 그러한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든 경우에 용서를 받는, 매일의 제사를 통한 피로 인하여 속죄가 이루어지며 죄가 성소로 옮겨진다. 죄인은 그의 죄들을 희생 제물에 옮기고 희생 제물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 피를 번제단이나 분향단의 뿔에 바르고, 또한 성소 안에 뿌려진다. 그 피는 죗된 피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죄인의 죄가 희생제물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그 죄는 상징적으로, 또한 의식적으로 뿌려진 곳을 더럽히게 된다. 그러므로 성소가 더럽혀짐을 당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수송아지의 피를 뿌리고 나왔을 때, 그는 깨끗함을 입었다. 어떠한 죄를 그가 짊어졌던지 그 모든 죄들은 고백되어졌고 성소로 옮겨졌다. 그가 지성소에서 나올 때 그는 깨끗하고, 자유롭고, 거룩하고, 죄 없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나오게 된다. 그는 그의 죄들을 고백하였으며, 용서를 받았으며, 더 이상 고백할 죄가 없다.

그가 이제 막 뿌리려고 하는 그 피의 주인인 하나님의 염소는 죄 없는 자를 상징한다. 그 해 동안 바쳐진 모든 제물들은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그는 죄 없는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었다. 대속죄일의 염소 안에서 그는 무해하며, 정결하고, 죄 없는 자,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 상징되어졌다.

대속죄일에 바쳐진 염소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히브리서 7:26) 죄 없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 염소의 피는 죄가 전가된 피가 아니기 대문이며, 이 피는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성소를 정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전가하지 않은 이 깨끗한 대속죄일의 피는 드디어 모든 죄의 기록을 깨끗이 씻어 도말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침 저녁에 피를 뿌림으로 행해지는 국가를 위한 제사는 그 날에 지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들을 포괄하고 있다. 단 위의 매일의 제사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던”,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서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셨”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매일의 번제는 세상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심으로 그에게 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도록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단 주위에 뿌려진 피는 임시적이고, 조건적인 속죄만을 상징하며, 범하였으나 아직 개인적으로 속죄되지 않은 죄들의 기록들을 가리킨다.

개인적으로 드려진 속죄제물들은 실제적으로는 속죄가 필요 되는 죄에 대한 기록들로 형성되어있다. 죄악들은 매일의 아침저녁의 제사를 통하여 이미 기록되어졌다. 이제 죄를 지은 모든 개인들은 요구되는 제물을 가지고 옴으로서 그들의 회개를 표시하며, 그 제물의 피는 번제단의 뿔이나 분향단의 뿔에 발라지고, 장막 앞에 뿌려지게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 피는 고백된 죄들을 기록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모든 고백된 죄들은 결국 성소 안으로 옮겨지게 된다. 만약 피가 직접 성소 안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에는 제사장이 그 살을 먹음으로 그 죄를 옮기게 되며, 제사장들이 그들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때에는 다른 죄악들과 함께 성소 안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지상 성소 의식은 범한 죄악들과 고백된 죄악들의 온전한 기록이 있는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에 대속죄일이 닥치면,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죄들을 고백하고 그들의 고백을 피를 통하여 성소 안에 기록한다. 이 속죄의 사업을 마치기 위해서는 이제 그 기록들을 지워야 한다. 즉 그 죄들을 도말 하여야 하며, 피로 더렵혀진 성소를 정결케 해야만 한다. 이 일을 행하기 전에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그의 권속들을 위한 속죄를 행하게 되며, 그 후에 정결 작업이 시작된다. 지성소는 염소의 피로 정결케 되고, 성소도 정결케 된다. 이렇게 함으로 죄의 기록들이 도말 된다. 그 후에 단이 정결케 함을 얻는다.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레위기 16:19) 그렇게 함으로 “그 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다.” (20절) 이제 모든 것들이 정결케 되었고, 화해되었으며, 속죄를 얻었다.

이제까지 백성들이 정결케 되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죄를 고백하였다. 그들은 용서함을 받았다. 단지 그들의 죄에 대한 기록들만이 남아 있으며, 이 날에 그 모든 기록들이 도말 되어 버린다. 그들은 정결한 상태로 새로운 해를 시작하게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송아지의 피를 단 뿔에 바르는 문제를 생각하여 보자. (18절) 염소의 피를 단 뿔에 바르는 일은 더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이 그것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왜 수송이지의 피를 사용하는 것일까?

대제사장은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 그는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상징적으로 속죄를 이루며, 그의 대속죄일의 의식이 모두 끝나면 모든 죄들은 다루어지고, 모든 고백된 죄의 기록들이 도말 되어 버린다. 그가 이러한 죄들에 대한 고백을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고, 또한 그들을 대신하여 대속을 얻는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그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속죄를 얻어 모든 죄에서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정결하게 하도록 하였다. (30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대속죄일에 개인적인 속죄제물을 바치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는 일에 너무 늦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회개하였으나 성전에 너무 늦게 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팠거나 올 수 없는 형편에 있었거나, 또는 너무 멀리 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속죄제물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 이들이 끊어짐을 당할 것인가?

그들의 죄들도 매일 아침 저녁 희생을 통하여 기록되어졌다. 그러나 희생제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고백이 성전에 기록되지 못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사장은 대속죄일에 피를 단 뿔에 바름으로 고백을 기록하고, 또한 용서를 얻는다. 그는 그 일을 행할 때에 만약 그 사람들이 올 수만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제물을 바쳤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그들의 회개도 그 속죄사업에 포함시킨다. 십자가상의 회개한 강도와 다른 사람들의 죄악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고백된 죄악들에 대한 대속죄일의 사업은 끝마쳐졌다. 죄들을 고백하고 회개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죄가 도말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옷에서 나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는 용서받은 것뿐만 아니라, 또한 정결함도 얻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이 모든 의식을 다 끝마친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나와 밖에 묶여져 있는 아사셀 염소 위에 모든 죄를 옮기는 의식을 안수를 통하여 행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모든 죄들을 원래의 죄의 창시자였던 마귀에게 옮기는 것을 뜻했다. 모든 죄의 책임은 마귀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회개하고 죄를 도말한 경험이 있는 자들만 자신들의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떠넘길 수가 있었다. 누구에게 그러한 자격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하여 대속죄일의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죄를 전가시킨 아사셀 염소를 정한 사람의 손에 맡기어 광야로 끌고나가 방황하다가 죽게 만드는데, 이것은 천년기 동안 황폐한 지구에 홀로 갇혀 있다가 죽게 될 사단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아사셀 염소의 의식은 대속죄일의 의식이 끝난 후에 이루어졌다. 드디어 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끝마쳐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의식 절차들은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각자 개인들을 조사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들이 진실로 회개한 것인지,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참된 품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시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