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2: 믿음과 순종에 대한 두 예화

1. 연못가의 환자


“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요한복음 5:2~3

이 연못의 물은 때때로 움직였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초자연적 능력의 결과로 받아들여졌으며, 누구든지 물이 요동한 직후에 이 물 속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는 그가 어떤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나음을 받는다고 믿었다. 수백명의 환자들이 그 곳을 방문했으나 물이 요동할 때에는 무리가 너무 많아서 자신들보다 약한 남자, 여자, 아이들을 발로 짓밟으면서 서로 앞을 다퉈 밀려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모여 들었기 때문에 그 못에 가깝게 접근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못 가까이에 갔을지라도 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연못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허다하였다. 그 곳에는 오두막이 세워져서 환자들이 낮의 뜨거움과 밤의 냉기에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거기에는 날마다 고침을 받겠다는 헛된 소망을 안고 연못가에 기어와서 이 행각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예수께서 홀로 걸으시다가 그 못에 이르셨다. 그는 불치의 환자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연못이 요동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치유력을 행사하셔서 그곳에 있는 모든 고통 당하는 자를 건강하게 하시기를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사람들이 예배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치료의 행위가 유대인들의 편견을 자극시켜서 당신의 사업에 장애를 일으킬 것을 아셨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한 사람의 가장 처참한 형편을 보았다. 그는 38년간을 속절 없는 앉은뱅이로 지내온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불치의 질병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범한 죄의 결과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으로 간주되었다. 그 환자는 홀로 쓸쓸하게 누워서 자기는 하나님의 자비에서 끊겼다고 생각하면서 오래 동안 불행의 세월을 보내 왔다. 물이 요동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때에는 그의 무력함을 측은히 여기는 사람들이 그를 행각에까지 실어다 주곤 하였다. 그러나 그 꼭 혜택을 입어야 할 순간에 그를 도와서 물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만 못 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보다 힘센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앞서 뛰어들어가곤 하였다. 그는 이기적이며 광분하는 무리와 경쟁할 수 없었다. 그 한가지 목적을 위한 그의 집요한 노력과 근심과 계속적인 실망은 그의 남은 기력을 신속히 빼앗아가고 있었다.

그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때때로 그 못을 바라보려고 머리를 들곤 하였다. 바로 그 때에 한 부드럽고 연민 가득한 얼굴이 그를 굽어보면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묻는 말에 그의 온 주의가 끌렸다. 그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 솟아났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그러나 타오르던 용기는 곧 시들어졌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자주 그 못에 들어가려고 애썼던 가를 상기했다. 이제 그는 물이 다시 동할 때까지 살아 있을 가망조차도 거의 없었다. 그는 지쳐서 얼굴을 돌리고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환자에게 당신을 믿는 믿음을 활용하도록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순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온 믿음을 다하여 그 말씀을 굳게 붙잡았다. 모든 신경과 근육이 새로운 생명으로 전율하고, 절던 그의 다리는 건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의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자기의 뜻을 정하자 그의 모든 근육이 그의 의지에 응답하였다. 자기의 다리로 일어서면서 그는 자기가 활동적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아무런 보증도 그에게 미리 주지 않으셨다. 그 사람은 멈추어 의심하여 그가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으며 그 말씀에 입각하여 행동하자 힘을 얻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믿음을 통하여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어왔다. 우리의 영혼은 마비되어 있다. 그 쇠잔한 사람이 걸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와 유혹을 이기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들을 하나님과 조화되게 만들 영적 생명을 갈급 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헛되이 분투한다. 그들은 절망 가운데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7:24)고 부르짖는다. 이러한 낙심하고 몸부림치는 자들은 위를 쳐다보라. 구주께서는 자기의 피로 사신 자들을 굽어보시고 말할 수 없는 연민과 긍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대에게 건강과 평안 가운데서 일어서라고 명하신다. 그대가 완쾌됐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단순히 그의 말씀을 믿으라. 그리하면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의 편에 두라. 그분을 섬기고자 뜻을 세우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할 때에 그대는 힘을 얻을 것이다. 오랜 방종을 통하여 영육을 속박한 악한 행습과 강력한 정욕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능히 거기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며 또한 구출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죄로 죽었던”(엡 2:1) 영혼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는 연약과 불행과 죄의 사슬에 매인 포로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2. 청년 관원

마 19장 16~23절, 막 10장 17~33절, 눅 18장 18~23절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이렇게 질문한 청년은 관원이었다. 그는 큰 부자였으며 책임 있는 지위에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당신께 나아온 어린이들에게 나타내신 사랑을 보았다. 그 분께서 그토록 부드럽게 어린이들을 영접하여 그의 팔에 안으시는 것을 본 그의 마음은 구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그는 매우 깊이 감동되어 예수를 따라 달려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그의 영혼과 모든 인간의 영혼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를 성실하고도 열렬하게 다음과 같이 질문 하였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BR> 그리스도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관원의 성실성을 시험하고, 자기를 선하다고 하는 그런 사고 방식을 그에게서 뽑아내고자 하셨다.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가 깨달았을까? 그의 마음의 진정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이 관원은 자기 자신의 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어떤 점에 있어서도 결점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으나 그러면서도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의 필요를 느꼈다. 예수께서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신 것처럼 그를 축복해서 그의 영혼의 필요를 만족시키실 수는 없으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이웃에게 대한 사람의 의무를 보이는 몇 계명을 인용하셨다. 관원의 대답은 당당하였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그의 생애를 환히 아시고 그의 품성을 살피시는 것처럼 청년의 얼굴을 들여다보셨다. 예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으며 실질적으로 그의 품성을 변화시킬 평화와 은혜와 기쁨을 주고자 갈망하셨다. 예수께서는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청년에게 이끌리셨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한 그의 확언으로 청년의 성실함을 아셨다. 구주께서는 그로 하여금 마음의 헌신과 그리스도인 다운 선행의 필요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줄 분별력을 그의 마음속에 일으켜 주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바칠 최고의 사랑을 의식하고 그 부족함을 그리스도의 완전하심 안에 숨기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그에게서 발견하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만약 이 관원이 구원의 사업에 당신과 동력자가 된다면 이 청년이야말로 당신이 필요로 하는 도움이 될 것을 아셨다. 만일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지도 하에 둔다면 그는 선을 위한 한 능력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 관원이 구주와 연합했더라면 그는 자격, 즉 그로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한 능력이 될 수 있게 해주었을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현저하게 드러내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품을 꿰뚫어 보시고 그를 사랑하셨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 관원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당신의 동력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를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거울로 만드시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품성을 탁월하게 향상시켜 주께서 쓰실 수 있도록 성화 시키기를 원하셨다. 만약 그 관원이 그 때에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쳤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가 이것을 선택하였더라면 그의 장래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관원의 마음을 읽으셨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한 가지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였다. 만일 이 부족이 보충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의 온 성질과 품성을 부패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방종은 이기심을 더욱 굳어지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포기해야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청년 관원에게 하나의 시험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보화와 세속적 위대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셨다. 그가 만일 예수를 따른다면 하늘의 보화가 그에게 약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를 포기하고 그의 의지를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도록 해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이 청년 관원에게 제공되었다. 그 관원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늘의 보화를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 받을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지고 구주를 따라 극기의 길을 가야만 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 관원에게는 사실상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 24:15)는 초청이었다. 선택은 그에게 달려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회개하기를 열망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품성의 병든 곳을 그에게 보이셨으며, 청년이 그 문제를 마음 속에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큰 관심으로 주목하고 계셨다. 만일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한다면 그는 모든 일에 그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의 야심찬 계획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청년이 성령의 초청에 응하기를 바라시면서 얼마나 열렬히 간원 하셨으며, 얼마나 갈급한 심령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셨던가!

그리스도께서는 그 관원으로 하여금 그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완성시킬 수 있는 곳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은 엄격하고 가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지혜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만이 관원에게 있어서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었다. 그의 높은 지위와 재산은 그의 성품을 악으로 인도하는 교묘한 감화를 끼치고 있었다. 그것을 계속 간직한다면 그것들은 하나님 대신 그의 사랑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다소라도 물러가는 것은 도덕적인 능력과 효능들을 감소시킬 것을 계속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 사물을 귀중히 여기면, 그것들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무가치할지라도 마음을 모두 빼앗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원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였다. 만일 그가 구주께서 주시겠다고 제의하신 선물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더라면 그는 지체 없이 그리스도의 추종자의 일원으로 가담하였을 것이다. 그는 명예로운 유대인의 공회의 일원이었다. 사단은 그의 주변에 사람들을 보내서 청년 관원의 장래가 유망하다는 말로 아첨을 하게 하였고, 돈과 명예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의 보화를 원하였지만 그의 재산이 가져올 현세의 유익도 원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영생을 원하였으나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생의 값이 너무 큰 것처럼 생각되고 “재물이 많으므로” 그는 슬퍼하면서 떠나갔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왔다는 그의 주장은 기만이었다. 그는 재산이 자기의 우상임을 보여 주었다. 세상이 그의 애정의 첫째 자리를 차지한 동안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구원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구원과 축복 자체를 더 사랑하였다. 그리스도는 청년에게 당신과의 친교를 제의하셨다. 그분께서는 “나는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구세주는 자신의 명예나 재물만큼 귀중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하늘 보화를 위하여 보이는 그의 세상 재물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큰 모험 처럼 느껴졌다. 그는 영생을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제의를 거절하고 떠나갔다. 그 때 후로 세상은 항상 그에게 있어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호된 시련을 통과하면서 그리스도와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택한다. 그들은 젊은 관원처럼 나는 이분을 나의 지도자로 모시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구주로부터 돌아선다.

이 청년에 대한 그리스도의 취급 하심은 중요한 교훈으로 제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종들이 따라야 할 행위의 규범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단순히 법문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실 생애로 옮겨지고 품성으로 예증될 수 있는 순종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믿음과 순종에 대한 분명한 표준을 세우셨다. 그리스도와 동력자가 되고, “주여 나의 모든 소유와 나의 전 존재가 당신의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하늘을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조건들 때문에 돌아서 버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든 사람들은 숙고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아니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라. 관원은 “아니요. 나는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구주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기신 사업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산을 세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진척시키는 데 사용하자고 제의하신다. 오직 이 방법으로만 구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그 관원의 재산은 그가 충실한 청지기임을 입증할 수 있도록 그에게 위탁된 것이었다. 그는 이 소유물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분배해야 만 하였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재물과 재능과 기회를 위탁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가난하고 고통 당하는 자를 도와주는 일에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게 하신다. 그에게 위임된 선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사용하는 자는 구주와 동력자가 된다. 그는 하나님의 품성의 대표자로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젊은 관원의 경우와 같이 신임 받는 높은 지위에 있고 재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 너무도 큰 희생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행동 법칙이다. 전적인 순종만이 가납된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지이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가르침은 종종 매우 권위적이고 강력한 표현으로 제시되고 명령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기심과 자아 숭배의 정신은 사람을 송두리째 타락시키므로 그런 것들을 확실하게 잘라 버리는 길 외에는 사람을 구원할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