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부: 칭의에 대한 5가지 성서적인 이해

칭의에 대한 5가지 성서적인 이해


“칭의”란 단어는 어쩐지 우리에게 낯설고 어려운 단어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은 목사, 혹은 신학자들이나 사용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연구해보면 칭의는 의외로 아주 쉬운 주제인 것을 알 수있다.

칭의와 성화에 관한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주제들은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관한 문제를 푸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언급할 것은, 우리가 영적인 경험을 함에 있어 이것은 칭의이고, 이것은 성화이며, 이것이 거듭남이라고 엄밀히 구분하여 나누기는 어려우며, 어떤 형식에 꼭 맞는 공식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이런 영적인 것들은 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모든 경험이 한번에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 있는 칭의와 성화와 참된 믿음에 대한 진리들을 연구함으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칭의와 성화의 경험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또 우리가 이런 주제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때, 우리의 영적인 경험이 이 지식을 토대로 하여 올바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으로 함께 연구해 보자.

1. 칭의와 율법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믿기만 하면 은혜로 다 구원을 얻고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율법이 왜 필요할까요?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사람이 먼저 회개하려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없이는 죄를 깨달을 수 없으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않으면 구세주의 필요성도,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처럼 우리를 인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같지 않은 점을 가르쳐 주지요. 하나님의 계명에 우리를 비추어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율법은 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죄인인 우리는 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으로서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므로 불의해진 우리는 회개하고 죄의 값인 사망의 형벌을 우리 대신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칭의(의롭다 하심)를 얻으려면 죄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하며, 그 죄에 대한 각성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이므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2. “칭의”(Justification)란 무엇인가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1~25). (롬 5:1~11 참고).

칭의란,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굴복할 때 그의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심과 동시에 마치 한번도 죄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말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은 죄인이며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간의 본성은 불의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만나 영원히 살 사람은 의로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함께 거하실 수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얻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 영생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어떻게 “의”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십자가로 나아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그것을 신학적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음의 의”(Righteousness by faith)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렇게도 중한 잘못을 저질렀고 하나님을 거스렸던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공로를 가져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순종을 보시고 우리 죄인들의 허물을 간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가 인간의 실패 대신으로 가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회개하는 죄인)를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의롭게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하실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의롭게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에게로 가져갈 수 있으며, 주님은 그의 아들의 순종을 죄인의 계정에 올리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오묘한 구원의 이치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받으셔서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실(칭의를 주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의로운 것처럼 대하시고 그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순간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한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칭의)을 받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용서받은 영혼은 계속 은혜에서 은혜로, 빛에서 더 큰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외치게 됩니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품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실패하였고 그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의 본성은 타락되어서 우리는 스스로 의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많고 거룩하지 못한 우리는 거룩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게 되었지요. 그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응할 만한 자신의 의는 조금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것과 같은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죄 없는 생애를 사셨지요.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를 벗기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생애가 아무리 악하였을지라도 그분의 공로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우리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받아들이는 바 되지요.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우리의 마음을 항상 주님께 바침으로 말미암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동안에는 주님은 우리의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입니다.


3. 용서와 칭의는 동일한 것입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회개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뉘우쳐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이 속죄를 그의 생애에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죄가 용서를 받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입니다. 용서와 칭의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믿음을 통하여, 사단과 죄악의 자녀인 반역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백성의 위치로 나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타고난 선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입양하여 그분의 자녀로 받으시기 때문이지요. 죄인은 그의 죄를 그의 대리자이며 보증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나의 자녀가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망의 선고를 유예하고, 나의 생명보험증권, 곧 영생을 그에게 줍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딸)입니다.” 그리하여 용서받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게 됩니다.

죄인이 실수를 범할지라도 무자비하게 쫓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범죄와 죄악을 용서해 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며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셔서 우리의 형벌을 중지하시고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의를 옷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공의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킵니다. 칭의는 유죄선고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범죄와 죄악을 용서하십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흉악한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총 안으로, 그리고 영생의 강한 소망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칭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4. 진정한 용서의 뜻이란 무엇인가요?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겔 36:25~2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면하게 해주는 사법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하며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죄인이 십자가로 나아가서 그 앞에 부복할 때에 새로 창조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그에게 주시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는 것이지요. 그분께서는 마음 뿐만 아니라 감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생각을 순결하게 하셔서 모든 동기와 모든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사람의 생애에 일어나는 변화이고 거듭남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용서를 받는 것은 단순히 용서뿐 아니라 심령을 새롭게함을 받는 것도 뜻합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 “새 마음을 네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리스도의 형상이 마음과 정신과 영혼 가운데 새겨집니다.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고전 2:16)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능력을 통해서만 이르러 오는 변화의 과정이 없이는, 우리의 마음에는 타고난 죄로 향하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새로운 죄의 사슬을 형성하게 되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깨뜨릴 수 없는 노예의 상태를 다시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용서 받은 사람은 새 마음을 받아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단순한 기술적인 방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범죄의 치료뿐 아니라 영적 건강까지 회복시키기 위한 주님의 거룩한 처방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마음과 품성에까지 미치도록 하늘이 지정하신 방법입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의지를 굴복할 때에 새로운 능력이 새 마음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스스로는 성취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져다 주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배역한 세상에서 예수께서 굳게 붙드시는 당신의 성채가 되며, 이렇게 하늘의 능력으로 채워진 영혼은 사단의 공격에 난공불락의 성이 됩니다.


5. 의지를 굴복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칭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일어나는 진정한 회개를 보실 때에 즉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회개에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의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완전하게 굴복시키지 않으므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그분께 바치기를 원하지만 그들의 도덕적 능력은 약하고 그들은 곧잘 의심의 노예가 되며 죗된 생애의 습관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줄 같아서 쉽게 끊어지며 자신의 생각과 충동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 약속과 결심에 대한 기억은, 그들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며 자신의 신실함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게 되어,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납하시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럴 때 자포자기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의지의 진정한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힘은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이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데 달려 있지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선택력을 주셨으므로 우리들은 임의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우리의 애정을 억지로 하나님께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으며 우리의 의지를 그분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능력은 우리에게 없지만 선을 행하려고 하나님의 올바른 편을 선택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한 쪽을 선택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셔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사람은 자신의 죗됨이 너무 싫고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대로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살도록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성향은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애정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것이며, 우리의 생각은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선하고 거룩하게 되고자 욕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런 욕망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지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바라고 희망하는 중에 잃어버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의지를 하나님께 즐겨 굴복시키는 그 지점까지 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생각과 욕망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게 함으로서 영혼에 새로운 생애를 가져오고 속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의지를 굴복한다는 뜻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