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성령에 대한 6가지 질문

성령에 대한 6가지 질문


1. 성령의 역사는 신약시대의 오순절 때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 시에 성령께서 함께 동참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인간이란 도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대인 광야 교회에도 당신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셨다(느혜미야9:20). 성령을 통하여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셨으며, 사도시대에는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도 교회에게 힘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의 크신 능력을 허락하셨다.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에는 성령께서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역사하여 종교 개혁의 길을 예비하였으며,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모든 국가와 민족의 방언으로 번역한 것도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킴으로써, 그들의 시선을 갈바리로 이끌고 계신다.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며, 죄를 범하였을 때에 양심의 가책을 주심으로써, 진정한 회개의 정신을 갖도록 유도하고 계신다.


2. 성령을 받을 때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갖게 됩니까?

성령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이 동일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은 증거로써 감정의

극치를 기대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8) 우리는 바람을 보지 못하지만 바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바람을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역사할 때에 그것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의 능력은 조용한 가운데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준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보거나 만지지는 못할지라도, 그분께서 해놓으신 결과를 볼 수는 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변화된다면, 우리의 생애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에 의존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오직 변화된 생애를 통해서만 분명하게 확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마음 속의 우상과 죄를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충만하게 채우실 것이다. 오직 이러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자랑치 아니할 것이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0,12)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에, 우리는 어떤 황홀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함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서와 생애를 생각해 보자. 그분처럼 성령이 충만하였던 사람이 있는가? 그분의 생애는 감정적 환희와 흥분으로 차있는 생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생애였다. 그분께서는 죄와 불의를 거절하셨으며,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치료해 주시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께서는 성령이 충만하신 결과로 거룩한 삶을 사셨던 것이지,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제와 치료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성령의 능력을 구하셨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함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행하는 순종의 삶으로 표시되었다. 그분의 삶은 사랑과 희생과 극기와 자아부인으로 꼴지워졌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이성적인 분별력과 하나님의 진리가 감정과 느낌을 지배해야 한다. 진리는 건전한 상식 위에 세워지며, 질서 있는 가정생활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의 효과적이고 신속한 전파이다. 성령의 은사가 개인의 신앙적 만족감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되서는 안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신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복음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해서 주셨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질문과 관련있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교훈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고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린도전서 14:26,33,40)


3. 나는 방언의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와 같은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앞서, 우리는 “같은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중요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린도전서 12:11). 우리가 받기 원하는 성령의 은사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복음의 전파를 위한 당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각 사람을 도구로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당신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서 준비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우리가 성령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우리를 부리신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다. 우리는 성령의 기적과 은사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이나 은사의 필요성과 그것이 행하여 지는 장소와 시간과 환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기적이 행사되어야 하는 최적의 시간과 장소와 환경을 알 수 없다. 언제, 어느 때, 어떠한 환경에서 하늘 아버지의 기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주시는 능력을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지혜가 부족하며, 또한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를 구할 때에 예수께서 하셨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는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 그러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4. 나는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어떤 기적이나 은사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구원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증거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적인 삶을 산 결과로 인하여 멸망받았던 예를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은사가 누구에게 발견되느냐에 따라서 서로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어떤 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또 다른 어떤 교회에는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가 마치 유행처럼 교회 안에 그룹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하고 안수해서 병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형편이 아닌가? 사도 시대의 고린도 교회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을 훈계하였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린도전서 12:27~30)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은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우리 몸에는 지체가 있어서 서로 협력하면서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특별히 “방언은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라고 말하였다. 사도 시대에 복음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서 언어가 다른 각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하였는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그 일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께서 복음의 신속한 전파를 위해서 방언의 선물을 제자들에게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이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될 수 있게 섭리하셨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목격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방언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용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확신용으로 사용됨으로써, 그 용도가 변경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시험 기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20)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갈라디아 5:22,23) 성령의 열매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불만과 낙담이 아니라 희락이고, 분냄과 근심과 스스로 지어낸 불화가 아니라 화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자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풍성하게 내려주신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5. 기적이 모두 성령의 은사인가요?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 이 시대에도 나누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은사를 분석하고 사용할 때에 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진리에 굳게 닻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사단의 활동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데살로니가후서 2:9) 사단의 활동이 매우 기만적인 이유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자칭하” 고 있으며,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11:13,14) 그 기만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4:24)

이러한 말씀들은 성령 은사를 추구하는 교회나 성직자들을 모두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교회와 모든 종교적 체험, 그리고 모든 기적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다.(데살로니가전서 5:21)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충고를 들어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한일서 4:1)

그렇다면, 성경은 영을 시험하는 판단 기준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성경절을 제시하고 있다.

  1.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사야 8:20. 성령의 참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며, 자신이 믿는 바가 성경의 진리에 일치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예레미야 29:9. 어떤 사람이 예언하는 은사를 받았으면, 그가 예언하는 바가 정확하게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3.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20.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대표자로 설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며, 모든 금전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정직을 유지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방언을 하고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온 은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를 잘 알고 있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감화를 끼칠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두가지의 다른 양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이상한 혼돈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러한 사람은 혹시 자신이 다른 영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늘은 위대한 성령의 능력을 받기에 적합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하늘의 거룩한 선물을 준다. 거룩하게 변화된 성품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위탁하였을 때에 복음 전파사업에 어떠한 혼돈과 위험이 따르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4.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일서 4:2~3.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체로 오셔서 시련과 고통 중에서 승리하셨던 것처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서 죄와 시험을 승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영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죄와 유혹에 대하여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며,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룩한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하늘의 선물이 내려지게 된다.
  5.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1,12. 사도 요한 역시 앞에서 이사야가 말했던 영의 구별법에 동의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로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나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계시를 보면서, 사도 요한은 그들의 신분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영을 분별하는 분명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기적과 은사를 무조건 하나님의 영의 은사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대답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충고는 모든 기적과 은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고 판단하여 유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6. 현재,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는 영원 불변하지만, 진리를 이해하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리를 검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준점으로 해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경험을 진리 위에 놓으려고 애쓴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올바른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치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관찰했을 때, 각기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가 어떤 교단에 속했으며, 어떤 사람에게 성경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동일하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다. A) 나는 어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다. B) 그런데, 나는 나의 경험과 매우 흡사한 경험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C) 그러므로 나의 경험은 진리이다. 이와 같은 3단 논법에 의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성령의 은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자신의 경험이 초대 교회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해서 자신들의 경험이 진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단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수 있고,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최고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영”에 의해서 진리를 척량하려고 한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데살로니가후서 2:10,11)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라. 그것만이 마지막 시대에 펼쳐지는 사단의 대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한다고 공언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적인 위치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진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만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감정적인 신앙을 갖게 되며, 진리를 주장하면서 사랑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며,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랑과 진리를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니라.” (요한복음 14:15~17)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commendment, 명령)을 순종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자신의 경험을 시험할 수 있는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며, 동시에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 그리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생애를 사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지배하는 영을 분별하는 최고의 기준이다.

기적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표적이지만, 마귀도 그것을 매우 흡사하게 모방함으로써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미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질문에 대하여 주시는 매우 명백한 교훈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0~23)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많이 내쫓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했으며, 구원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과 은사같이 보이는 것들을 행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멸망의 선언을 받았다. 왜 그런가? 이 성경절의 서두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9~20)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아름답고 거룩한 열매가 맺히지 못했던 것이 그들이 불에 던지우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깨끗하지 못한 마음과 불의한 생활 가운데서 성령의 은사를 간구했으며, 그때 마귀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을 매우 깊은 기만 가운데로 끌어갔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성령에 대한 기사들이 성령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줌으로써 우리의 생활에 성령 충만함과 큰 영적 부흥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