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늦은 비와 우리의 준비

늦은 비와 우리의 준비


1. 늦은 비는 언제 내리는가?

답: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마지막 환난이 시작될 때 내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을 무시하고 인간이 만든 계명과 유전을 지키라는 명령이 강요될 때, 바벨론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계시록 18장의 예언을 보면 무너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무너진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서는 큰 능력과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앞 장인 계시록 16장에는 일곱째 천사가 일곱째 대접의 재앙을 붓는 장면과 마지막 사단과 또 그의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하여, 그리고 17장에는 짐승과 어린양이 전쟁을 하며 싸우지만 어린양이 승리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단이 마지막 선악의 대쟁투에서 짐승을 통하여 역사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고 어린양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는 최후의 시기에 늦은 비 성령이 내리는 것이다.

2. 늦은 비의 필요성과 목적은 무엇인가?

늦은 비는 지상의 곡식을 완전히 익게 하여 낫을 대어 추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8~29). 추수기에 가까워 내리는 늦은 비는 곡식을 익게 하여 낫을 대어 추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이슬과 비가 처음에는 싹이 트게 하고 그다음에 늦은 비가 내려 수확할 수 있도록 익게 하는 것처럼, 성령도 한 계단 한 계단씩 영적 성장에 단계에 따라 전진하게 하려고 내려주신다. 곡식이 익는 것은 영혼 속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이른 비의 경험을 영구화시킴으로써 인을 친다

늦은 비는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되어 있는 성품을 고정시킨다. 이른 비로 다 자라난 식물이 마지막 추수의 완성을 위하여 늦은 비를 필요로 하듯 늦은 비 성령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 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 후 2:19). 인 침을 받을 자들은 불의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사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진리 안에 확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뜻한다. 마치 밀초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하나님이 형상과 성품을 이룬 사람들에게(믿음과 성장의 분량은 서로 다르고 단계도 다르다) 늦은 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는 것이다.

큰 외침을 하도록 능력을 준다

늦은 비는 큰 소리 외침에 능력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내려 주신다. 마지막 때에는 오순절 때의 이른 비 성령의 역사보다 더 강하고 크고 풍성한 성령의 축복이 내려질 것인데,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나아가 하나님이 영원한 복음을 세상 끝까지 삽시간에 전할 것이다. 최후의 큰 외침(계 14:6~12, 18:1~4)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선포인데, 지금 바벨론은 거의 무너졌으며 더러운 영의 처소가 되었다. 늦은 비는 바벨론이 완전히 무너지는 때, 곧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법령을 내릴 때 임하는 것이다. 덧붙여, 큰 소리 외침의 기별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선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 사람들, 즉 영원한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품과 생애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상과 우주에 드러내는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증인들이 늦은 비 성령을 받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이른 비 성령의 역사로 형성해 온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계명을 지키는 믿음을 온 세상에 증명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데, 늦은 비 성령은 승리하는 믿음을 길러온 사람들이 다시는 쓰러지지 않도록 봉함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환난의 때를 위하여 내린다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할 사람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과 재앙들을 통과할 사람들을 위하여 늦은 비 성령이 내린다. 늦은 비는 성도들이 최후의 박해와 위기를 잘 견디고 환난을 잘 통과하게 하려고 주어지는 것이다. 악인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일곱 재앙은 매우 극심할 것이다. 그 재앙이 의인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늦은 비 성령은 의인들이 무사히 환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3. 늦은 비를 위한 준비

이른 비 때에 모든 죄를 극복한 사람들만이 늦은 비를 받을 것이다. 늦은 비를 받기 위한 준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늦은 비는 보충해 주는 것이 아님

늦은 비를 받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이른 비 때에 완전히 회개하고, 죄에 대하여 승리하며, 성품의 변화를 입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들을 보충하려고 늦은 비 성령의 큰 능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내리는 늦은 비 성령은 죄악을 시정해 주지도, 죄악적인 결함을 보충해 주지도 않을 것이며, 보충해 줄 수도 없다. 늦은 비 성령이 내리는 시기는, 하늘에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속죄 사업이 다 마치고, 은혜의 시간이 마친 후에 세상에 환난과 재난이 시작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중보 사업을 하시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와 속죄 사업이 끝나기 전에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며 주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온전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며 주님께서 주신 모본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회개 기도를 받으시고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고백하는 자복과 회개의 기도를 지금 하늘로 올려 보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머지않아 예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던 금 향로를 던지시며 이렇게 선언하실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헤아려진 자들만이 환난을 위해 늦은 비 성령으로 인 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할 때는 지금이다.

2. 이른 비로 정결케 되어야 늦은 비를 받음

늦은 비를 받는 데 가장 필요한 준비는, 이른 비를 받아 모든 죄에서 정결케 되는 것이다.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 교만, 이기심, 세상을 사랑함과, 모든 그릇된 말과 행동에 대하여 승리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기고 버리며 정결케 함을 입지 않는 한, 늦은 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품성 가운데 있는 결함을 보충하고 영혼의 성전을 모든 불결함에서부터 정결케 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아무런 노력이나 극기 없이 늦은 비가 임할 때 변화함을 받으려는 사람은 너무 때가 늦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성령의 역사를 구하고 그 도우심을 힘입어 모든 죄를 극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공로와 희생을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죄를 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보다 더 귀한 보물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원하는 소원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 붙어 있는 욕심이 더 이상 없고, 정함이 없는 이 세상에 사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사는 것을 더 열망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른 비 성령을 받는 사람은 매일의 생활에서 죄를 회개하고 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밀접하게 교제하며, 주님의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단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주님의 임재가 마음속에 늘 함께 하시므로 악한 생각이나 의도가 싫어지고 죄악적인 일과는 인연을 끊게 되며, 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 습관처럼 될 것이다. 이렇게 이른 비의 정결케 하는 경험을 하는 자만이 늦은 비를 받게 되는 것이다.

3. 승리한 자들만이 늦은 비를 받을 것임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만이 늦은 비를 받고 환난을 통과하여 변화 승천하기에 적합해질 것이다. 이른 비 아래에서 성령의 은혜로 죄를 극복하는 경험을 해 온 자들에게만 늦은 비가 임할 것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변화가 없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수년 동안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졸고 있는 사람들, 그 마음에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순종하므로 성화 되지 않은 신자들은 늦은 비를 받기에 적합하지 못할 것이다.

늦은 비는 그동안 형성되어온 품성을 다시는 죄에 쓰러지거나 실패하지 않게 인봉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일방적으로 멸망을 선언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그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의 부족, 무관심, 세속적이고 경박한 품성의 당연한 결과를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는 것일 뿐이다. 진리에 대한 그들 자신의 태도가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그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기에 전혀 부적합해지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나서도 죄를 계속해서 범한 자연적인 결과와 형벌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많은 빛을 받고도 그것을 거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이 품성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피할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모든 죄를 이기고 주님과 더불어 보좌에 앉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믿음(계 14:12)을 소유한다면 죄를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것이며, 그 일이 우리의 경험 속에 이루어질 것이다.

일찍이 있었던 싸움 중에 가장 큰 싸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그것은 자아와의 싸움이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고 순결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갖는 것, 온유함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사랑을 소유하는 일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순복하여 드리며 주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사는 일을 기쁨으로 삼을 것이다. 자아와의 전쟁이 매우 힘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완전한 승리자로서 생애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바로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 제2의 오순절의 경험을 맞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죄와 모든 시험을 이기고 또한 모든 유전적이고 배양되어온 죄의 기질들에 대해서 완전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애와 품성은 우리에게 믿음직한 본보기가 된다. 하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믿음과 확신은 제한이 없었다.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믿었으며 그 능력을 받으려고 쉬지 않고 기도하셨고, 또 그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의 순종과 굴복은 전적이면서도 완전하였다. 우리도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을 소유해야 하며 그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에 늦은 비 성령을 받을 사람들은 남은 무리,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