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구원받은 사람이 멸망받기로 선택할 수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이 멸망받기로 선택할 수 있나요? 
    
(Once saved, Always saved? Part II)

버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아시나요?

사도 바울은 육체적 죄의 성향을 재갈먹이지 않는다면, 결국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함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바울은 자신의 생애가 다시 죄에 사로잡히도록 허용한다면 멸망당할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12절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나중에 믿음을 버리면 심판을 받는다는 직접적인 말씀이 나온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신자가“처음 믿음을 저버리고” 마지막 때에 심판을 당하게 될 수 있음이 얼마나 분명한가?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버릴 수 있나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비유로 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애쓴다. “자녀는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므로, 그들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항상 자녀이다. 그들은 이미 태어난 존재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자녀가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를 불문하고, 자식은 항상 부모의 자식인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매우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한가지 중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데, 그 문제는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여 부모의 돌봄을 떠난 자녀는 병들어서 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던 것이다(요 6: 53). 또한 63절에서는“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이 한번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으면 그분께로 나오는 영적 생명을 계속해서 받을 수 없으며, 그 결과 그는 스스로 영적 죽음을 당하게 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자 이제, 구원을 위해서는 계속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했는가? 바울은,“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 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다(롬 6:16). 사람이 그리스도를 순종않기로 선택할 때에 그는 사단에게 순종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되며, 더 이상 그리스도께 속한 자녀가 아니라 사단에게 속한 사단의 종이 된다. “의를 행하는 자는 ...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 3:7,8.

한번 믿었다가 믿음을 떠나갈 수 있나요?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서 떠나는 일에 대하여 특별한 경고를 거듭해서 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은, 일단 한번 구원 받으면 그 구원이 계속되며, 아무도 그 구원을 번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을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그 후에, 신자들 중에서 뒤로 물러가도록 유혹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 나온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히 10:26~29). 여기에 묘사된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의적으로 배도에 빠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믿음을 저버리는 일에 대하여 경고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5~39. 사람의 영원한 구원은 그가 끝까지 믿음에 확고히 남아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이 자신의 확신을 버리고 멸망에 빠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 바울은 왜 이토록 분명한 경고를 남겼겠는가?

한번 믿었다가 떠나가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

히브리서 6장 4~6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두려운 말씀을 볼 수 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중생을 경험했으나 후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성령을 버린 자들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성경절이 경고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향력 밖에 자기 자신을 두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불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박는 한, 구원받을 수 없다.

영생에 대한 보장은 조건적이다. 베드로후서 1장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나타나야 할 여러가지 미덕들을 나열하고 있다.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을 자들에게 편지하”면서(1절),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고 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니라”9~10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지적해 준다. 사람들은 예수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설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배도자가 될 수도 있다. 다시 3장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14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17절.

사람이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공공연히 말한 후에라도 스스로 그리스도로부터 떠나 멸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구절은 베드로후서 2장 20~22절이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게 되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리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나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잃어버림바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개나 돼지로 비유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들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하여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났었다. 그들은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편에 가담했었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를 주님께 의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 죄의 “구덩이”를 다시 생각했다. 애굽에서 나왔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고기 가마”와“부추와 파”를 그리워 했다. 그들은 죄의 즐거움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치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가서 도로 눕듯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베드로의 교훈은,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길 수 있는 가능한 일임을 보여 준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

성경은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로, 한번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서 구원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서 멸망당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으리라.”딤전 4:1. 말세인 지금, 어떤 사람들은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 믿음을 떠나가고 있다. 그들은 함께 교회에 출석하며,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회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교회 사업에 헌금을 드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의 목사들이었으며, 제직들이었고, 지도자적 위치에 있어온 평신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가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견고하지 못하며 충성되지 못하였다. 이제 마지막 환란의 때에 핍박과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올 것인데, 어떤 이들은 굳세게 서있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사물들에 유혹되고 악한 영에 미혹될 것이다. 슬프게도 그들은 구세주를 향한 충성심을 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진리에는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도 전에는 그리스도의 편에 섰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시련이 왔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원수의 편에 가담할 것이다.

유일한 방법

만일 여러분들이“영생의 무조건적 보장”을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매 순간을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써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분 곁에 머물라. 그리하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그분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신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리라” 시편 55:22. 여러분들이 그분 곁에 서 있는 한, 그분께서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서 계실 것이다. 여러분이 그분의 손을 놓지 않는 한, 그분께서는 결코 먼저 여러분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어떤 보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하늘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들은,“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착하다. 나는 구세주를 믿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사람도 자신들의 생각에 기초하여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가 착하고 성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착함과 성실이 그를 구원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정직하고 진실되며 도덕적이고 훌륭한 시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미덕들이 그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는 자유를 존중하며 교회를 돕고 불쌍한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공로들도 그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선한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지 못한다.

여러분의 헌물, 여러분의 선행이 구세주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분께서 우리 모두에게 값없는 선물로서 구원을 주셨다. 여러분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요일 5:12). 그러나 아들을 가지지 못하면,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지킬 때에야 비로서 여러분들은 영원한 보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처음 사랑”을 버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는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4~5).

그리스도인이“처음 사랑”을 버린다는 것은 뒷걸음질 치는것, 떨어져 나가는것, 주님과 그의 봉사를 떠나서 죄와 사단과 세상을 섬기러 가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여“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신다고 했는가?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것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최후의 통첩이다. 만약 죄인이 이에 응하여 회개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서 그의 처음 행위들을 회복한다면, 그는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약 그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받은 빛은 제거되어 없어지며, 뒷걸음질쳐서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뒷걸음질친 자가 항상 죽기 전에 주님께로 돌아오는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었던 사울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을 잘 말해준다. 사울에 대하여 성경은,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네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그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 삼상 10:6. 그러나 사울은 그의 높이 들린 위치에서 뒷걸음질 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삼상 31:1~6 참고). 사울 왕은 새 사람이 되었으나, 뒤로 물러나서 죄악 속에 빠지게 되었고, 끝까지 하나님께 반역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회개도 하지 못한채 죽었다.

어떤 사람도 구원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장 잘 지지해 주는 것처럼 인용되고 있는 성경 구절을 한번 살펴 보도록 하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모든 자녀들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언뜻보기에 이것은 영적으로 잃어버릴 가능성이 전혀없는 불변의 보증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맥 전체를 자세히 읽어 보라. 이 성경 말씀의 바로 앞에 나와 있는 27절을 읽지 않는다면, 이 말씀을 기록한 요한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하게 된다. 27절에는 28절과 29절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선제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 안에서 거하는 자들은, 오직 그분을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당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양들에게만 영생을 주신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흔들려서 나가지 않고 영원히 그분 안에 거할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는 양우리 안에 있는 양을 훔쳐가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원수들로부터의 보호를 말하는 것이지, 양우리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를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고 양우리 밖으로 나간 불순종한 양들을 위한 보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들을 하늘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언제라도 스스로 아버지의 보호 밖으로 뛰어나갈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를 빼앗지 않으신다. 죄인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멸망 받기로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배도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배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성경의 수없이 많은 구절들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만일 사람이 멸망당할 수 없다면, 왜 바울이나 베드로 혹은 그밖의 사도들이 영원한 멸망에 대해서 그토록 심한 경고와 권면을 남겼는가? 만약 한번 구원받으면 그것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마귀는 한번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쓸데없고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기 때문에 신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사단이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자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구원이 과거나 현재에 한 단 한번의 취소할 수 없는 공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혀주시는 의와 나누어 주시는 의를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경험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원천되시는 그리스도와의 계속적이고도 역동적인 관계가 없이는 결코 현실화 될 수 없다. 구원받는 문제를 성서적으로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 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구원은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 말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

한번은 어떤 사람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풍랑에 배가 뒤집혀 물속으로 가라 앉게 되었다. 그는 수영을 잘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다른 고기잡이 배가 다가왔다. 그러나 그 배는 많은 화물을 실고 있어서 더 이상의 또 다른 승객을 태운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쌍한 이 사람을 구조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로우프를 던졌다. “여기 이 로우프를 잡으시오. 우리가 당신을 해안까지 끌어다 주겠다” 라고 그들은 말했다. 조난당한 사람은 그 로우프를 잡자마자,“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구조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맞다! 그가 로우프를 붙잡고 있는 한, 그는 구조받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구원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 속에서 그가 해야 할 몫이 있다. 그가 언제든지 로우프를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다시 잡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구조되지 못할 것이다.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있는 한, 그는 구원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손을 놓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에 마귀의 손을 잡는다면 그는 멸망당할 수 밖에 없다. 그의 구원은 그가 결정하는 선택에 달려 있다.

실제로 우리는 구원을 세 시제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다. 즉, 과거, 현재, 미래. 그가 로우프를 잡았을 때,“나는 구원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배에 매달려서 끌려오고 있을 때,“나는 구원 받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가 해안에 발을 들여 놓으려고 할 때,“나는 구원받은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회개한 사람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다. 신학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칭의라고 말한다. 또한 그가 현재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받고 있다면, 이것을 성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는 죄의 존재인 사단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 그것을 영화라고 말한다.

성경은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 세가지 시제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영어 성경에는 보다 분명하게 세가지의 시제가 나와 있음). 로마서 8장 24절에“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표현이 있다(과거: we were saved).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는“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이라고 되어 있고(현재: we are being saved), 사도행전 15장 11절에는“우리가 ...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기록되어 있다(미래: we shall be saved). 이렇게 하여, 성경은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세가지 시제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사용하고 있다.

이 문제를 좀더 상세하게 살펴 보도록 하자. 구조받기 위하여, 그가 로우프를 꽉 붙잡아야만 했던 사실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는 로우프를 스스로 만들지도 못하며, 다만 배에서 던진 로우프를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 자신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서 그가 끌려갔던 사실을 기억하라. 그는 단지 그 끌어당기는 힘에 협력했을 뿐이다. 그는 로우프를 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가 안전하게 끌려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해야 하고, 그분께 계속해서 붙어있어야만 한다. 그분께 확고부동하게 붙어 있음으로써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붙잡는데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몫 이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내쫓지 않으신다. 그 분께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오직 한가지 방법은, 우리 자신을 그분께로부터 스스로 끊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지성을 사용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우리의 의지와 판단력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돌아서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과 하늘의 사물들 대신에 세상의 사물들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서만 구원받는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써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게 된다. 순종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결과이다. 바로 이러한 결과들이 성령의 열매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다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이 끊임없이 샘솟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로우프를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께 계속하여 굳게 붙어있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3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