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성서적 참 복음

성서적 참 복음


제9부에서 다룬 복음의 뿌리를 찾아서 내려가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와 멸망 당할 자를 미리 결정해 두셨기 때문에 구원에 관한 한 인간 개인의 선택과 의사는 전혀 무시된다는 예정설을 만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10부에서 다룰 두 번째 복음의 뿌리를 찾아서 내려가면 자유 의지의 선택이라는 원칙이 나온다. 생애의 빛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구원받기로 선택할 수 있고, 또한 멸망 받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게 될 두 번째 복음 즉 성서적 참 복음은 바로 이 점에 기초하여 시작된다.

1. 죄란 자유 의지의 선택이다

성경은 죄를 본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린 아기는 지옥불에 태워 없어질 정죄를 받은 죄인이 아니다. 이 복음은 죄를 마음의 선택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Yes” (예)라고 대답할 수 있고 “No”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도 있다.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기로 선택할 때에 비로서 우리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어린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 본인의 의지로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에 그를 죄인으로 정죄할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고리가 잘못되면 두 번째 고리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처럼, 첫 번째 교리가 올바른 기초 위에 세워지면 그것과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다음 교리들도 자연스럽게 성서적으로 세워진다.


2. 우리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

죄를 자유 의지의 선택 여부라고 정의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서도 성서적인 교리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죄에 대하여 성서적 정의를 내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하여 그 분의 인성을 억지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인성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게 된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인성)를 취하셨다. 죄에 대한 이러한 정의 하에서는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셨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게 된다. 예수께서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한결같다”라고 말하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분께서 우리와 동일한 수준에서 유혹을 받으셨다는 점이다. 첫 번째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그 분의 생애 가운데 3번만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으셨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히 4:15).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셨다. 그래서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중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3. 칭의와 성화로 구원받는다

첫 번째 복음은 칭의만을 복음으로 규정하지만, 두 번째 복음에서는 칭의와 성화 두 가지 모두가 복음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용서하심과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여 용서받은(칭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이 전에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고 복잡했던 여자 관계를 정리하며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놀라운 변화(성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 중에 어느 하나가 무시되면 복음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 칭의는 받았는데 성화는 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칭의)하실 때에는 그 죄인의 마음도 동시에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욕심 많던 세리 삭개오가 주님으로부터 용서(칭의)를 받은 다음 그 생애가 완전히 변화(성화)되었던 것처럼, 칭의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생애 가운데 반드시 거룩한 열매(성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칭의: 첫 번째 복음에서는 칭의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며 성화는 50%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고 나머지 반은 인간의 노력이다 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이 두 가지 복음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두 번째 복음 즉 참된 성서적 복음은 칭의를 받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내 자신이 그 분을 믿어야 하고 내 생애를 그 분께 드리는 내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있어야만 칭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예수께서 칭의를 해주시지만 그 분의 사랑과 희생에 반응하고 응해야 할 나의 몫이 있다는 말이다.

성화: 성화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복음에서는 성화를 인간의 불완전한 행위로 간주하여 복음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여기서 다루는 성서적 복음에서는 성화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은 그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역사를 내 마음 속에서 이루시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이 길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고 말씀해 주실 때, 나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성화이다. 그러므로 성화에 있어서도 나의 인간적인 노력은 없다. 100% 하나님의 역사이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여주시는 대로 믿고 순종하며 따라갈 뿐이다.

4. 완전한 순종은 가능하다

우리를 100%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분께서 우리를 온전히 성화시켜주신다는 사실을 믿는가? 예수께서 그만한 능력이 없으신가?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죄가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죄보다 훨씬 강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것처럼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빛과 인생의 경험들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길로 인도하신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이것을 바라고 믿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 신앙이다.

성화와 완전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두 단어가 있다. 매우 단순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두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그것은 “Yes, Lord!”(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칭의를 받고 성화를 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완전한 순종의 삶이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복음이다. 제1부에서 배운 첫 번째 복음을 믿는 어떤 목사가 최근에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우리는 복음을 한 단어로 줄일 수 있는데, 그 말은 용서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는 한 구원은 보장됩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에게 말하는대로 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용서만 받으면 구원은 보장됩니다.” 진리의 빛과 양심대로 살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가 베풀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목사는 그렇게 복음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두 번째 복음은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복음을 “회복”(restor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복음이란 타락한 죄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복음은 그저 우리를 용서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켜 주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명하신 “천국 복음”이다(마 24:14).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전파되어야 하는 “영원한 복음”이다(계 14:6).

5. 복음의 열매들

이 두 번째 복음에는 어떤 열매가 맺히게 될까? 이 복음에서 심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애는 기록하는 천사에 의해서 기록된다. 그래서 왜 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고, 왜 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지가 공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왜 이 사람은 하늘에서 영원토록 예수님과 살 수 있고, 왜 저 사람은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가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만 한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였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는 죄가 계속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 복음에서는 순종의 열매가 거두어진다. 죄를 자유 의지의 선택으로 볼 때, 계명은 지킬 수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의 본성이 너무나 타락되어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가 라는 도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명을 완전히 지킨 생애를 사셨다” 이다. 제1부에서 다룬 첫 번째 복음의 믿음처럼 만일 예수께서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셨다면,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분이라면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가능해 진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동일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 백성들도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이 복음에서는 지혜의 열매가 거두어 진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혜들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짓는 기준은 아니지만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어떤 그리스도인이 마약과 술에 취해 사는 거리의 노숙자를 집으로 데려와서 깨끗하게 씻어주고, 담배와 술과 마약을 끊게 하고 성경이 지시하는 여러 가지 건강의 원칙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잘 따랐다. 성경에 나오는 건강원칙들을 잘 따를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9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그 사람은 장수를 즐기다가 죽었다. 그러나 그가 후에 악인들의 부활에 일어나서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다면 성경에 나오는 건강 원칙들이 그 사람의 구원에 무슨 유익을 주었는가? 건강 원칙들은 단지 그 사람을 7~9년 동안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건강의 원칙들은 그러한 목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다.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과 원칙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가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과 마음이 깃든다는 말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그 곳에서 선과 악의 대 쟁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지혜를 담아 두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통하여 조성된 우리의 맑고 깨끗한 정신과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전쟁을 돕기 원하신다.

이 복음에서는 마귀의 온갖 잡음들이 차단되는 결과가 얻어진다. 성경은 우리의 감각 기관을 잘 지킬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마귀, 두 존재가 모두 우리의 오관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을 통하여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다섯 가지 감각을 잘 지키면 마귀의 접근을 꽤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각종 쓰레기를 쏟아내는 텔레비전과 각종 미디어를 조심스럽게 절제해야만 한다. 첫 번째 복음은 예수를 믿는 한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들은 흔히 그러한 것들은 구원과 상관없는 일들이라는 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경고들을 무시한다.

지금까지 제1부와 2부를 읽어온 독자 여러분께 질문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떤 복음을 지금까지 믿어 왔는가? 또한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어떤 복음을 따라가고자 하는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고, 그 결과 또한 여러분 스스로가 받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께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진리에 대한 확신을 깊이 새겨주시길 기도 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