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나요? 
      (Once saved, Always saved? Part I)

구원받은 이후에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지나요?

“나는 작년 12월 21에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확신있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하면서,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멸망당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영원히 불변하는 것으로 보장해 주셨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정말,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인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 그러나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무도 타락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싫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본성을 선택하여 태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싫든 좋든 간에 이기적이고 죗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출생에 관한 결정은, 이미 오래 전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죄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다. 이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당당한 권리이다. 이 선택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이 선택은, 죄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영원히 죽을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마음을 받아서 영원히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제공된 이 선택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그들에게 하셨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너희들의 불행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한가지 결정권을 줄께! 일단 네가 한번 구원받기로 선택하기만 하면, 너는 결코 다시는 멸망 당할 수 없단다. 너는 그 결정을 바꿀 수 없어. 네가 그리스도를 너희 구주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그것은 너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다. 나중에 네가 생각을 바꾸어서 너의 결정을 포기하거나 바꾼다고 할지라도, 때는 이미 늦었단다. 아무리 네가 멸망당하기를 원하고, 심지어 네가 과거에 하였던 회개를 후회한다고 할지라도, 너는 결코 영생을 피할 수는 없단다. 네가 아무리 큰 반역을 일으키고 의도적으로 신성을 모독하고 악한 생애를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 받기로 한 너의 결정은 바뀔 수 없지. 나는 네가 예수를 너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후에는 더 이상의 어떤 선택도 하도록 허락할 수 없단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구원에 대한 영원한 보장 즉,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교리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도는 이와 상반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우리가 한번 했던 선택과 결정을 자의로 바꿀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은 과거에 이루어진 단 한번의 선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받게 된다고 믿는다. 고의적인 불순종과 의도적인 반역 정신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질 때, 신자는 더 이상 참 신자가 아니며 구원에 대한 어떤 보장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수백만명의 구원이 달려 있는 가르침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Once Saved, Always Saved”(예수를 믿음으로서 일단 한번 구원받으면, 품성과 믿음의 영적 성장에 상관없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 상관없이 무조건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라는 구원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구원의 문제가 이처럼 매혹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기만당하고 있다. 만약 신자들의 구원이 단 한번의 믿음으로 무조건적으로 보장된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신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교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오류가 될 것이다. 이 잘못된 가르침의 위험성을 올바로 파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수백만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도 있으며, 잃어버린 바 될 수도 있다. 이 가르침이 사람들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언젠가 전도 집회 때였다. 백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했었는데, 그들은 이 구원에 대한 영원한 보장의 교리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집회에서 나는 청중들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쳤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성서적 진리를 듣게 되자 매우 놀랐다. 그들 대부분은 진리를 분명하게 깨달았으며,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백여명의 사람들 중에서 단지 몇명만이 그 진리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리를 따르려면 불편과 경제적 어려움, 심지어는 직장을 잃는 것까지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때에 진리를 거절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진리를 거절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므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진리를 지키려고 애씀으로써 어려움을 자초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 진리를 순종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구원을 받지는 못할 것이며, 그 진리를 거절한다고 해서 멸망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해이다.

그들의 구원관에 있어서,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나 영적인 성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전적으로 과거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던 단 한번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인생의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새롭게 주어지는 진리의 빛에 순종하느냐 또는 불순종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한두가지 계명 아니 계명 전부를 범할지라도, 자신들은 여전히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순종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기쁨이나 평화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최종적인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바로 그 교리의 진위에 달려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답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과 믿음을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더 이상의 선택권을 포기하는 것인가? 구원은 한 순간의 결정으로 완성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결정 후에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안에서 계속 성장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죄들을 가지고 당신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실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대답들이 성경에는 많이 있다. 이제부터 그러한 성경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아울러“일단 한번 구원 받으면 그것이 끝”이라는 교리를 뒷바침해 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몇몇 성경 구절들도 찾아 보도록 하자.

죄를 가지고 하늘에 들어갈 수 있나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요한은,“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했다(계 21:27). 예수께서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5:8). 죄는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유일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죄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바울은 기록하기를,“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 ... 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아시나요?

성경 어느 곳에서도, 과거에 가졌던 한 순간의 믿음의 경험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의한 영적 성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관계가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은 인간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을 떠나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우주를 보존하고 원자들을 함께 묶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의 에너지가 요구되는 것처럼, 영혼의 영적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그러나 사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기로 선택하면, 그 연결 관계는 끊어지며 신령한 생명은 사람에게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그러한 선택을 막으실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스스로 끊고 멸망당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요한복음 15장 1~6절을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영생의 최대 신비를 설명하고 계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5,6.

계속해서 살아 있으려면, 계속적인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아니하면, 그는 시들어 죽고 결국에는 지옥불에 살라지게 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관계가 결코 과거에 이루어진 단 한번의 결정에 기초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 3:4)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을 신자가 나누어 받는 것을 말한다. 가지가 포도나무로부터 분리될 때, 생명의 근원이 분리되고 그 결과는 죽음뿐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은 너무나 분명해서 누구나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산 포도나무와 연결된 신실하고 믿음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포도나무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죽게 되며 불에 던지워져서 살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전에는 살아 있었던 것이, 지금은 시들어서 죽어가는 것이다. 영생에 대한 보장은 오직 그들의 믿음이 그리스도께 고정되고, 그들의 마음이“생명이신”그분과 연결된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아시나요?

예수께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가시덤불과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배반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눅 8:12~13).

이 비유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될 몇가지가 있다. 첫째로, 오직 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길가와 바위에 떨어진 씨로 비유된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얼마 동안만 신실하였던 사람들은 얼마 동안만 구원받은 상태로 있다가 유혹의 때에 떨어져 나갔다. 물론 결국 그들은 잃어버린바 되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사람들이 얼마 동안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가 후에 믿음을 잃으면, 멸망받게 된다는 주님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신실하였던 청지기가 멸망당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가르침을 부인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복음 12장 42~46절에서, 예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이 불충성한 종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관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를 나눠줄 자가 누구냐”라고 물으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종이 어떻게 자신의 상급을 잃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지혜있고 진실한 종이 불신자들과 함께 형벌을 받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예를 들어서 설명하여 주셨다. 이 성경절은, 예수께서 무거운 책임을 맡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신실하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틀림없이, 여기서 나오는 종은 진실된 신자로서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충성되던 바로 그 종이 충성된 길에서 떠나 영원한 파멸과 죽음을 당했다. 또한 이 비유는 히브리서 10장 38절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진실한 자라 할지라도 뒷걸음질하여 진리의 길에서 돌아서면 멸망당할 수 있다. 믿음이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고정되어 있는 자들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용서에도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리스도의 비유를 또 하나 읽어보면,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예화는 마태복음 18장 21~35절에 나오는 왕과 빚진 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왕이 자기 종의 간청에 응하여 엄청난 액수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약간의 빛을 진 동료 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자신에게 빚을 당장 갚을 수 없다고 해서, 무자비하게 그를 감옥에 집어 넣었다. 이 사실을 왕이 듣고 나서 분노하여, 왕이 전에 그 종에게 탕감해 주었던 많은 빚을 취소하고, 그 종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어 놓았다. 이 예화의 끝에는 하나님의 용서에도 조건이 있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렇게 하시리라” 마 18:35

아무도 이 비유의 분명한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지만, 그 용서가 조건없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대함으로써, 이미 받은 용서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이것은 에스겔 33장 13절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이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이 원칙은 18절에서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
영원한 구원의 비결은 구원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던 것이다(마 24:13).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서 그것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제거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이기는 자는 ...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 리라.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명확하다. 즉, 이기지 못하는 자 -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자 - 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 모든 구절들은 일관성 있게 동일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영생에 대한 보장에는 항상 조건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요 15:6.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벧후 1:10.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 2:12.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롬 8:13.


 

선택 받을 자들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자기 자신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가면과 위선을 버리고 떨리는 손으로 천국문을 잡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진리가 마음과 양심을 찌를 때에 인간적인 고집과 편견을 버리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양심 속에 들리는 가장 작고 세미한 그리스도의 음성일지라도,
가장 크고 엄숙한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영혼마다 선택된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