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성소 첫째 칸과 둘째 칸의 경험


1. 성소 첫째 칸과 거룩함

성소 제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진리가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속 사업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용서받은 죄인이 다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게 되기 위하여 회복되는 과정이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감리 교회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개혁자인 요한 웨슬레가 부르짖었던 성령의 열매이다. 그는 성령의 열매인 변화된 거룩한 생활이야말로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고 가르치는 성화의 가르침을 설교하였다. 성화에 대한 요한 웨슬레의 그러한 가르침은 성소에도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실물교훈으로 보여 주시기 위하여, 또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어떠한 사역을 하셨으며, 현재에는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신지를 가르쳐 주는 청사진을 보여 주기 위해서, 성소제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성소제도는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희생과 대속의 죽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성소 뜰을 지나서 들어가게 되는 성소의 첫째칸에서는 구속 사업의 두번째 국면으로써 예수님의 중보의 사역과 인류에게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주시는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

먼저, 신약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다음, 성소제도가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실물교훈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도행전 26: 18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라는 말씀을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 66권을 통하여서 성화 즉, 거룩한 생활과 변화된 순종의 생활을 구원받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 과정으로 소개하고 있다. “...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데살로니가 후서 2:13)라는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의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을 강조하면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5:26,27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거룩함을 이상한 기분이나 황홀경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상태를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말씀하셨으며(요한복음 14:15), 사도 요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라고 말씀하였다(요한일서 5: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 결과로 거룩하게 되며,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인 삶을 설명하여 주고 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에베소서 2:3,4,5,10.


성소를 통해서 알아보는 거룩함

이제, 성소로 돌아가서 성소제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의 의미를 살펴보자. 성소 제도는,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십자가)에서 어린 양(그리스도)을 잡아 죽이는 일(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통하여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를 버리기로 결심한 죄인이, 이제는 믿음으로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막의 첫째칸인 성소 안에는 금 촛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있다. 첫째칸인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과 제사장의 활동은, 성소 뜰에서 죄를 회개하고 버림으로써 용서받고 의인이 된 사람이, 이제 어떻게 하면 받은 바 그 의로운 삶을 계속해서 지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하여 은혜를 통하여 도와 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범했던 죄의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란 용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말한다. 은혜는 습관적인 죄의 속박으로부터 죄인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은혜는, 죄로 인한 영적 죽음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아니하는 사람을 영적으로 부활시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단어이다. 디도서에서 바울은 은혜를, 가르치시고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1~13

그래서 히브리서 4:14~16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아서 의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죄의 유혹과 마귀의 공격은 우리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범했던 죄악의 습관들이 우리를 다시 찾아와서 시험을 주며, 날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와 꼭같은 시험을 당하셨으며, 고난 가운데서 살아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날마다 당하는 시험들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당하는 시험과 유혹도 받으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한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고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서 담대히 은혜의 보좌”가 있는 곳인 하늘 성소로 나아가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하늘 성소 안에 우리를 시험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성소 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의 생활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고안하신 하나님의 아이디어들이 나타나 있는데, 성소의 첫째칸 안에 있는 금촛대와 떡상과 분향단은 그러한 하나님의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기구들이다.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은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순결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소의 첫째칸에 있는 기구들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두가지 금속의 합금인 놋으로 만들어졌던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성소 뜰에서 회개의 경험으로 번제단에서 죄를 태우고, 물두멍에서 깨끗하게 씻어서 순결하게 된 그리스도인은 그 다음 단계로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고 순결한 믿음의 경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소 안의 기구들이 순금으로 만들어 졌던 것이다.



2. 성소 첫째 칸 안의 세 가지 기구에 담겨져 있는 의미들

촛대

자 이제, 성소의 첫째 칸 안에 있는 세 가지 기구들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 금으로 만들어진 촛대에는 올리브 기름이 들어 있어서 그 기름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촛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징하며, 촛대 안의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성령의 감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거룩한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앞 길을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는 등불과 같다. 성소 안에는 외부로부터 다른 빛이 들어오게 하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촛대만이 성소 안에 있는 빛의 근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어떤 다른 빛이 우리를 인도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이다. 한 줄기의 빛이 칠흙같은 어두움을 내어 쫓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의 쓰레기들로 마음이 혼돈되고 복잡해 있을 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한마디의 성경 말씀이 모든 잡된 것들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퇴치해 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명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유지 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또한 거룩한 열매를 맺는 성화의 길을 걷고 싶은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읽는 대신에, 정직한 양심으로 읽어라. 성령께서 그대의 무지하고 둔한 마음에 깨달음을 주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준비해 두신 유일한 방법이다.


떡상

떡상도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하늘을 향하여 여행하는 나그네에게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필요할 뿐 아니라, 나그네에게 계속해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음식도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사단과 죄의 유혹을 이기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한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 말씀하시었다(요한복음 6:63). 먹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먹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만나가 하늘에서 내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을 향하여 여행하고 있는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하여 반드시 먹어야 하는 하늘의 만나이다. 하늘의 만나를 제대로 먹지 않는 그리스도인마다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지게 될 것이다.


분향단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는 중보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도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열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분향단의 향은 특별하게 만들어 졌고, 다른 목적으로는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분향단에서 올라가는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의로운 생애와 기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때에 예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소원에 당신 자신의 흠없는 의를 섞어서 아버지 앞에 올리심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도록 중보하고 계신 것이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우리가 도움을 요청 할 때마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험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당신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고 있는 것이다. 분향단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를 상징하고 있다. 그 분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시험 받는 자를 돕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소는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의로운 생애를 유지해 나갈 수 있으며, 어떻게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의 연구와 기도이다. 마음을 하늘로 여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기 위하여 두손을 모으는 기도! 시험당하고 어려울 때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매일 읽고 명상하며 우리의 마음 속에 담아두는 만나를 먹는 생활! 무엇이 진리이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가납되는 생활을 살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성경만을 유일한 빛으로 삼아서 연구하는 생활!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를 성화케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3. 성소의 최종 목적지인 지성소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만나는 곳

이제 결론적으로 지성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지성소 안에는 두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보관하는 법궤(언약궤, 속죄소, 증거궤)가 있었으며, 법궤 위에는 시은좌(은혜를 나누어 주는 곳)가 있어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인 쉐키나가 비쳐 나오고 있었다. 그 곳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면 즉시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결하게 준비된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완전한 정결과 도말을 위하여서 기도하였다. 그 날을 성경은 대속죄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성소는 성소제도의 결론이요, 최종 목적지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그 지성소에서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십계명)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0-22).

성소의 구조와 그 제도에 새겨져 있는 성소 뜰에서의 죄의 용서(칭의)와 성소 안에서의 성화의 경험은, 결국에는 인간을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국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며 순종하는 거룩한 생활을 살도록 가르치시고 힘 주시는 이유는, 결국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자로 회복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구원은 회복이다. 다시 원래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십자가는 죄인의 마음에 죄를 미워하는 심령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좋아하는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준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아무리 용서해 주신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계속적으로 똑같은 죄를 범하며 계속적으로 불순종하는 생애를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분의 용서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이유는, 이제 다시는 그러한 죗된 생애를 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시면서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실 때에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분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용서와 함께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게 되는 재 창조의 경험인 것이다.

대속죄일의 경험과 심판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될 것을 명하시었다. 그들은 일년 내내 죄들을 고백하며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면서 용서를 받아 왔다. 그러나 매년 마지막 날인 대속죄일 날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들을 그들의 회개가 정말 참된 것이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정말로 죄를 참회하고 버렸는지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일을 하셨다(레위기 16장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대력의 마지막에 있는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로 이해되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각각 심판하시는 날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8,29.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사도행전 17:31.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로마서 14:10.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디모데후서 4:1.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베드로전서 4:17.

성소제도는 우리에게 결국은 모든 인간이 누구나가 다 한 번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을 엄히 가르치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가리움을 받고 있으며 은혜를 통하여 구원의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우리가 예수의 손을 놓지 않는한 주께서 우리를 결코 놓치 않으실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자! 이제 곧 머지 않은 장래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태어났던 모든 인류를 각각 그 동기와 마음을 살펴서, 그들의 믿음의 동기가 참된 것이었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 왔는지 살아오지 않았는지를 헤아리시기 위하여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속죄일 날에는 아사셀 염소에게 모든 죄를 다 옮기어서 씌우고 광야로 데리고 나가 죽게하는 일이 있었다. 이미 다 용서한 죄를 왜 그렇게 하는 것이었을까?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죄에 메달려 있기를 선택한 죄인들은 최후의 날에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화되지 못한 죄인을 다시 하늘에 들이심으로써 또 다시 하늘에 전쟁과 반역이 일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용납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자신이 과연 진실된 마음과 동기로 하나님을 옳바로 섬기고 있는지 엄숙하게 살펴 볼 시간이다. 그대는 과연 지금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