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죄와 유혹의 차이

죄책감 그리고 죄와 유혹의 차이

죄와 죄책감, 그리고 유혹과 죄의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자칫 무거워 보이는 신학적인 논제 같지만,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주제이고, 또 이것에 대해 확실한 이해가 생길 때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함께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 죄악과 죄책감

아담과 하와가 이 세상에 가지고 온 죄에는 두 가지 문제가 따른다. 한 가지는 죄악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죄책감이다. 악은 모든 인간의 본성과 동물들에게 있고, 또 이로 인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야기된다. 또한 다른 문제는 죄책감이다. 우리는 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죄 받은 죄인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두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그분은 우리의 죄책감을 용서 하신다. “내가 너희의 죄책감을 대신 질 터이니 너희는 자유롭게 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의 죄책감이 없어질 때, 우리에게 지옥이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두 번째 죽음이라는 것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죄악과 죗됨은 언제 없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본성 가운데 있는 죗된 본성과 죄악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야 없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없애시는가? 주님께서 그것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과 우리의 본성을 재창조 하심으로 없애시는 것이다. 요한 복음 9:4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러분이 정말 모른다면, 정말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알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남아 있다. “빛”은 우리의 죄악들을 깨닫게 하고, 이것이 우리의 죄책감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빛의 지식이 우리에게 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순종하기로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의 본성 가운데 있는 죄악이 죄책감이 되는 것이다.

◈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서 분명한 말씀을 찾아보자.
∴ 야고보서 4장 17절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가 여기에 있는 차이를 이해해야 된다. 우리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아야 죄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알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이럴 때에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고양이나 어린 아기한테는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야고보서 1장 1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에 “자기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의 죗된 본성과 그 힘에 의하여 우리가 유혹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2). 유혹과 죄의 차이

1. 유혹
유혹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밖에서 무엇인가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가 필요하다. 보는 것, 혹은 듣는 것 등. 그래서 우리의 내적인 것이 그것에 유혹을 받아서 끌려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적으로 끌리는 것이 없으면 거기에는 유혹이 있을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이 야고보서 1:14절에서 읽은 것이다. 우리가 그것에 유혹을 받고 끌려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끌리는 자체”가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할지라도 우리가 그런 자극에 끌리는 자체가 죄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기를 이 죗된 자체가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본성이 죄 되다. 그러나 성경은 그 본성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끌리는 것은 “유혹”이라 말한다.

2. 죄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가? 죄는 유혹 뒤에 온다. 죄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가 있다. 곧, 유혹을 계속 품어야 죄가 되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 성경절을 보면 죄가 성립되는 데는 단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험담하는 죄는 악한 생각을 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궤휼”은 온갖 형태의 불순을 포함한다. 불순한 생각이 용납되면 부정한 욕망을 품게 되고, 그 욕망으로 마음이 더럽혀지면 그 정직성도 손상된다. 불순한 생각은 죗된 것이다. 그것은 더럽혀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것을 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불순한 생각이 죄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한다. 그것을 품어야 된다. 그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품어야 죄가 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4, 15절은 죄가 되는 단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처음에 유혹을 받고, 그 욕심을 계속 품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혹을 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죗됨과 죄의 책임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단계(끌리는 단계)가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3번째 단계를 죄라고 말한다. 이렇듯 “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하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 다른 복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록 1에서 살펴보았듯이, 첫 번째 죄의 대한 정의(원죄설)는,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 자체가 죄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과 늘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은 할 수 없고 그냥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런 정의를 가진 사람에게 복음은 항상 “용서만”해야 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항상 용서만 받고 살아야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성경과 맞지 않는 교리이다.

그러나 죄가 우리의 마음에 선택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거절할 수도 있고, 또 그분을 거절함으로 인해 치료 받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우리마음 가운데 모시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용서도 받고 치료함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