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십자가에 대한 오해

십자가의 대한 오해


왜 십자가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서 또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시키지 않고도 인간을 구속 하실 수 있는 다른 계획을 생각해 내실 수 없으셨을까?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도로 사시기 위하여서 다른 선물을 마련하실 수가 없으셨을까? 천사가 인류를 대신하여 죽을 수는 없었을까?

예수께서 갈보리로 가신 것은 전혀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이 세상의 인류들을 저들의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한 목적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단 마귀와 싸우는 우주적인 전쟁의 의미도 내포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전쟁은 십자가에서 최고도에 달하였다. 그 전쟁은 십자가에서 시작되거나 끝나지 아니했다. 십자가는 창조 이전 부터 하나님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혹시 인간이 자유 의지의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하게 될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은혜를 통하여 다시 구속할 것에 대한 계획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가 생긴 이유

십자가가 생긴 이유는 사단이 하늘에서 반역하여 전쟁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아름다운 그룹 천사 중 하나였다. 에스겔은 마귀의 타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청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 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 났도다” (에스겔 28:13-15).

또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사단의 타락을 설명하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Lucifer, 루스벨)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 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이사야 14:12-15).

위의 말씀들을 미루어 보아 그의 타락은 교만에서부터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과 자신을 비기면서 하나님처럼 높아지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다른 천사들을 꼬이면서 하늘에서 반역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천사들 중 삼분의 일 정도를 미혹하는데 성공한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데, 요한 계시록 12장의 말씀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꼬리가 (용의 꼬리 - 필자 주)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으로 던지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4,7-9). 여기에서 미가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용은 말씀 그대로 사단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사단의 도전장

이 전쟁에서 사단이 인류를 꼬인 수법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꾀이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꼭 마찬가지이다. 그는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실과를 따 먹어도 괜챦다고 꼬였다. 즉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거역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며 영원히 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모든 실과들은 먹을 수 있지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선악과 자체에 독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고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성립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존중성을 위하여 주신 명령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이 세상의 평화와 생명을 영원히 아름답고 질서 있게 보존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없는 사회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단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미혹하고 기만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마귀는 하나님을 이기적인 분이라고 고소하였다. 그 사실은 창세기 3장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그 금단의 과실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아는 하나님이 그것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시키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 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한 기만술에 인류의 조상은 그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불순종이 이 세상을 이러한 파멸로 몰고 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다시 회복되어 에덴 동산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 분의 율법을 존중하여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악하여지고 불순종에 익숙하여졌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7). 그러므로 하나님께 두가지의 사단의 고소를 침묵시키셔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 아니고 인류의 평화와 영원한 행복을 원하시는 크신 사랑의 존재인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은 우주의 질서와 평화를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요, 그것을 무시하고 깨뜨리는 날에는 세상의 파멸과 슬픔이 온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셔야 한다.

하나님의 응전, 십자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 오시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십자가는 에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신 속죄의 의미 이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기적인 분이 아니라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버린 모든 인간들이 당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은 폐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인류의 평화와 질서를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 세상의 타락의 모습을 통하여서 지난 수천 년간 증명되어 온 바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이 하늘의 천사들과 거민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품성의 차이점을 너무도 명백하게 살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사단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 것이며, 그의 주장들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온 우주가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인간들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하는 악랄한 마귀의 성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의 주장을 인정하는 자들이 없어졌다. 십자가에서 악한 마귀의 본성과 용서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품성의 큰 대조가 드러난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히 서게 되었다. 십자가는 사단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는 영원히 패배자가 되었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영원히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십자가는 영원히 인류를 구원하는 표상이 되었다. 마귀가 예수를 십자가로 죽이려 했으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사랑을 통하여서 영원한 승리를 거두신 것이다. 사단은 그래서 십자가를 미워한다. 그렇다고 그는 십자가를 없이 할 수가 없다. 십자가의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손바닥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기독교회 속에 들어온 사단의 기만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기억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선악간의 전쟁이 십자가에서 결정지어지긴 했으나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귀는 자기가 십자가를 없이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의 능력과 의미를 없애 버리기 위하여 또 다른 작전을 세운 것이다. 십자가를 그리스도인들이 믿더라도 십자가의 참 뜻을 오해시켜 버리면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사단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미묘한 작전을 세웠는데, 그것은 오히려 아예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울지 모르는 기만술인 것이다.

그는 자기가 십자가를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의 의미를 자기의 주장에 맞게 색칠을 하여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는 원래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은 꼭 순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폐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꼬여 왔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인류의 조상들을 기만한 방법이 아니였던가!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찬양하고 설교하며, 갈보리에 대하여 많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정적으로 십자가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찬송하며 설교하기를 원한다. 십자가의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예배나 찬송은 사단에게 조금도 두려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가르치며 믿게 하고 있다.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가 마치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도록 믿게 하고 있다. 십자가를 믿는 한 하나님의 계명은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믿도록 권한다. 십자가를 믿는 한 죄를 계속 지어도 충분한 용서 속에 있으니 염려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믿고 살도록 격려 한다. 사단은 갈보리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의 율법에서 해방하였다고 믿게 만든다. 십자가가 마치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해낸 것이 아니라, 그 죄 가운데서 구원을 준 것으로 믿게 만들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부터 해방하여 낸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일에 자유케 해 주신 양으로 생각케 하고 있다는 말이다. 십자가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그 죄에서부터 해방하여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십자가는 죄인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로 만들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브리서 9:14).

만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계명을 폐하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그 위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율법을 그렇게 쉽게 폐해 버리실 수 있으셨다면,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율법을 범한 인류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값을 치르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죄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은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시고 높이신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냥 쉽게 율법을 폐하여 버리실 수 있는 일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셔야만 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완전케 세우신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태복음 5:1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서 3:31). 사도 바울이 설명한 예수께서 십자가로 폐하셨다는 것은(골로새서 2:14-16 참조)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의문의 율법 곧 유대인들이 지키던 모세의 율법 즉, 절기들이나 종교 의식적인 절차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다.

십자가를 찬송하자!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상징이다. 십자가를 감사하자!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상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참 목적을 잊지 말도록 하자. 오늘날, 십자가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범람하고 있다. 그것은 마귀가 뿌린 씨들이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착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십자가에는 죄인들을 변화시키어 하늘에 있는 거룩한 천사들과 같이 살 수 있기에 안전한 자들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속하시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한 자들로 만드시기 위하여서 구원하신 것이다.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다.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죄를 짓는 면허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십자가는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케 해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로 만들어 준다. 이것을 경험하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