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십자가의 참 의미

십자가의 참 의미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신앙을 한다. 2000여년을 거듭해 오면서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원의 표상으로 삼고 믿으며 가르치며 전하여 왔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전 2:2).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인류가 이렇게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또한 주님의 구원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고 살고 있는 것은 갈보리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토록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기에 합당한 구속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 값을 갚으신 주님의 고통을 상징한다. 인류가 당하여야 할 처참하고도 자비가 섞이지 아니한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우리를 대신하여 지불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놀라운 희생을 나타낸다. 십자가는 멸망 당하는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가 없어서 절규하시며 돌아오라고 탄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며, 교회들 지붕 지붕마다 십자가를 달게 되었고, 심지어는 십자가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니고 있으며,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십자가를 수호의 상징으로 달고 다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그 진정한 구속의 의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십자가를 입으로만 찬송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십자가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들의 죄를 어떻게 대신 지실 수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책임지실 수가 있었을까? 또한 어떻게 죄의 결과를 우리 대신 경험하실 수가 있었을까? 이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잘 살펴 보아 이해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를 사랑하고 찬송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몸으로 죄를 지셨다는 의미

우리는 베드로 전서 2:24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게 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어떻게 몸으로 남의 죄를 질 수 있을까?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경험을 이해하도록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예를 들어서 거짓말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고 나면 어떠한 반응이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되는가?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며, 묘한 죄책감이 마음을 사로잡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얼굴이 빨개지며 식은 땀이 몸을 적시게 된다. 그리고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것이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우리가 우리 죄를 우리의 몸으로 지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들을 당신의 몸에 대신 지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짐작 할 수가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고통이란, 우리의 죄를 마치 예수님의 자신의 잘못이나 예수님 자신의 죄처럼 인정하여 대신 전가 시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셨다는 의미는 우리의 부채를 은행의 구좌 모양으로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넘겨 버리는 것 이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의미는,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와 심판을 대신 경험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러한 대가를 다시 치르어야 할 필요가 없도록 하셨다는 실제적인 맞바꿈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미리 예언한 말씀들 가운데 특히 시편 40장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데 충분하다. 시편 40:12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을 듣게 되는데, 그 부르짖음은 다름 아닌 십자가 상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고통에 대한 예언인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 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음으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

죄가 전혀 없으시고 한번도 죄를 범해 본 적이 없으신 구세주께서 나의 죄가 나의 머리털 보다 많다고 말씀하고 계신 사실을 보라. 다시 말해서 인류의 모든 죄악들이 십자가 위에 달려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한꺼번에 전가되어 내려 누르는 형편을 표현한 말씀인 것이다. 조금 전에 생각해 보았듯이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느끼는 죄책감과 같은 신체적인 반응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몸에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께서 인류들의 모든 죄를 지금 자신의 몸으로 짊어 지시고 있기 때문이다. 죄인이 느끼는 절망감, 자비가 섞이지 않은 심판의 두려움과 그 죄책감의 뼈아픔을 순결하신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갑자기 마음에 그리고 당신의 몸에 느끼기 시작하신 것이다.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당하심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것은 순교자의 부르짖음이 아니었다. 어느 순교자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죽어 가면서 그러한 외침을 한 적이 있었는가? 순교자들은 모두 다 기쁨과 소망 속에서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다는 사실에 기뻐 찬미하면서 화형대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가지 아니했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예수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그들이 받아야 할 죄의 결과를 대신 받아 주시는 대속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한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경험이 없이 늘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십자가에서 갑자기 하늘 아버지와 절연되는 느낌을 느끼신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그 인간과의 사이를 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 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를 지신 예수께서 통렬하게 부르짖으신 이유는 죄가 예수님을 깜깜한 지옥같은 절망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으로 잘 알려진 이사야서 53장에서 우리는 더욱 명백한 말씀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4절). 이 말씀에도 우리가 받을 죄의 값을 예수께서 대신, 실재적으로 경험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여 주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 죄를 지신 것은 그 죄의 고통을 대신 경험하여 주신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대신 책임지기 위하여 전가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또한 이사야서 53:12절 중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된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하여 죽어가는 인류들을 구원하여 내시기 위하여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러, 대신 완전히 죽어 없어져 버리더라도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기를 택하겠다는 이해 할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을 나타내어 준 것이다. 이 엄청난 사랑이 인류를 살게 하였다. 이것은 영원토록 연구와 경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 후서 5:21).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서 죄 그 자체가 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은 죄 그 자체가 되셔서 형벌을 대신 받아 주신 사실을 그렇게 강조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그러한 사실을 느끼셨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죄를 대신 몸에 지시는 경험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탄원하시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말하는 것이었다. 주께서는 하나님과 아니 하늘 그 자체와 영원히 분리되어 죽어 버릴 가능성을 내다 보셨기 때문이었다. 그 고뇌의 아픔을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죄의 고통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실 때를 기억해 보자. 예수께서는 신음하시다가 서서히 서서히 돌아가시지 아니하셨다. 십자가의 양편 강도들은 금요일 저녁까지 아직 죽지 아니했기 때문에 속히 죽게 하기 위하여 다리를 꺾었지마는 예수께서는 벌써 운명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성경은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갑자기 파열되어 돌아가신 증거이다. 로마 군인이 죽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흘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심장이 작동하기를 멈추고 파열되었기 때문에 혈구와 혈청이 나뉘어져서 물과 피가 따로 흘러 내린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인류의 죄를 지시면서 그 괴로움과 죄의 의식을 더 이상 견디실 수가 없으셔서 예수님의 심장은 그만 터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못박힘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죄가 찌르는 아픔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죄악들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그래서 시편 40편 12절은 예수의 고통의 장면을 그린 예언에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영어로는 “Therefore my heart failed me”(그러므로 내 심장이 멈추었나이다-필자 번역)라고 번역하고 있어 예수께서 죄의 무게 때문에 심장이 멈추어 버린 표현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일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엄청난 의미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자기 개인의 마음 속으로 믿고, 정말로 감사하며 눈물겹게 받아들이는 자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나의 죄를 주께서 실재로 대신 져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죄에서 자유를 얻고 그 정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아 심판 당하시는 것으로 느끼셨다. 그것은 쇼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영혼은 떨리고 있었다. 바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을 위하여 죄를 대신 져 주시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그대를 포기하고 아름답고 고통이 없는 하늘로 다시 올라가 버려야 할지를 선택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의 곁에서 그를 몹시 괴롭혔다. 감사치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인류들을 보여 주면서 예수님의 희생이 헛된 일이 될 것이요, 이제 이 대속의 죽음은 그를 영원히 멸망 당하게 만들 것이라는 절망적인 말들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택을 하셔야 하였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율법을 만드신 그분만이 인류를 대속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한 구속의 죽음을 영원한 것으로 느끼신 것이다. 다시는 무덤 속에서 나와 부활하지 못할 것처럼 느끼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도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하는 깜깜한 영혼의 그늘 아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고민하고 계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생명과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자신의 영생과의 사이의 선택에서 촛불처럼 떨고 계셨다. 드디어 예수께서 믿음으로 승리하셨다. 그는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의탁하나이다!”라고 소리치시며 고개를 떨구셨다. 선택은 이루어졌다. 주님의 너무나도 큰 사랑이 바로 그대를 포기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차라리 당신이 죽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를 구하여 내시겠다고 결정하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인류가 범죄하였을 때부터 결정해 놓으신 사실이다. 그러한 주님을 하늘 아버지께서는 삼일만에 부활해 내시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아들을 영원한 구세주가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과연 누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 할 수가 있을까?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모든 풀들을 붓으로 만들어 기록하려 해도 그 사랑 다 기록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믿고 가슴 깊이 받아들여 감격해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 그 훨씬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려 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32). 십자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서 이번 호의 십자가에 관한 모든 기사들을 계속 읽으시기를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