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무엇이 진짜 방언인가?

무엇이 진짜 방언인가?


1800년도에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온 노예들이 기독교회 교인이 되도록 강요 당하면서, 그러한 교인들이 예배 도중에 이상한 소리들을 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출발한 방언 운동이 이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기독교회의 교파들이 예배시에 방언을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회에 참석하는 분들이 내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여 오는 일들은 꽤 흔한 경험이다. “목사님! 방언을 해야만 성령을 받은 증거 입니까?”, “어떻게 해야 방언을 유창하게 할 수 있나요?”,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이 성경적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방언인가요?”.

방언이란 문자 그대로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기 위하여 말하는 체계적인 언어말이다. 요한 계시록 14:6 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 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여기에서 방언이란 외국어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서 12:10 의 말씀 중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여기에서도 방언이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어를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요즈음에는, 방언이란 개인이 하나님께만 말하는, 이상한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

성경에 원래 말씀된 방언의 은사의 내용과 그 종류가 심각하게 오해되어 버리고 만 것 같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신약 시대의 첫 방언의 경험인 오순절의 방언도 외국 각 나라들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이민간 유대인들)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게 나타난 성령의 은사가 바로 방언의 은사였던 사실을 우리는 간단한 성경 연구로 알 수가 있다. 외국에 살다가 우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 온 사람들이 별로 배움이 없었던 제자들의 설교를 자기들의 방언(외국어)으로 알아 듣게 되자 다 놀라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떨게 해서 이 성경의 방언이 현대에 와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들을 발하는 것으로 둔갑을 하게 되었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방언을 해 왔었다는 한 자매가, 하루는 자기의 방언의 경험이 성령의 가장 큰 증거인 성품의 변화에는 어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태를 주거나 짜릿한 고조의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실재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에는 속수 무책이었고, 오히려 느낌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교인들은 옆에서 남들이 방언을 하면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만들어 내어 지껄여 왔다는 간증들은 그저 웃고 지나가야 할 일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곧 오실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교인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진리들을 성경을 가지고 시험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고 할지라도 단연코 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믿음이다. 만일 오늘날 흔히 하고 있는 방언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과 맞지 않는 경험이라면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경험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경험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영에게서 오는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 주제의 신앙 기사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혼돈되어 있는 이 방언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발견케 되실 것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 갈 때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진리도 인도해 주시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되실 것이라고 분명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