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재림을 위한 준비를 방해하는 것들

재림을 위한 우리의 준비


예수님의 재림이 아무리 최대의 감동적인 순간일지라도 만일 우리 자신이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날은 우리에게 환희의 순간이 아니라 최대의 슬픔과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쁨과 감동적인 재림의 순간을 맞이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깨어 있으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2~43).
깨어 있어 기도하고, 마지막 징조가 가까운 것을 살피라는 이 말씀의 뜻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표면적인 뜻보다 더 영적인 의미에서의 뜻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에 임할 여러가지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마지막 징조들을 보면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아 깨어있으라고 권고 하셨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경우들을 보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려고 하는 때였으므로, 준비하고 자신을 살피라고 그렇게 경고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 때가 있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막 14:38). 이 말씀을 하셨던 때는 십자가의 고난을 바로 앞둔 시기로써,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영적인 혼수상태에 빠져들므로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때, 곧 십자가의 고난의 때에 그들이 놀라서 영적으로 실패하지 않도록 준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시며 매우 중요한 시기에 깨어 있지 못하고 잠자는 제자들을 향하여 안타깝게 호소하셨다.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제자들이 깨어 있어 기도했다면, 온 우주를 감동시킨 구속의 경륜의 위대한 계획이 성취되는 그 놀라운 십자가의 고난의 사건에 그들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들므로, 만약에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했더라면 깨달았었을 구원의 비밀의 오묘를 놓쳤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그들의 선생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위해 잡히셨을 때 믿음과 용기의 부족으로 도망하므로 예수님의 마음에 큰 고통과 실망을 더 해드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신의를 져버리므로 세상에 비웃음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세상의 마지막 징조들과 함께 경고하신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1. 깨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

깨어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깨어 있어 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며, 죄를 이기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므로, 성령의 필요와 예수님의 임재를 늘 간구하고 갈급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에 대한 응답으로 능력과 은혜를 받아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마지막 시대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인 우리들에게 권고하시기를, 요한 계시록 3장 17절 18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시며, 스스로 부자인줄 알지만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헐벗은 상태인지를 보라고 하셨다. 만일 십자가 이전의 베드로가 자신을 진정으로 살피고 아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의 권고를 듣고 섭섭해 하거나 자만에 빠지는 대신, 자신을 깊히 살피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고 말씀하셨다.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변화함을 입을 수 있다. 보는 것은 변화함을 얻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 그대로를 보는 사람만이 고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그분의 앞에 내어 놓게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세상과 자신과 죄를 이기기 위한 무한한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된다. 아무리 스스로 영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또는 스스로 자신이 진리에 대하여, 신앙생활이나 성경지식에 있어서 뛰어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스스로의 모습을 진정으로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요, 영적으로 눈멀고 곤고한 상태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재림을 맞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영적으로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갖춰야 할 첫번째 계단인 것이다.

2. 성령이 필요함

그런데, 깨어있기 위해서는, 곧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안약과 식별력이 필요하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우리가 “깨어남”을 경험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볼 줄 모르게 되고, 또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깨어있음”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알지 못하게 되어 생애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여 거듭남의 경험을 하는 데에도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고, 또 깨어 있어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여 죄를 이기는 성화의 삶을 지속하는 데에도 성령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마음 문 밖에 세워놓고 모셔 들이지 않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곤고한 상태에 대하여 권고하시며 “성령의 안약을 사서 보라”고 하신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 마음 안에 모셔 들여 함께 살고 먹고 마시는 동행의 삶,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살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비밀을 이루는데, 그 비밀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골 1:27, 골 2:2)이시다. 이렇게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미워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뿐 아니라,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함께 살므로 어떤 여건에서도 감사하고 행복한 진정한 믿음의 생애를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비밀을 마음 속에 이룬 사람은 벌써 재림을 맞을 준비가 마음 속에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는 사람이, 졸지 않고 깨어서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재림준비를 방해하는 요인

예수께서는 깨어 있어 당신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라고 하시며 덧붙여 깨어있음을 방해하는 위험요소에 대하여 경고하여 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이 성경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라고 하셨다. 이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 방탕함

예수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의 세상의 형편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 노아의 때의 형편은 어떠하였는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홍수 이전 세상의 주민들은 여호와를 떠나고 그분의 거룩한 뜻을 행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상상과 악한 생각을 따라 행하였다. 그들이 멸망당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는데, 오늘날 세상도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방탕함의 죄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의 노름, 경마, 도박, 방탕, 음란한 행위, 억제할 수 없는 정욕들은 이 세상을 신속하게 난폭한 행위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재림의 징조를 말씀하신 다음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주의하라 깨어 있어 기도하라”(영문 성경 참조)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상의 쾌락과 방탕함에 이끌려 마음이 미혹하는 힘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견해를 비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행동과 말로써 또는 마음속으로 주의 오심이 지체되리라고 선언한다. 그는 주께서 빨리 오시리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의 영향으로 사람들을 외람되게 하고 부주의하게 하며 지체하도록 한다. 그들은 세속적인 무감각 속에 굳어져 있다. 세상 정욕과 부패된 사상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악한 종은 주객과 같이 먹고 마시며 향락을 추구하는 일에 세상과 연합하고 있다.
세상은 지금 방탕함과 불경건한 향락으로 가득차 깊이 잠들어 있으며 육적인 안전에 마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의 오심이 먼 훗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경고를 비웃으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고 거만하게 자랑한다(벧후 3:4; 사 56:12). 그런 사람들은 향락을 사랑하는데 더 깊이 빠져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계 16:15)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조롱하면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고 묻는 바로 그 때에 징조는 성취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평화와 안전”을 부르짖을 때에 홀연히 멸망이 이른다. 그러므로 방탕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2. 술 취함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히리라”(계 3:3). 성경을 보면 “술취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 17장 2절에 나온다. 그 구절을 읽어보면, 땅의 임금들이 음행의 포도주로 취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사람들이 바벨론인 교황권의 “오류”의 포도주, 즉 잘못된 가르침에 취해 있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온 거짓된 가르침의 오류에 많은 교인들이 취해 있다. 즉,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설, “어떤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우리의 행위에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조건 구원을 얻는다는 신신학 등등, 이 음녀의 포도주에 온 세상 사람들이 취해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깨어 성경과 진리의 토대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채, 교사들이나, 잘 모르는 목사들이 가르치는 가르침이나 설교에 자신의 영혼의 구원 문제를 맡겨 버린다. 그 결과 그들은 함께 포도주에 취해 자신이 안전한 것으로 착각하여 깊은 잠에 빠진다. 진리를 모르는 거짓 교사들은 “평화와 안전”을 말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이전의 제사장들과 교사들처럼 그들은 교회가 세속적 번영과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를 이 일의 전조인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영감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리”(살전 5:3)라.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날은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주의 날은 그들에게 노리는 도둑처럼 올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를 알아 오류에 빠지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곧 술취하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성경에 보면 오류에 취한 거짓 교사들은 그의 동료 종들을 때리며 저희 주님께 충성스러운 자들을 비난하며 정죄한다. 곧 재림이 가까웠다고 전하는 동료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세상과 섞인다. 범죄에 있어서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끼리 모인다. 이것은 무서운 융합이다. 사람들이 취하여 세상과 같이 함정에 빠져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술취함에 빠지지 않고 바른 진리 안에 굳게 서 있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3. 생활의 염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심령을 위태롭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신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마가는 그것들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욕심과 다른 모든 물욕이라고 말했고, 누가는 이 세상의 염려와 부와 쾌락을 열거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영적 씨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곧, “생활의 염려”이다.

“생활의 염려”.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막론하고 세상의 염려로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역(苦役)과 빈곤과 궁핍의 염려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또 무거운 짐이 되며, 부자에게는 재물을 잃어버릴 염려와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의 꽃에서 배우라고 그분께서 당부하신 공과를 잊어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보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맡기지 아니하므로 그분은 저희의 짐을 지실 수 없다. 그리하여 생활의 염려가 그들로 그리스도께 가서 도움과 위안을 얻도록 하는 대신에 그것들이 오히려 그들로 그분에게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의 모든 정력을 그들의 사업에 바치게 되어 자연히 영적 사물을 등한히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 너무나 열중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성경을 연구할 시간도 없고 하나님을 찾아 섬길 시간도 없다. 그리하여 때때로 그들의 심령이 성결하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삼아진다.

또한 이것들과는 전혀 같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과오에 빠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지만 저희의 임무가 너무 무겁고, 책임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분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떠남으로 인해 저희의 생애에 그분의 은혜가 결핍되어, 자기 자신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남보다 높고자 하는 욕망과 제어되지 못한 거칠은 성벽으로 인하여 더럽혀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실패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이며, 사업의 결과가 미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리의 유혹”. 재물에 대한 사랑에는 사람을 호리고 기만시키는 힘이 있다. 흔히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저희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저희의 재물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대신에 저희 자신을 높이게 한다. 그리하여 더 잘 살고 풍족하게 모으려는 욕망에 빠진 채 주의 날이 가까워 옴을 모르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게 된다. 진리를 경멸하고 거절하는 자가 뻔뻔스럽게 될 때에, 여러 가지 영리적 사업에 있어서 원칙을 무시하고 일과를 수행할 때에, 학생이 그의 성경은 연구하지 않고 각 방면의 지식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도적과 같이 임하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흥분 상태에 있다. 때의 징조는 불길하다. 다가오는 사건들은 그 앞에 그늘을 드리운다. 하나님의 성령은 세상에서 떠나고 있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태풍, 지진, 화재, 훙수 그리고 온갖 부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누가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어느 곳에 안전이 있는가? 인생에게나 이 세상에 있어서 아무 곳에도 안전의 보증은 없다. 위기는 서서히 우리에게 덮쳐 오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비취며 여전히 궤도를 따라 돌며 하늘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다. 상인들은 여전히 사고 팔고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 밀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전히 극장과 경마장과 도박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고조의 흥분이 편만해 있는 반면 은혜의 시간은 속히 마쳐지려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려고 한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안다. 사단은 은혜의 때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현혹시키고, 마음을 사로잡아 도취시키려고 그의 온 힘을 기울여 일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리 주의 경고의 말씀이 감람산으로부터 수세기를 통하여 엄숙하게 우리에게 전하여 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재림을 위해 깨어 기도하며 자신을 살피자!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최대의 감동의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