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구원과 멸망 어느 것이 더 쉬운가?

구원과 멸망, 어느 것이 더 쉬울까?


“다이너마이트” 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두나미스”에서 유래된 말로서, 그 원어의 의미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라는 단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묘사하기 위하여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식어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여러분은 성경이 그토록 자주 말하는 복음의 폭발적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놀라운 능력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그러한가? 불행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타협적이다. 힘찬 능력 대신에 실망과 패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복음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믿지 않고 있는 것인가? 왜 그들의 생애 속에 그토록 능력(Dynamite, 다이너마이트)이 결핍되어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공언하는 바를 진실로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거짓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서 능력을 잃어버렸음이 틀림없다. 오늘날 기독계 안에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데에서 기인한다. 슬프게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들이 받는 것이 무엇이며, 그 복음이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복음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넘어지게 되며,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은혜의 잔치상에 펼쳐져 있는 성찬을 즐기는 대신에, 상밑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으고 있는데, 그것으로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영위하기 어렵다.

구원과 멸망, 어느 것이 더 쉬운가? 이제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 누구의 능력이 큰가?

하나님과 그분의 복음 안에 담겨져 있는 놀라운 “능력”(다이너마이트)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겁장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오늘날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특권에 대하여 잊어버리도록 그들을 유도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그 악한 자의 가면을 벗겨서, 그가 주장하는 거짓을 폭로시킬 필요가 있다. 사단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마음대로 해할 수 있다는 사상을 교회 안에 주입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으며, 성도들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곳과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는 항상 사단이 꼼짝 못하고 벌벌 떨면서 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사단의 능력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영광스러운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항상 확신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물론, 사단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단이 죄인들의 생활 속에 역사해서, 그들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영향력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인 속에서 사단을 다시 쫓아내시고, 영혼을 다스리실 때에는, 선의 능력이 악의 능력을 지배하게 되다. 사단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진리이라면, 죄의 세력보다 은혜의 능력이 훨씬 더 크지 않겠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은 우주에 있는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근거로해서 생각해 볼 때, 멸망당하는 것보다 구원받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사실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희생과 자아부정의 힘든 길이라고 생각하다. “그것은 쉬운 길이 아니라네”라는 옛 찬미의 가사는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하여, 내적, 외적 원수와 싸워야 되는 그리스도인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을 살펴 보아야 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것이 쉽다고 선언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따르는 여러가지 제약이 가져오는 무거운 짐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전혀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짐이 쉽고 가벼울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예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핍박하던 사울을 만나셨을 때, 그에게“가시채를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범죄자의 길은 양심의 가책으로 힘겹지만, 순종하는 자의 길에는 마음의 평화와 안전과 확신이 있다.

2. 죄가 왕노릇하는 것처럼, 은혜도 왕노릇을 한다!

우리는, 사단이 자신의 능력을 거짓으로 과장함으로써, 우리를 세뇌하려고 하는 기만을 막아야 한다. 죄의 지배 하에서는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행하기가 쉽지만, 은혜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죄를 범하는 것보다 의를 행하기가 훨씬 더 쉽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속한 특권을 주장하지 못하는가? 성경의 저자들은 제한된 사단의 권위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울은 기록하기를,“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0~21.

“죄가 ... 왕노릇 한 것 같이”라는 표현을 살펴보도록 하자. 어떻게 죄가 왕 노릇을 하는가? 죄가 다스리는 권세가 왕같이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모태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육제적 본성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무산시킨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은혜가 죄보다“더욱 넘쳤”다는 사실과“죄가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왕 노릇”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분명히 은혜도, 죄의 모든 세력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능력(Power) 임에 틀림없다.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보증이다! 마귀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굴복된 생활 속에 역사하는 복음의 폭발적인 능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수를 섬기는 것과 사단을 섬기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어려운가? 우리는, 악한 능력보다는 선한 능력에 접근하기를 더 원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사단은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데요”라고. 그러면 나는 그러한 말에 대해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뭐라고요? 사단은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도망하는데요?” 물론 사단은 여러분이 멸망당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은 더 강한 자(하나님)의 편에 섬으로서 매 순간마다 승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사단보다 위대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 11:21,22.

여기서 강한 자는 물론 사단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 왔던 사람(솔로몬)보다 강하며, 가장 강했던 사람(삼손)보다 강하며, 가장 완전했던 사람(아담)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보다는 강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께서는“그를 이기시고”그의 손에서 포로된 자를 구해내시는“더 강한자”이시다. 이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사실인가?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께 우리를 대적하는 자보다 더 강하시다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사는 그리스도인마다 구원받기가 멸망받기 보다 더 쉽다.

3.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은 쉬운 것인가?

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인가? 이 질문의 뜻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거듭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나 진실한 그리스도인 생애를 사는 것이 쉽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의 타고난 이기적 본성과 노력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애쓰는 것처럼 세상에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순종의 길이 즐겁고 기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요한은 사랑의 대 원칙을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일 경우에는 힘든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시편의 기자도 요한의 말에 동의하였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진실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두가지는, 첫째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며, 자신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며 그분을 결코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원받는 것은 멸망당하는 것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