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어떤 목사의 고백

어떤 목사의 고백


“나는 모태에서부터 교인이 되었습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계셨던 나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 속에 아름답고 순결한 신앙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언제나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어머니의 정성으로 인하여 나는 진실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100% 확신하며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대한 충성이 순종으로 표현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하고 있는 죄와 세속을 거절하는 승리의 생애를 살아가는 좁은 길을 걷게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불타고 있던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사랑은 나로 하여금 전혀 망설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신학대학에 등록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나는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결과 수십년 동안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보다도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운 열심을 가지고 신학과의 모든 강의 시간에 참석하였는데,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서부터 나는 교수님들이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신학대학원과 박사코스에서 학위를 받는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예리한 논리와 이론을 배우지만, 그들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순결한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서서히 신앙을 잃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온 신학계를 범람하고 있는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세속에 물들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서 그들의 어깨에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라는 학문적 명예가 둘리워졌을 때에는 그들의 마음 속에 더이상 하나님의 사업과 진리에 대한 희생적 헌신이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채 경건의 높은 모양만을 가지고 신학대학의 강단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오랜 교수 경험을 거치면서 그들의 논리는 숫돌에 간 칼날처럼 예리해지기 때문에 그들의 강의를 듣는 ‘어린 양들은 교묘한 설득력과 노련한 경험 앞에 쉽사리 굴복하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순결한 신앙을 합리주의와 학문적 논리로 바꾸어 가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양’들’은 자신들의 학점에 대하여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의 말을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입니다. 교수 중에 어떤 분들은 성경이 100% 영감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진리라는 사실에 대해서 오히려 의심과 회의를 갖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곤 합니다. 소위 ‘분석 이나 비판’이라는 학문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분명한 답변을 제공하지 않은채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의문점을 제시하는 강의는 학생들의 마음을 깊은 회의와 의심의 미로 가운데로 이끌어가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걸어야할 순종과, 죄에 대한 승리의 생애를 강조하여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 경험을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성경에 기록된 어떤 부분들은 과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며, 그들도 자신들의 스승들처럼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합리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더이상 100% 영감의 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희생, 순종, 극기’라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어색한 단어가 되고 맙니다.
                    

첫번째 딜레마

“그러나 나는 그러한 혼돈의 와중에서도 기만당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교수님들의 왜곡된 신앙을 정확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신학교에 숨어 있는 이러한 위험을 간파한 이후부터, 나는 교수님들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거나 자유주의적인 가르침을 강의하면, 조심스럽고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지적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첫번째 시도는 교수님에 의해서 젊잖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교수님은 자신의 가르치고 있는 높은 학문에 계속적인 도전을 받게되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함께 강의를 듣고 있던 다수의 학생들도 교수님의 그러한 태도에 동의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가 교수님처럼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수업 시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교수님은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지혜로운 권면’을 하였습니다. ‘학생, 나는 그대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네. 그러나 그대는 일하러 나가기 전에 경험과 학식의 폭이 넓은 사람에게 배우기 위해서 대학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돼!’ 나는 교수님께 나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애썼지만, 교수님은 노련하지 못한 나를 여유있게 제압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고, 내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충성심을 넣어주셨던 어머니는 신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하여, 교수님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가지 실례를 들면서 성경의 100% 영감성을 은근히 부인하며, 죄에 대한 승리의 불가능함을 은근히 조장하는 논리를 조심스럽게 펼쳤습니다 .

“다음 강의 시간부터 나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때로 교수님의 강의가 크게 의심스러울지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침묵을 지켰습니다. 나는 학급의 친구들에게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들은 교수님의 강의를 여과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학기말 시험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시험지에 진리에 대한 원칙들을 기술하였으나, 교수님은 나에게 형편없는 점수를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위기와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목회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개인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포부의 성취여부가 교수님의 손에 크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나는 한가지 중요한 현실을 보게 되었는데, 교수들은 가르치고 점수를 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에 목사로서의 길을 열어주는 면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 어떤 도전이나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목사직을 얻게 되면, 순결하고 인간의 논리에 오염되지 않은 진리를 강력하게 설교해야지’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두번째 딜레마

“나는 무난히 졸업을 하게 되었고 어떤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봉사하도록 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서 내가 봉사하고 있던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세속과 자유주의 신앙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주어지는 설교 시간에 신자들에게 죄를 포기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하여 죄와 세속에 대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강력한 설교를 했으며, 이러한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준비되어 있다는 메세지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러한 설교와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했으며, 담임 목사님에 의해서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어리석은 양’들 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내 설교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하루는 담임 목사님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당신은 매우 유망한 장래를 가지고 있오. 그러나 매우 지혜롭고 조심스럽게 설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의 설교는 교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몇몇 교인들이 내게 와서 당신의 설교가 너무 강하고 사랑이 부족하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분들은 당신의 설교가 교회의 평안과 안정을 깰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높이고 영혼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교회를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해야 된다는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었습니다.

“나는 또 다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다시 결심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내가 한 교회를 맡게 되면,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껏 외치리라!’ 라고. 다음 설교 시간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이 설교 내용을 부드럽고 듣기 좋게 다듬어야만 했으며, 나중에 내 자신이 직접 교회를 맡게 될 때까지 곧바른 진리의 선포를 미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세번째 딜레마

“마침내 기다리는 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정식 목사로서 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를 마음껏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도 하나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악하고 거센 양”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몇몇 영향력 있는 집사들과 장로들을 찾아다니면서, 목사의 설교가 너무 강해서 교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불만과 염려를 토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자들과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는 세속적인 자들이 불만 세력에 동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으며, 나이 많으신 보수적인 장로님들도 걱정을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중의 몇 분이 하루는 목회실로 나를 찾아와서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가 매우 성경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분간 교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목사님의 설교 주제를 정하시는 일에 있어서 조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점잖게 권면해 주었습니다.

“그 즈음에 나는 좋은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또 하나의 짐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였지만, 남편인 나의 장래를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안정적인 목회 생활에 방해가 되는 설교는 제발하지 마세요. 좀더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내용으로 설교하세요. 교인들의 죄와 세속을 지적하는 설교는 그들의 마음을 오히려 완악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두가지를 보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 손에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충성과 영혼들이 구원에 대한 깊은 염려가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장미빛 목회 생활과 안정된 가정 생활에 대한 미련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나의 정직한 양심에 ‘좁은 길을 걸으라’라고 속삭이시는 성령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고, 다른 한 쪽에서는 ‘너도 다른 목사들처럼 하면 돼! 왜 너만 유별나고 특별한 설교를 해서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리려고 하니? 조금만 지혜롭게 처신하면 너도 큰 교회의 인기있는 목사가 될 수 있어!’라는 사단의 음성이 들려 왔다. 결국 내가 목회를 중단하게 되면 나에게 맡겨져 있는 이 사랑하는 영혼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결국, 목회를 중단하게 되면 이들에 대한 영적인 영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으므로 좀더 지헤롭게 처신해야겠다고 생각함으로써 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에 이르렀다.
                                    

타협의 길

“나는 잠시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향력 있는 장로님들이 나의 기별에 동의하고, 아내가 나의 부담을 이해하고, 교인들이 나의 설교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진리를 곧바로 설교하는 일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설교를 할 때마다 여러번 진리를 타협하게 되었으며, 양심 속에서 부르짖는 죄책감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타협의 과정 속에서 내 마음 속에 있던 진리에 대한 사랑과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겠다는 순결한 포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목사들처럼 나 역시 ‘성공적인 목회는 교인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데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나역시 그들처럼 정치적인 목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하나님의 진실한 종으로부터 사단의 효과적인 종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진리를 타협하는 목회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점점 인기와 평판을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돈과 명예를 은근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교인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보다 두려워 하게 되었고,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을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고용된 삯꾼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담임하고 있던 교회 속에 유행과 세속과 이기심과 탐욕이 넘실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만 설교하였고, 죄와 세속을 지적하거나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서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교인들이 세속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될 것이야’라고 막연하게 기대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고 기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다른 목사들이 부러워하는 대형 교회의 목사로 부름을 받게 되었고, 내 아래에 젊은 전도사들을 몇명 거느리는 ‘사장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전도사가 가끔씩 나의 목회 지침과 설교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도전할 때마다, 과거에 내가 들었었던 ‘노련하고 지혜있는 말’로 충고 해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이렇게 큰 교회를 맡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 중의 어떤 전도사는 석연찮은 얼굴을 하면서 나의 충고를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도전하였지만, 나는 약간 분노가 섞인 음성으로 노련하게 그들이 도전을 잠재웠습니다. 그러한 전도사를 볼 때마다, 나는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나의 ‘단순함과 미숙함”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회한의 눈물

“무엇보다도 슬픈 사실은, 이러한 모습을 내 자신에게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많은 내 동료 목사들에게서도 이러한 형편을 종종 보았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죄를 합리화 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나는 설교를 곧바르게 하지 않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적 어두움에 갖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수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목회를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분의 요구에 위배되는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첫번째 초림하시는 길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침례 요한이 일어나서 곧바른 기별을 백성들에게 전하였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 예수께서 두번째 재림하실 때에도 그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예리하고 곧바른 기별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곧바른 설교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장로들과 집사들의 압력이 두려워서 설교 내용을 듣기 좋고 반대를 받지 않을만한 내용으로 다듬었던 것입니다.

“이제 은퇴를 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얼마남지 않은 나의 인생길을 덮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양심의 가책과 고뇌로 인하여 내 영혼에는 쉼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의 목회를 통하여 죽어간 양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절망과 죄책감으로 고통당합니다. 젊은 시절에 있었던 나의 굴복과 타협에 대한 깊은 회한이 나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당신의 목회는 성공적입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포기했었던 나의 결정에 대한 후회가 나의 얼굴에 깊은 근심의 줄을 긋고 있습니다. 처음에 나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나는 사단의 덫에 걸려서 그가 주문하는대로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치욕적 과거를 되돌아 볼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다시 목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 이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지만,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만일 나에게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는 젊음이 주어진다면, 하늘로부터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와서 하는 것과 같은 설교를 할텐데 라는 후회가 내 영혼을 엄습합니다. 교인들의 마음에 전율을 일으키는 진리를 전하며,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 앞에 온전히 굴복시키는 기별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내 마음을 전율시키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성결과 거룩함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후배 목사들이시여, 마지막 시대에 부르심을 받은 목사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깊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온 생애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는 헌신이 선제되어야만 합니다. 먼저, 자신의 생애와 가정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직한 양심과 순결한 진리를 가지고 영혼들을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목사들만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가장 높으신 부르심에 올바로 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목사들만이 ‘내가 다시 목사가 될 수 있다면....’ 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