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독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레의 호소

기독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레의 호소


거룩함과 율법주의

이 기사는 감리 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의 글이다. 그는 자신의 형제 챨스 웨슬레와 함께 18세기 영국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 글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거룩함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현대 기독교회 안에서 크게 곡해되고 있는 거룩함에 대한 문제를 올바로 조명하고, 잘못된 오해들을 바로 잡는데 이 기사가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실기로 하였다. 구원은 하늘의 생명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서론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오직 거룩한 자들만이 영광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하늘 아래 어떤 것도 이것보다 분명한 진리는 없다. “비록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애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없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며 살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지옥불의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 있는 왕국을 보지 못한다. 하늘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을 왕처럼 완전히 주관하시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만이 그리스도께서 생애하셨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과거의 오해

거룩함, 그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진리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나 곡해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이나 로마제국의 이교도들일까지도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신은 오직 덕성과 거룩한 마음, 그리고 정직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철학과 이방 종교에 포함되어 있다. 비록 기독 교회가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중요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심하게 왜곡되거나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 천주교회의 사람들도 거룩함과 경건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은 내적 경건함 보다는 종교적 의식과 예식과 같은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여기는 위험에 빠져 있다.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하는 가르침 때문에 로마천주교회가 종교적,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던 중세기 종교암흑시대의 사람들은 선과 덕을 쌓으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십자군으로 징병되어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선을 쌓으면, 내세에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교리에 빠지게 되었다. 외적 경건과 인간적 공로와 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고행이나 험한 순례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오해

거룩함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로마 천주교회는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함으로써 참된 거룩함에 오해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그러한 엉뚱한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기독교회가 그러한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거룩함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신학적 길을 열어 놓았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고해 성사, 성지 순례, 죽은 성자와 천사들에게 드리는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사제들에 의한 죄의 용서와 같은 교리들은 진리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종교인들의 풍습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교리들이다.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비록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예식과 의식들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도들은 구교를 믿는 사람들과 좀 나은 것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개신교인들은, 천주교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의식과 예식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면에 있어서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무리 열성적으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으로 확증할 수 없는 잘못된 교리나 의식에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렇다면, 개신교인들은 구원과 거룩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은 나쁜 짓을 않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주일마다 교회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체험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천주교인들이 의식와 예식에 의존하여 내적 거룩함이 없이 구원을 바라 보는 것처럼, 개신교인들도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주장하면서 내적 거룩함이 없이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이와 같은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이러한 이해보다 더 나아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주교인들보다 구원에 대한 진보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록 자신이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실 생활에 있어서 악을 저항하고, 모든 시험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지 않는 한, 결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신앙은 피상적인 신앙이며,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마음 속에 있으며,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마음 속에 건설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해 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사단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개신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믿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가? 에베소서 2장 8절에 있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은혜와 믿음을 통한 구원론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개신교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유다서 1:8).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구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다;

거짓말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분 안에 너무나 풍성한 의와 거룩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어떤 의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필요로 하거나, 그것을 소원하거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갖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만일 이와 다른 것을 설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율법주의자임에 틀림없으며,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자입니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거룩함의 가르침을 그 뿌리부터 흔드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그분을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고 계신다(슥 13:6).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기 위함이었는데(요일 3:8),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십자가의 목적과 의미를 송두리채 왜곡시키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이 어떤 교단, 어떤 교회에서 가르쳐지던지 간에 이 가르침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진리를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게 되며, 성서적 구원론을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바꾸어 놓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생활을 살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의가 자신의 구원을 이미 보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인류 전체에게 주신 구원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의에 대한 잘못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과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모든 종류의 투쟁도 율법주의로 돌리게 된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십계명에 순종하기를 두려워 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순종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하기를 두려워한다. 성경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디도서 2:14), 진리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노력을 율법주의로 오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단의 거짓과 바울의 진리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이 고안해낸 기가막인 교리는 다음과 같다;

거짓말 2: “인간은 단 한줌의 거룩함이 자신 안에 없는 상태에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믿음을 통하여 거룩함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는 실제적인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아도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대들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비록 그대의 마음 속에 질투, 시기, 돈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 경쟁하는 정신, 정욕과 같은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족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대들이 의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을 좋아하기를 언제까지 하겠느냐?” 잠언 12:22. 사단의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9. 사랑이 마음 속에 있는 자는 사랑이 겉으로 나타나게 되며, 의와 거룩함이 그 속에 있는 자는 그것이 또한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 3:1. 교회 안에 사단이 퍼트려 놓은 많은 거짓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속임을 당해서는 않된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높이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요한일서 3:7에 기록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라는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사단의 거짓말이다.

바울은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이 말씀에 이어서 바로 연결되는 바울의 말을 주목해 보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과거에는 악에 빠졌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마음과 생활이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우리는 의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바울은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의롭다 하심”(칭의)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고 의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분이시다. 속에는 더럽고 추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잠 17:15.
                

자유에 대한 오해

바울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바로 이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해방과 자유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폐지시킴으로써 얻는 자유(방종)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불순종이고 반역이다. 참된 자유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생명력이 창조되고, 또한 성령의 호소와 인도하심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 결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자유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실제적이며 구체적이어서 실제 생활에서 경험되는 자유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법을 무거운 멍에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요구하는 원칙과 십계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마음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명령)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바울은 인간을 얽매고 있는 진짜 멍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자는 종의 멍에, 즉 죄와 악의 멍에를 벗어버린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나는 분명하게 간증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여전히 죄를 고집하며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은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대가 붙잡혀 있는 죄로부터 그대를 구원해 주시지 못하고, 그대의 마음과 믿음을 정결하게 해주지도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대의 개인적인 구세주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이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유다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눅 22:48. 회개하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양쪽에 날이 선 검(말씀)에 의하여 그대의 심령이 쪼개어지지 않는다면, 그대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막고 있는 장본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은 자이고,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자이다. 사단이 교회 안에 교묘하게 퍼뜨려 놓은 거짓 교리,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하고 거룩한 의를 온 인류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그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서 거룩하게 변화된 마음과 생애를 소유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영광 중에 볼 수 있다”는 교리는 십자가 위에서 뿌려진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히 10:29). 깨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죄인들도 형벌을 받을진대, 하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죽으면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죄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고후 11:3. 의와 거룩함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설명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형제 자매들이시여, 진리로 돌아오라!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믿고 가르쳤던 그 복음으로 돌아오라! 그대를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
                 

행함에 대한 오해

죄와 악을 버리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하여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일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믿음도 헛된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약 2:20.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원수와 그대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과 그에 따른 행실이 없다면, 그대가 공언하는 믿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가 죄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6. 이러한 자들은 그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안다고 하니 그것으로 인하여 그 받을 형벌이 증가될 뿐이다. “누구든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함에 대한 교리와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딤전 6:3~5.

부디, 내적 거룩함과 외적 거룩함이 동시에 강조되는 가르침을 받아 들이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완전한 진리가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야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에서 높이 들려질 수 있다.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무분별하게 율법주의로 몰아부치지 말라. 죄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두려워 하되, 하나님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즐거워 하라! 성경의 표준과 원칙을 높이 들어 올리는 설교를 사랑하라!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살피게 하고,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설교를 피하지 말라! 그대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이끄는 설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빌 4:13).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그분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드리도록 하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를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14,21.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자!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모본을 따르며, 그분이 행하셨던 일들을 우리도 행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자!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신뢰하도록 하자. 그분께서 우리 마음과 생애 속에서 이미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끝마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따라가도록 하자. 자존심, 분노, 악한 소원과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정결하게 될 때까지 그분께 붙어 있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 속에서 끝마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리자.

그리스도를 단지 죄의 책에서 죄의 기록을 지우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회개의 심령을 가져다 주시며, 우리 안에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창조해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진짜 복음이며, 오류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복음이다. 이것은 새로 발견된 복음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복음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믿었고, 아브라함이 믿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고, 제자들과 사도들이 믿었던 복음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이며,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6~19
                

Q & A

문: 사단은 한때 하늘에서 천사였었나요?

답: 요한계시록 12:7-9에는 선과 악의 대쟁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선과 악의 대쟁투는 하늘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이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4:12-17에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절에는 사단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았던 사실이 나옵니다. 에스겔 28:12-19에는 사단이 두로왕으로 표상되어 나오는데, 여기에는 사단이 한때 완전한 아름다움과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 천사였으나, 나중에는 무서운 악의 시조로 변모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0:18에서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경절들로부터 우리는 사단이 한 때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천사였지만, 시기와 이기심을 품음으로써, 마귀가 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