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


1). 기간: A.D. 34~100년

사도교회 시대; 십자가 이후부터 마지막 사도가 죽을 때까지

2). 이름의 의미

“에베소”라는 이름은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름처럼 이 교회는 “사모할 만한, 흠모할 만한”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는 지역적으로도 정말 사모할 만한 좋은 위치에 있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였고 사도교회였다. 이 교회는 순결하고 뜨거웠던 교회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도들과 제자들이 생존해 있어서 그들로부터 가르침과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온갖 오류와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1. 최초의 교회를 구성했던 제자들
예수님과 삼 년 반 동안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이제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교사 중 가장 위대한 교사의 교육을 받았었다. 개인적인 교제와 감화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사업과 교회를 위한 일꾼들로 훈련하셨고, 날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걷고 대화하면서 미래의 교회를 돌보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는 세계의 교사가 되어야 하였으나 서로 매우 다른 품성을 드러내었다. 다양한 천성과 생활 습관을 가진 그들이 부름받은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는 감정과 사상과 행동을 예수님 안에서 일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연합을 이루시려고 목적하셨다. 하늘 아버지께 드린 그분의 기도 속에 그가 애쓰신 수고가 나타나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1, 23). 그분은 그들이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셨다.

2. 성령을 받은 제자들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워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에, 만일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나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의 삼 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주님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깊이 주를 사랑하는지를 보여 드리고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을 것인가! 그리고 불신의 말과 행동으로 항상 주님을 슬프시게 한 일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되게 뉘우쳤을 것인가! 제자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하게 되도록 그리고 매일의 교제에서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우 열렬히 기도하였다. 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 교제를 통하여 모두 친밀해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갔으며, 예수님의 분부대로 성령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불신을 자복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소수의 무리들은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을 받게 되었다.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은 그분과 그분이 위하여 죽으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였으므로 그들의 말과 기도를 듣는 사람들의 심령이 녹았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였으며 그 능력의 감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개심하고 회개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며, 이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에베소 교회의 구성원들이었다. 이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 에베소 교회 시대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3). 칭찬의 말씀

초대교회였던 에베소 교회는 복음 전파로 인해 핍박을 받게 되었다. 이 에베소 교회는 가장 심했던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로 일하는 교회였고, 또 성경 말씀에 기록된 진리에 충성스러운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진리로서 시험하였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계 2:2~3 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영지주의, Gnosticism)을 반대하였다.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률에 순종하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또한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육체의 방종이나 죄된 행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어떤 의미에서 니골라당은 현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가르침 즉,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에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가르침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선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다.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6절

4). 책망의 말씀

그러나 이렇게 순수하고 훌륭한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책망의 말씀이 있었다. 그 책망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주어진 책망과 같이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열심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들의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처음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받아들였을 때에 가졌던 순결한 사랑의 정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어갔던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고수하는 열성을 잃어 버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 바울이 말한 대로 그 당시 이미 불법의 비밀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5). 권면의 말씀

이 교회는 다음과 같은 훈계를 받고 있는데, 그것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옛날을 기억하고 돌이키라. 회개하고 돌아서라. 이것이 에베소 교회에게 주어진 권면이다.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찼던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행함은 사랑을 낳지 못한다. 사랑이 행함을 낳는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와 같다. 사랑이 식으면 열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이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6). 약속의 말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7절. 인간이 범죄한 이후, 사람은 생명의 나무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회개하고 죄를 승리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는 영원한 특권이 약속되어 있다.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그리스도인들만이 이기심과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으며,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가득차 있지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순결한 참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7절.

7).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에베소 교회에 주어진 예언은 그 당시의 교회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살펴 볼 때,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책망을 받을 만한 상태에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처음 주님을 받아들여 믿을 때와 똑같은 회개와 굴복과 그리고 사랑이 동기가 되어 행하는 순종이 나타나고 있는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종교 생활과 활동,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멸망의 원인이었으며 또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그 대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종교 활동의 동기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상실함과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울러 상실해 가고 있다.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이 행해지는 모든 종교 생활과 행위들 -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 또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 엄숙하고 화려한 예배, 열렬한 집회, 종교적 의식의 반복,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적인 활동 등 - 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들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들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없는 신앙 생활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아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성품과 생애의 완전한 변화가 그렇게도 드문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사 그리스도인이 과거에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했다할지라도, 그 하나님과의 첫사랑의 경험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잃어버리므로,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재하실 때 저절로 이루어지는 생애의 변화나 성품의 열매가 맺히는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자아가 완전히 포기될 때에만, 주님께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다. 새 가죽 부대에만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이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