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신령한 예배를 위한 준비-1

 영적 예배를 위한 준비 1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필요한 계단들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자.

1. 영혼의 눈으로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영적인 집중력

하나님께 가납되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복잡한 세상에서 은밀한 장소로 조용히 물러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곳이 당신의 침실이라도 좋다. 주위의 소음들이 당신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의 임재가 당신을 감싼다고 느낄 때까지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어라. 불쾌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것을 듣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내면에서 들리는 음성을 인식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그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라.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말라. 하나님께 당신을 드려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당신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가 되지 말라. 순간순간 마음속으로 기도하도록 스스로 훈련하라. 그러면 얼마 후 당신은 심지어 일을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겸손하고, 진실하고, 어린애처럼 정직해지도록 스스로 훈련하라. 마음이 산만한 상태 그대로 오래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라. 정처 없이 방황하는 수많은 생각을 집으로 불러들여라. 영혼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영적인 집중력을 기르도록 스스로 훈련하라.

성경을 혼자 묵상하는 기술을 연습하자. 성경을 펴서 책상 위에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그러면 성경말씀이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아버지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가르치소서” 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라.

영성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성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일에 매우 소홀하다. 만일 영적이고 경건한 일에 착념하거나 실천하는 일에 게으른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처럼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하는 어떤 전문 피아니스트가 있다면, 또 그처럼 나태한 야구 선수가 있다면, 그들은 음악계와 구단을 떠나야 할 것이다. 만일 거룩해지는 방법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평신도만큼 과학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과학적인 난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교회 신자들처럼 훈련이 안된 유약한 병사를 가진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적국의 공격에 곧바로 무릎을 꿇을 것이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수많은 일들을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홀로 있는 일’과 ‘침묵의 열매를 맺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 시끄럽고 분주한 하루 중 어렵게 마련한 ‘묵상의 시간’은 낭비되기 쉽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우리의 묵상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과 대화하면서 묵상의 시간을 전부 날려버릴 수도 있다. 자신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해질지는 몰라도 영적인 성장을 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을 늘 묵상해야 한다. 순수한 영성에 이르는 데 있어서 이것 말고 다른 지름길은 없다. 순순한 영성에 이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길을 가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까지 소홀하게 취급된 진리를 다시 찾아서 그것들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기도와 깊은 묵상이다. 우리가 기도와 깊은 묵상에 잠길 때, 마치 안개처럼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진 세상적인 생각에서 그 진리를 분리해내어 지속적으로 굳게 붙들 수 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눈길과 마주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이 온 천하를 두루 살피신다고 증거한다. 우리 영혼의 눈이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눈길이 우리의 눈길과 마주칠 때 바로 이 땅에서 천국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교회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 있든지 무릎을 꿇고 있든지 임종의 고통 가운데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꾸준히 수행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무엇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일들에 관여해야 할 상황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 안에서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한 교제가 진행된다. 그러다가 잠시라도 그들이 눈앞의 일에서 해방되면 그들은 곧바로 주의를 하나님께로 향한다.

성경말씀을 오래 묵상하면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을 향하게 될 것이며, 교회 출석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해줄 것이다. 봉사, 일 ,활동은 모두 선하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의 뿌리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내적 습관이다. 이런 내적 관조의 훈련을 거듭하면, 우리 ‘육신의 눈’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우리 ‘영혼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 우리에게는 ‘육신의 눈’이라는 시각체계 외에 ‘영혼의 눈’이라는 새로운 시각체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훈련하겠다는 의지의 헌신을 늘 견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습관이 거듭하다 보면 얼마 후에는 더 이상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영적인 반사작용’이 생겨나 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속에 들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반드시 하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현대의 종교는 시끄러운 소리, 지속적인 활동, 자기주장이 강한 목소리, 그리고 대형화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만든다는 해괴한 이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힘과 안전이 시끄러운 소리에 있지 않고, 고요함에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