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그대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수천 번 반복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1. 먼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하라

예배행위

예배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 중 첫 번째 요소가 “감탄(admiration)”이다. 예배하지 않고 감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감탄 없이 예배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감탄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대상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지 않는 대상을 예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배를 이루는 두 번째 요소는 “존경(honor)”이다. 예배의 세 번째 요소는 “매혹(fascination)”이다. 우리를 매혹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예배 대상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놀라움과 경의에 사로잡혀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하신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라고 외치게 된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매혹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예배를 향해 열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예배의 네 번째 요소는 “사랑(love)”이다. 사실 이것은 맨 처음에 언급되었어야 했던 요소이다. 어떤 대상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서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 무한히 커지면 결국 “숭모(adoration)”가 된다. 예배는 사랑하는 대상과의 연합을 추구한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숭모하는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적극적인 행위가 최고의 예배이다.

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한 하나님, 즉 천지를 지으신 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의 모든 속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무릎을 꿇고 그분을 숭모하며 예배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은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라고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영원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주권적이시며, 수많은 속성을 가지고 계시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땅히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45편에서 성육신의 하나님을 발견한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소유한 하나님이시요,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한 분이시요, “때가 차” 태어나신 그분은 어머니로부터 육신의 본질도 소유하신 분이시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빛을 발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지고 매력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인간,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서 다윗은 “아름다운”, “위엄 있는”, “왕다운”, “진실한”, “의로운”, “온유한”, “사랑이 많은”, “기뻐하는”, “향기로운” 등의 수식어를 사용한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엄한 표정의 제우스나 토르 같은 신이 아니다. 그분은 향기롭고 사랑이 많으시고 의롭고 친근한 하나님이시다. 동시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그분의 원수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신다. 바로 이분이 우리가 숭모하는 하나님이시다.

2. 온전한 예배

우리의 삶이 온전한 예배여야 한다

예배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우리의 전인격을 다 바쳐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되지 못한다. 신앙, 사랑, 순종, 충성, 고결한 행위와 삶,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번제로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만일 내 안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정성을 다해 최대한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존재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로 인하여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수천 번 반복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향기가 아닌 악취를 풍기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전부,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만일 매일의 삶이 계속 예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도 참된 예배가 되지 못한다. 교회에서 기쁨에 찬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한 후,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일상적인 생활이나 사업상의 문제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린다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반드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만 기도와 예배가 아니다. 우리는 책상에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설거지하면서, 다림질하면서, 학교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생각까지 하나님의 성소가 되도록 단지 “행위”로 잘못을 범해야만 죄책감을 느껴 회개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생각”만으로도 하나님과의 교제, 그분의 임재에 대한 느낌, 또한 영적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너의 생각 안에 거한다. 내가 거할 수 있도록 너의 생각까지 성소가 되도록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악의에 차고, 더럽고, 정욕 적이며 탐욕적인 생각, 그리고 교만한 생각 안에는 거하시지 않는다. 오직 온유하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남들을 사랑하는 생각 안에만 거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소가 되도록 하자.

구원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창조의 첫째 목적은 도덕적 존재를 영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준비시켜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신자 개개인이 활력 넘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전심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위로부터의 신생, 즉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는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개인적인 체험이 없는 사람은 그분을 숭모하며 예배하는 데서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예배의 매력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예배를 사모하고 갈망했던 사람들이 큰일을 이루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잠에서 깨어나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난 후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 부흥한 경우를 보라. 그 뒤에는 반드시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이 있었다. 우리가 진정한 예배 자들 가운데 있다면 육적이고 세상적인 종교 프로젝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을 먼저

우리는 육신의 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주를 위하여 일하면 그의 사역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전심으로 참 예배를 드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예배를 지겨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태도, 즉 마음의 상태가 한결같을 때 가능하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예배의 완전성과 열기가 언제나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숭모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 참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