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참 그리스도인의 길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

 


점점 세속적이 되어가는 현대 기독교는 이제 세상과 별 차이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 신앙 기사는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평판을 들었던 A.W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님의 글을 편집해서 구성해보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신앙의 자세를 이 기사를 통해 배우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우리는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세상의 편한 방법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세상과 마찰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깊은 잠에 빠진 기독교에게 “이제 깨어나라”고 말씀하신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생각해 보자.


세상의 비웃음과 따돌림을 두려워하지 말라

1. 세상과 타협하며 미지근하게 살지 않는다

과거에 세상이 교회를 따랐던 적이 있었다. 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앞장서 나갔으며, 세상은 교회를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반대이다. 지금은 교회가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고 있다. 과거의 교회는 어린양의 아름답고 혈색 좋은 신부였으나, 지금의 교회는 쪼글쪼글한 늙은 걸인 같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의 거리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전 한 닢을 구걸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한때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오늘날 교회는, “제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세상에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기독교와 세상을 섞어놓은 기독교, 즉, “혼혈(混血) 기독교”를 전하지 않는가?

명심하라.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과거의 교회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오니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다. 교회는 자신의 성경적 원리 위에 우뚝 서서 세상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 적당히 적응하면서 현재의 미지근한 상태에 계속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미지근한 상태에 계속 머물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를 깨닫고 신앙의 열매를 맺고 또한 편안히 죽어서 그리스도를 떳떳하게 만날 수 있다고 믿는가?”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지근한 신앙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미지근한 신앙 상태를 벗어나려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 미지근한 신앙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충만의 경험을 한 사람은 그런 경험이 있기 전에 누구나 ‘자기를 비우는 단계’를 거쳤다. 이 단계에서 그들은 공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위대한 설교가 중 하나였던 무디는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에 의지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역 초기에 자신에게 있는 텅 빈 공허감에 시달렸기 때문에 더 성령 충만을 사모했고, 그 결과 그는 큰 영적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험과 불안과 공허감이 찾아올 때, 감정의 기복에 따른 신앙을 하기 때문에 그 기회를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불안해 한다.

불안이나 공허감이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찾아 오셔서 쟁기질을 하셔서 돌밭 같은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드시는 작업을 하신다는 증거이다. 때로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싫은 사람을 통하여 우리 마음을 쟁기질 하시며 우리 마음 밭을 엎으신다. 다윗은 이런 체험 후에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시 129:3)라고 고백했다. 우리를 비우시고 마음을 뒤엎으시는 하나님의 작업을 깨닫고 그 시련의 기회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기회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날마다 죽어야 한다 : 사도 바울의 간증처럼 기독교는 날마다 죽어야 하는 종교이다. 신앙 생활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얼굴에서 항상 슬픔이 베어 나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고난이 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기쁨이 충만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이런 영적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싸구려 기쁨을 사다가 거기에다 ‘예수’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예수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기쁨으로서, 육신을 죽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주님의 임재와 동행함으로 얻는 하늘의 평안한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육신을 죽이는 것은 자아를 비우는 것이다. 우리 속을 비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을 그분의 성령으로 채우실 수 없다. 우리의 뜻과 육신의 욕망을 버리고 대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우심을 받고 그분의 뜻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만이 뜨거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만큼 두려워한다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칭찬을 받든 비판을 받든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 의하여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대로만 살도록 결심해야 한다.

1. 능력을 얻는 비밀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사 8:13). 어떤 시대이든 간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음성만을 들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사 8:11)을 강력하게 경고하시며 이사야에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가 되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은 “너는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지 말라. 그들의 행동 방식을 따르지 말라. 대신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거룩한 피할 곳이 될 것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사야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우리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흐름이 어떻든지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만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만이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흐름에 맞지 않을지라도 과감히 버리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2.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성경적인 지식이나 진리 위에 서지 않고 이상한 감정적인 체험만을 고집하는 위험스러운 사람들 때문에 ‘신앙적 체험’이라는 말이 거부감을 준다.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의 진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개인적인 체험 없이 성경만을 아는 것은 하나의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서 행동하고 느끼고 일하셨다. 만일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이 땅에 오셨다 할지라도 그분은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와 똑같이 행동하고 느끼고 일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성찬식에서 떡을 먹는 것처럼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날마다 먹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소유하고 나의 영혼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입이 음식물을 섭취하여 위로 넘기듯이, 우리의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3.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라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특히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을 추종하는 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원하신다. 이 세상에서 가엽고 보기에 안쓰러운 일은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목회자가 가장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역의 유명한 목회자를 찾아다니면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필요한 교육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되었다면 다만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 드리라. “오 하나님! 제가 준비되었습니다”라고. 그런 다음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그곳에 가서 일하라. 윗사람을 찾아다니며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사람들의 아첨에 넘어가지 말고 그들의 비판에 흔들리지 말라.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칭찬을 듣든, 비판을 받든 우리는 사람들의 손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미래와 우리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주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판단이나 평판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맞으면 무슨 일이든지 두려움 없이 착수하며 그분 안에서 확신 있는 삶을 살아가라.

4.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라

오늘날 종교 세미나나 여러 가지 종교 행사에 참석해 보면 많은 지식들을 얻는 듯이 생각된다. 예언, 유대의 역사, 기독교 교리들을 다루며, 심지어 헬라어나 히브리어까지 곁들인 세미나들은 우리들 스스로가 유식해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세미나, 교리, 성경지식, 종교적 형식들이 중요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면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모하기 위한 종교이다. 기독교는 단지 죄의 형벌에서 건짐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종교인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란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창조주를 깊이 사랑하여 진정으로 그분을 섬기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분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며, 지혜가 되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라.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분 밖에서 찾겠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라고 고백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깨달음이 주어지는 곳은 바로 성소이다. 그곳, 중세의 저술가들이 ‘페너트레일리어’(penetralia)라고 불렀던 곳에서, 당신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하여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을 모두 당신에게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스도께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드리라. 당신 자신을 그분께 드리라. 온 정신과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당신을 얽매어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줄들을 끊어버려라. 그분만이 당신의 모든 것이 되게 하라. 예수님은 모든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찾았는가? 예수님은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께 당신을 온전히 바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