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거듭남을 유지하는 방법

거듭남을 유지하는 방법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는 문제는, 한번 거듭난 후에 어떻게 그 거듭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번 거듭나면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는 거듭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거듭남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다.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계속 성장해야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도 새로 태어난 후, 즉 거듭난 후, 그 거듭남을 계속 유지하려면 영적으로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만일 새로 태어난 아기가 성장을 멈추면 죽는 것처럼,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도 성장을 멈추면 그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자신에 대하여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즉, 매일 옛 사람이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면 왜 저 유명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외쳤겠는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남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주 안에서 영적으로 계속 자라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거듭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더 자세히 연구해 보기로 하자.

1. 하나님과 동행하라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거듭나는 순간부터 성화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잘 걸을 수 없는 것 같이, 이제 막 거듭난 사람도 갑자기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분량에 이를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거듭남을 유지하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하는 것이다.
    저 유명한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거듭남은 일생에 단 한번만 있어야 하는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끊임없는 그리스도인의 과업이다. 그것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경험,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갈 2:20)시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제일 처음 거듭날 때, 전격적인 회개와 극적인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 새롭게 계속되는 거듭남의 경험이 늘 그렇게 뜨겁거나 격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내로써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성화를 이룰 수 없다. 거듭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있어서 어떤 부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회개할 때, 그리스도께서 능히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생애 자체에 달려있다. 우리는 매일 매시간 그분과 함께 우리의 삶을 나눔으로써만이 은혜 안에서 자라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 생애에 있어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영속적이어야 한다. 거듭남을 유지하려면 그분이 우리의 생애의 시작과 마지막에 함께 계셔야만 하며, 모든 발자취마다 함께 하셔야만 한다.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처럼

    거듭남을 유지하는 비결, 즉 자신과 죄에 대하여 죽음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의 경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걸을 때에 처음에 그는 예수님께만 눈을 고정시켰다. 아무리 험한 파도가 일어나고 물결이 밀어 닥쳤어도 그는 예수님만 바라봄으로 무서움도 잊은 채 놀랍게도 물 위를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교만한 생각에 빠져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고 동료들을 돌아보며 예수님을 시야에서 놓쳤을 때, 그는 깊은 바다물 속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도 이와 같다.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께만 눈을 고정시켰을 때, 빠지지 않고 물 위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항상 주님을 바라보아야 안전하다. 그리고 항상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함께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참된 거듭남이 계속 유지될 수 있으며,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에녹처럼

    거듭남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은 에녹의 생애에서 볼 수 있다. 에녹은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에녹이 범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에녹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함으로 늘 죄를 승리하고 이기는 생애를 살았음에 틀림이 없다.
    에녹은 이 땅에 살때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그분과 항상 동행하는 생애를 살았다. 그가 장남을 낳은 후에는 더욱더 깊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는데, 곧 당신의 아들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신뢰의 귀중한 공과를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잴 수 없는 사랑이 밤낮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고, 그는 전심 전력을 다하여 그가 살고 있던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에녹의 마음은 늘 영원한 보화에 있었고, 그는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의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늘 바라보았고, 그의 생각과 마음은 하늘에 있었으며, 그의 대화는 하늘에 관한 것이었다. 지상에 살면서도 에녹은 믿음으로 빛의 영역에서 살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애는 그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는 깨끗한 생애를 살게 했으며, 그를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기에 넉넉했다. 만일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한다면, 거듭남을 지속시키는 비결을 깨닫게 될 것이며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있을 것이다.

2. 그 안에 거하라

    거듭남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은 항상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이 처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인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거듭날 때 그 사람은 완전히 주님의 소유가 되었고, 그분을 섬기고 순종하려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쳤다. 그것처럼 거듭난 사람은 매일 모든 것(마음과 정신과 사업 등)을 하나님께 바치며 복스러운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것이다.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거듭남을 유지하기 위해 주 안에 거하는 일은 포도나무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포도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에게서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내가 없이는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에게 봉사하는 일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적으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그분에게서 받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시는가?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마음 속에 거하신다. 이것은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비유된 긴요한 연합이다. 거듭남을 계속 유지하려면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공급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같은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 가지가 자라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거듭남을 유지하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 생명도 없다. 그분을 떠나서는 은혜 안에서 거룩하게 자라거나 죄에서 돌아설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분 안에서 살 때, 그 사람은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며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이다.

    바라보며 교제하라

    거듭남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계속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교제하는 데에 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 성경절에는 예수께서 우리 안에 들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 마음 문을 두드리며 호소하시는 모습이 나와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계속적으로 함께 살며 사귀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교제한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고 명상하며, 기도로써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을 마음 속에 받아들인 사람은 집에서나 식탁에서나 골방에서나 밭에서나 항상 주님과 같이 하며 그와 같이 다니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배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매일 바라보고 예수님과 깊이 사귀므로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예수께서 사신 모본을 따라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살므로 온전히 변화함을 받았듯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함을 받을 것이다.
    누구나 잘 알듯이 예수의 형상을 가장 완전히 반사한 제자 요한은 본래 그러한 아름다운 품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명예욕이 많았을 뿐 아니라, 조급하여 억울함을 당할 때에 분개하기를 잘하였다. 그러나 그가 거룩하신 분을 매일 바라보고 교제하였을 때, 그리고 매일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이 그에게 보여졌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하여졌다. 날마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 가게 되어 마침내 그는 자기 주님에 대한 사랑에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의 조급하고 야심 많은 성미는 그리스도의 조성(造成)하시는 능력에 맡긴 바 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 그의 품성을 점차 온전하게 변화시켰다. 이것이 예수를 바라보고 교제함으로 생기는 확실한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쳐다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완전하심에 대하여 생각하자. 모든 것을 참으신 극기의 그리스도, 굴욕을 받으신 그리스도, 순결하고 거룩하신 그리스도,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그리스도... 이것이 우리 심령의 명상할 제목이다. 우리들이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그를 쳐다보고 모방함으로, 그를 온전히 의지함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심령을 안정시키며 사상과 소원을 하나님과 하늘로 향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매일 바라보고 그분과 깊이 사귈 때에 우리의 영적 생명은 활기 있게 될 것이며, 우리의 거듭남의 경험이 매일 더욱 더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아침의 가장 좋은 시간을 주님께...

아침마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항상 이 일을 당신의 첫번째 할 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오 주여! 나를 받으사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삼으소서.
나는 오늘의 모든 계획을 주님의 발앞에 놓나이다.
오늘 나를 주님의 일에 써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종일 나와 같이하여 주시고, 나의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날마다 당신이 행할 일과가 되게 하십시오. 아침마다 그 날을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섭리에 따라 행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날마다 당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될 것이고, 당신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대로 모방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