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용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지 못한 분께 드리는 호소


    당신은 한번쯤 조용히 시간을 내어 마음을 살피며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으며, 그 마지막은 어떠할까?”하고 자문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인생살이가 너무 바빠 영생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으십니까? 당신이 영생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당신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 일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거나 게을리 함으로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거짓 소망으로 당신의 영혼을 즐겁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찾았던 헛된 세상의 쾌락과 영화가 당신의 입술에서 쓰디쓴 열매로 변하지 않았던가요? 그 채울 수 없는 공허함!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당신에게 만족을 줄 수 없었던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영생에 대하여 무관심한 당신에게 조차 자비의 기별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

    당신이 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받으시고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방탕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오랫동안 그분을 떠나 살았을지라도... 그분은 당신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생명을 얻도록 그분께로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붙들기만 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죄악을 즐기고 섬김에서 당신은 무슨 유익을 발견하십니까? 육신과 마귀를 섬김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것에서 당신이 받을 보수는 빈약한 보수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오! 돌이키라, 돌이키라, 어찌하여 죽고자 하는가!”

당신은 죄에 대한 찔림과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당신은 많은 목적을 가졌으며, 많은 희망을 가졌었으나, 그것은 당신에게 만족과 성취감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빈 그릇만 손에 든 채, 채워지지 않은 소망으로 허탈해 하면서도, 아직도 머뭇거리며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번의 망서림만 마음 속에서 오갔을 뿐...

    오, 이번에는 정말 당신의 마음이 돌이켜져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깨달음으로 감화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릇된 길에 그냥 버려 두시지 않도록 그분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요! 이것은 당신에게 생과 사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어느 편을 택하시렵니까? 하나님과 다투고 그분의 호소를 저항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유하여 주시고 나를 당신의 앞에 나오도록 용납하실까 하는 생각을 갖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나서셨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배반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분은 당신을 찾으러 나가셨습니다. 그분은 목자와 같은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아흔 아홉마리를 뒤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 당신을 찾기 위하여 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의 팔로, 터지고 상하여 거의 죽게 된 영혼을 찾아 안아 몹시 즐거워하며 안전한 우리로 가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비유에는 곁길로 나갔던 양을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에 기쁨에 넘친 목자의 감사함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양의 크신 목자께서 곁길로 나가 방황하는 자들을 찾았을 때에 하늘과 땅은 함께 기뻐하고 감사한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받아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보증입니까! 당신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해서 살아왔나요?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방황했었나요? 당신은 죄악의 열매를 먹으려 하다가 결국에 그것이 당신의 입술에서 재가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까? 그리고 혹시 당신은 탕자처럼 모든 재산을 다 허비해 버리고, 일생의 계획이 다 수포로 돌아가 소망이 끊어진 채 외롭고 쓸쓸하게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오랫동안 당신에게 속삭였으나 당신이 듣기를 원치 않던 다음의 음성이 다시 분명하고 똑똑한 어조로 그대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미 2:10).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십시요! 그분은 당신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고 초청하십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선한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다고 속삭이는 사단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결코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단이 그대의 더러운 옷(품성)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할 때에,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는 예수님의 약속을 암송하십시요! 그리고 사단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하십시요! 다윗의 기도가 당신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요.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이제 일어나서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십시요! 그러면 그분께서는 멀리까지 나와서 당신을 영접하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회개하고 그분을 향해 한 걸음만 내디딘다해도 그분은 재빨리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당신을 안아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귀는 통회하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싹트는 그 순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기도가 아무리 더듬거리고 눈물을 아무리 은밀하게 흘릴지라도 그분은 아시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마중 나가지 아니하시는 때는 없습니다. 기도가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마음의 소원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가 당신의 마음에 역사하는 은혜를 만나기 위하여 나옵니다.

    당신이 돌아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옷을 당신에게서 벗기실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비유의 얘기처럼, 주님께서는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옷”(사 61:10)으로 당신을 입히실 것이며 의의 겉옷으로 입히실 것입니다. “너희가 양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시 68:13). 주님의 양우리에서 행복하게 살기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도 좋으신 주님과 함께...  

용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당신이 진정으로 회개했는데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우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다음의 약속들을 외어 보십시요!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믿으십시요!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 7:19).
  •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 103:12).
  •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독자가 보내온 질문 : 계속적인 회개가 필요 없다는데요?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를 계속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매달 실리는 기사들이 너무 좋아 다음 호는 언제 오나 하고 기다려진답니다. 월간지를 통해 은혜 많이 받고 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얼마전 제가 사는 뉴욕에 000목사님이 와서 특별 집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 죄가 십자가에서 이미 용서 받았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이미 용서받고 해결되었으므로, 또 다시, 계속적으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냥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며,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통회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라고 합니다. 정말 회개는 한번으로 족한가요? 그리고 죄에 대해 통회하고 슬퍼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인가요? 그냥 기뻐하기만 해야 하는 건가요? 올바른 답을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 뉴욕에서 C 드림

답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마련해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용서는 회개하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굴복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 없이 죄를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죄를 온전히 통회하고 버리는 회개가 있어야 용서가 있습니다.
또 회개는 한번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에 성장하는 매 단계마다 더 깊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왜나하면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며 얼마나 결점 투성인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그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깊은 회개의 경험을 하시므로 성결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