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부활한 첫 번째 짐승의 성격을 아시나요?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17.

이 장면은 용 곧 사단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참 백성과 최후 결전을 벌이기 위하여 준비하는 장면이다. 바로 이 용(사단)이 마지막 시대에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 곧 교황권(첫번째 짐승)과 미국(두번째 짐승)을 매개체로 삼아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다시 한번 엄청난 핍박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 13장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메세지이다.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2,14,15. 과연 지구 역사의 종말에 교황권은 중세기 때에 누렸던 권세를 완전하게 회복하면서 핍박하는 세력으로 부활할 것인가? 역사와 교황청의 공식 문서, 그리고 근래에 이루어진 시사들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심도있게 살펴보도록 하자.

죽게 되는 상처를 입은 첫번째 짐승

로마 카톨릭은 과거 수 백년동안 유럽을 정치적으로 위압하였었다. 요한계시록 13장 2절에는 “용이 자기의 능력과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독재는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 되다가 개신교운동이 시작될 즈음부터 그 세력이 쇠퇴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되었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끝났었던 종교개혁이 16세기에 와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 영국의 청교도 운동, 미국의 독립과 개신교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로마 교황권의 세력은 더

욱 약화되었고, 1789년 불란서 대혁명으로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1798년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이 나폴레옹의 지휘아래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 감금하였고, 교황이 그 이듬해 옥사함으로써, 1260년의 세도는 종말을 고했다. 1798년 교황이 잡혀간 사건을 1700~1800년경에 살았던 종교개혁자들과 초기 개신교인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번째 짐승이 죽게 되는 상처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결국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망함으로써 로마 교황권은 중세기의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상처가 회복된 첫번째 짐승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1798년에 교황 피우스 6세가 불란서 혁명군에 의하여 옥사당함으로 교황권의 세력이 완전히 쇠퇴한 것이 “죽게 되는 상처를 받”는 것이라면,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세가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에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권이 그 잃어버렸던 정치적 세력을 다시 얻어 세계를 지배하는 권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미국이 일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1850년대까지는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당시 미국은 강력한 반 교황권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때로부터 적어도 50년 동안, 곧 1950년대까지만해도 그러한 사상이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 전체의 종교적 분위기 때문에, 라테란 조약(1929년)에서 이태리의 독재자 뭇솔리니가 바티칸의 교황청을 하나의 교회와 국가로 인정하고 독립시켜 주는 협약을 맺자,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에서는 “죽었던 상처를 낫게 함”이라는 제하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오늘밤 로마에 관한 문제는 과거에 대한 것이었으며, 바티칸은 이태리와의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 중대한 협정 조인 문서에 ‘상처를 낳게 함’이라는 친필을 추가한 것은 양편 다 이 문제에 대하여 극진한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연대기 신문, 1929년 2월 11일자.

이 때로부터 바티칸은 서서히 그러나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근래에 들어와서는 놀라운 정치적 영향력을 세계에 펼치기 시작하였다. 1979년 9월 18일자 워싱톤 스타지에는 교황의 첫번째 미국 방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기재하였다. “... 과거에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벼락을 맞을 일이었다. 그러나 ... 이제 역사상 최초의 폴랜드인인 법왕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놀라운 선거를 치룬지 1년 후에 온 세계의 하늘에 빛나는 별로서 만 7일간을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는 약속아래 미국에 오게 되었다. 정치가들은 앞을 다투어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섯 개 도시의 시장들은 그들의 도시 업무를 실제적으로 중단하고 교황을 맞이할 행사를 열렬하게 준비하였다.”

개신교회의 지도자인 빌리 그래햄 목사 마저 교황의 미국 방문을 크게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국 방문은 로마 천주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는 물론이요 온 미국 사람들에게 참으로 의미깊은 사건이다 ... 그가 교황이 된 기간은 짧으나 현 시점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여행하는 동안 나의 기도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신교도들의 기도가 그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 1979년 9월 27일자, Religious News. 청교도의 정신과 어린 양의 모습으로 시작된 미국은 이제 첫번째 짐승의 손을 잡고 용처럼 말할 준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역사를 바꾸어 놓은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의 협력

1984년, 미국은 공식적으로 바티칸의 교황청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고 대사를 파견했으며, 냉전시대의 초강대국이었던 구 소련 역시 1989년 고르바초프가 바티칸 도서관에서 교황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교황을 인정하고 그의 협조를 구하였다. 옐친이 고르바초프 정권을 넘어뜨리고 러시아를 세운 후에, 그는 곧바로 바티칸과의 관계를 재결성하였다(1991년).

이러한 사실들은 로마 카톨릭이 계속적으로 그 정치적 세력을 온 세계로 급속히 확산시켜가고 있음을 증거한다. 1989년 후기부터 1990 년 초기사이에 동유럽 공산권이 하나씩 쓰러진 사건은 정말로 놀라운 일들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동구의 여러 공산정권들이 무너져 내린 사건과, 또한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건은 정말로 믿기 어려운 세기의 사건들이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건들의 배후에 로마 카톨릭의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의 신문기자들은 이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1989년 12월 4일자 Time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의 도움으로 그의 모국인 폴란드에서 시작된 자유를 향한 불길은 전 동유럽을 휩쓸었다 .... 고르바초프의 무간섭 정책도 동유럽을 휩쓴 자유주의의 물결의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요한 바오로 교황이 더 많은 공로를 세웠다 ...”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미국과 바티칸이 비밀리에 협조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한 기사가 타임지에 특집으로 실렸다. 1992년 2월 24일자 Time 표지에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과 함께 “거룩한 협정: 어떻게 레이건과 교황이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돕는데 공모했으며, 공산권의 침몰을 앞당겼는가?”라는 표제가 실렸다. 그렇다면 정말로 언젠가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대로, 교황이 세계를 다스리는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

세계를 향한 첫번째 짐승의 집념

전 예수회 신부였던 말라카이 말틴(Malachi Martin)이 쓴 “피의 열쇠”(The Keys of this Blood)란 책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첫 장과 3쪽과 15쪽에서 간추린 것이다. “원하든지 않든지, 준비가 되었던지 그렇지 않던지 간에, 우리 모두는 전면적이고도 무제한의 방법을 통한 3자간의 세계적 정권다툼에 휩싸여 있다. ...이 경쟁은 누가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한 정부아래로 통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는 숨겨져 있지만, 요한 바오로 교황이 선택한 정책과 매일, 매년 분투하고 있는 그의 싸움의 목표는, 바로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 이 경쟁은 지구 인구 60억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인데, 모든 개인과 모든 집단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을 누가 확보하여 휘두를 것인가에 관한 경쟁이다 ... 또한 이 경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제한의 경쟁이다. 일단 경쟁이 끝나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개인과 국민의 생활 방식, 가족 관계와 직업, 무역과 상업과 화폐단위, 교육과 종교와 문화, 그리고 이제까지는 누구나가 자동적으로 받았던 시민권(주민등록증)과 같은 제도들이 크게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요한 바오로 2세가 전세계를 다스리고자 하는 열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독자 여러분들도 말라카이 말틴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신을 가질 것이다. 여하튼 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목표는 천주교회를 다시 종교적, 정치적으로 세계적인 세력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말라카이 마틴은 바티칸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믿을 수 있는 여러가지 신빙성 있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같은 책 1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이어진다. “이 새로운 세계 질서는 먼 훗날에 일어날 어떤 일로서가 아니라 이제 곧 일어날 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두번째 천년 기간의 마지막 10년 끝(역자주, 뉴 밀레니움의 시작점)에 소개되고 세워질 것이다.”

결코 변치 않은 첫번째 짐승의 성격

요한 바오로 2세는 개인적으로 볼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적인 모습과 강한 성격은 세상의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도 너무나 타락해 가고 있는 사회를 보면서, 지구 전체가 안고 있는 도덕적 문제들을 풀어줄 수 있는 위대한 인물로 교황의 영도력을 지목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교황을 세계적 지도자로 추대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선한 결과를 이룰 것인가? 지금은 교황이 어느 누구도 핍박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교황권은 바티칸 II 선언에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예상이 실현될 것 같지는 않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교황권이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얼굴은 매우 매력적인 모습으로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이끌기에 충분한 얼굴이며, 다른 얼굴은 매우 무서운 얼굴로서 중세기의 핍박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98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제하의 사도 서신을 발표하였는데, 이 사도 서신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법전에 추가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새롭게 추가된 법조문 1436항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 No.1: “진리 곧 거룩한 카톨릭 신앙을 부인하거나, 의심 하거나, 그리스도인 신앙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법 에 의하여 경고받은 다음에도 본인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자는 출교시킴으로써 이단자 또는 배도자로 처벌해야 한다. 성직자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기타 다른 벌금형에 처한다.”
  • No.2: “부가적으로, 로마 천주교회의 권위있는 대주교 및 주교의 가르침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정죄받은 것을 지지하거나, 법에 의하여 경고받은 후에도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자들은 적당한 방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장은 교황권이 세상 끝에 중세기의 핍박을 한번 더 재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예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핍박하는 세력은 항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적 핍박은 겉으로 보기에 악인들로부터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인들이 다른 나쁜 사람들을 올바로 교정하기 위하여 핍박이라는 수단을 사용했었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때에도 핍박을 행한 사람들(교황권)도 그들 스스로 의로운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교황권의 가르침과 명령을 거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도, 그것이 교회를 정결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2.

그렇다면 천주교단의 모든 사제들과 교인들 모두가 중세기 때와 같은 핍박을 찬성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천주교 신부들이 종교적 핍박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천주교회의 Louis Veuillot 가 National Catholic Welfare 에 발표한 다음의 글을 보라. “때가 닥치면, 내일이 될지 다음 세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영원한 원칙에 의한 사회적 체계를 다시 건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카톨릭은 ... 특별한 사회적 법을 만들 것이다. 이 법은 예수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릴 것이며 더 이상 그는 모욕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법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거절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어떤 광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식하며 고립된 생각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이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아직 진보주의적 종교적 자유를 제시한 바티칸 II 선언이 있기 전인 1928년도에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1990년에 출판된 말라카이 말틴의 The Keys of This Blood에 있는 다음의 글을 읽어 보라.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도, 다른 어느 것도,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일을 행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요한 바오로 교황의 기본적 사상이다. 또한 교황은, 성스러운 감화아래 토대를 둔 모든 종교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가르칠 수 없으며, 그렇게 살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는 사상이지만, 만약 어느 누구도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믿거나 가르칠 권리가 없다면, 과연 누가 모든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말인가? 다음에 계속되는 글에서 말라카이 말틴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록하고 있다. “중세기에 그랬었던 것처럼, 그리고 요한 바오로 교황의 지도아래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로마 천주교회는 인간 세상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 하나의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교황은 자신이 전 인류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포함하는 문제인데, 만약 당신이 천주교 신자라면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엄청난 종교적 핍박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교황권은 변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에게 다시 중세기의 정치적 세도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밀레니움에도 핍박은 재현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교황권이 다시 한번 더 정치적 권세를 부여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2,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