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유대민족 전체가 기독교회로 개혁하게 될까요?


유대민족 전체가 기독교회로 개혁하게 될까요?



앞에서 우리는 현재 이스라엘 국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고 영적인 하나님의 참 백성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모르고 또 잊어버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유대인들과 심지어는 많은 무신론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재 이스라엘 나라를 마치 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성취시킬 주인공인 양 생각하여, 중동 지방에서 되어가고 있는 일들의 귀추를 열심히 주목하고 있고, 또한 그곳으로 이민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때에 자신도 그 대열에 참여하여 유대 민족의 승리와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로 이민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빗나간 확신을 가지고 그토록 엉뚱한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신약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지금 현재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자손” 즉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구원받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대 민족의 지파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언젠가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그들의 종교적인 노선을 완전히 바꾸고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킬 것이며, 과거에 거절하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진실한 개신교 국가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어디서 이러한 오해가 시작되었는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오해가 유대 국민 전체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는 빗나간 추측을 유도하였다.

1). 조건적인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이 아니다. 한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운명은 이미 2000년 전에 결정되었다. 그들 역시 우리 이방인들과 같이 개인 단위로 구원과 심판을 받을 뿐이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지만, 그들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일에 실패하였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은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구원을 유지하고 축복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조건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끊겨져 나간다”는 것이다. “네가 만일 ...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너희 이스라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면 ...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며 내 이름을 위하여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 왕상 9:4~7. 이와 같은 하나님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할 때, 아마겟돈 전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명예에 대한 말씀을 인용한다. 그들은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서 등에 언급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최후의 승리에 관한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 후에 본국으로 귀향하는 예언을 잘못 해석하였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반역의 길을 걸어갔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에 포로로 잡혀서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허락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소망을 고취시키셨다. 과연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의 하상을 통하여 바벨론성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기이한 전략을 성공시킴으로써 바벨론 제국은 몰락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은 과거에 이미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물론, 구약에 나오는 여러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하여 영광스럽게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게 될 이스라엘의 명예에 대한 수많은 약속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분명한 조건 하에서만 성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고대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배도와 반역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성취되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유대 민족은 언젠가는 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성서적도 아니며 합리적인 생각도 아니다.

2). 그 당시에는 유대 민족에게, 미래에는 전 세계로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는 예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다. 만일 이 원칙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이 역사와 예언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심각한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 원칙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될 아마겟돈 전쟁이 중동 지역의 국부 전쟁으로 제한되어 버리고 말았으며, 아마겟돈 전쟁의 주인공을 유대 민족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성경 해석 원칙이란 무엇인가? 예언은 1차적으로 그 당시에 문자적으로 적용되며, 2차적으로는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영광스러운 약속들이 일차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반역의 길을 선택했으며, 그 결과 “순종”이라는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성취되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유대 민족에게 성취될 수 없었다.

그러나, 비록 유대 민족의 불충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1차적으로 당대의 유대 민족에게 성취되지 못했을지라도, 그 약속들은 결코 무효가 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그 약속들은 2차적으로 신약 시대에 태어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세계적이고 영적으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 민족의 거절과 반역으로 성취되지 못한 하나님의 약속은 세계 도처에 있는 신약 시대의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성취된다.

이러한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 고대 이스라엘이 원수들을 쳐부수는 승리의 장면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곧 건축하게 될 장엄한 성전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에스겔 40~48장에는 그 성전의 크기와 실제 모양이 어떠한지가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그 성전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다. 다른 선지자들 역시 그 성전의 건축내지 재건 계획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그 중 아모스 선지자는 성전의 재건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며” 암 9:11.

이러한 구약 성경의 예언을 근거로 해서,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어느 때에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성전이 유대 땅에 실제적으로 건축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언이 당대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을 영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는 예언 해석 원칙을 유의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취되지 않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영적인 의미로 적용시켰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였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지어 일으키리니” 행 15:14~16.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재건한다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적용하여 해석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부터, 즉 신약 성경에 기록된 성전은 문자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온 세상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영적인 교회를 가리킨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3). 빗나간 적용의 결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오늘날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에게 적용할 때에 심각한 오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유대 국가가 그들에게 주어진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이 끝마쳐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메시야를 거절함으로써, 오늘날의 유대 국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구세주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오래 동안 사용해 오던 관습에 따라서,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약시대부터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표현들과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예언을 상징적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경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이스라엘, 성전, 예루살렘, 시온, 이스라엘 지파 등과 같은 어휘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진짜 이스라엘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영광과 승리를 중동 지방에 있는 유대 민족에게 돌리는 엄청난 착오를 범하게 만든다. 이러한 착오가,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하는 때를 전후로해서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면서 개신교회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시나리오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못 박고 있다는 것을.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그들은 희고 정결한 의의 옷을 입고 다니는 새 이스라엘이지, 2000년 전에 민족과 국가로서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된 유대 민족이 아닌 것이다.